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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성문화: 아직도 군대에서 묻은 검댕이를 묻히고...


군대 졸병 때 취침점호를 끝내면 고참들이 '쌕쌕이'를 VTR에 넣고 작동시킨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남녀간의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등병들은 모포로 얼굴을 덮고 억지로 보지 않으려고 무촉 애쓴다.

내무반에서 막내인 우리들이 보면 군기강 확립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염려어린 충고 속에 우리는 보고 들을 권리를 이미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면서 살짝 보았더니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고참들은 라면에 소주까지 마셔가며 진지한 모습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불침번까지도 문을 걸어잠근 채. '나는 언제 고참이 돼서 떳떳하게 볼 수 있을까?' 잠깐 훔쳐본 장면이 아른거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입대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순수한 친구로서의 감정이 컸다. 부담없이 서로 만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성이라는 사실을 크게 인식하지 않았다. 저녁 늦게 단 둘이 있을 때는 남들처럼 손목도 잡아보고 입맞춤도 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나를 오해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서 나의 희망사항은 항상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이렇듯 입대 전 나는 단지 막연하게 이성을 그리워하고 정신적으로 서로를 감싸주되, 육체적 접촉은 하지 말아야 하는 줄 알았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면서부터 순수하던(?) 나의 여성관은 적지않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등병 졸병시절을 보내고 나서 내게도 '쌕쌕이'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취침시간이 되면 중대장의 감시를 피해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장면들은 서술하기조차 역겨울 정도로 내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야한 여성의 아슬아슬한 연기로 성적 충동을 한결 부추기는 포르노의 진수(?)인 일본 작품. 이 모든 장면은 성행위에 초점을 맞춰 21인치 텔레비젼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숨가쁘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여성을 접하기 힘든 군대사회에서 이성을 그리워하는 본능적 욕구와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그 작품들을 감상하였으나, 점차 보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여성은 하찮은 존재로서 남성의 성적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성적 대상물'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갖게되었다. 이에 편승하여 가끔 연예인을 포함한 군 위문공연단이 펼치는 쇼는 거의가 여성을 소재로 한 음담패설과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몸짓의 무용(스트립 쇼) 등으로 혈기왕성한 군인들이 성적욕구 해소의 차원을 넘어 왜곡된 여성관을 갖게 한다.

성적 충동 및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병사들의 자구책은 내무반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같이 입대한 한 동기는 여자같은 용모를 가져 고참들의 귀여움을 받았었다. 그는 이러한 행복도 잠시, 남다른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한 고참이 유독 그를 좋아하여 잠자리를 같이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고참은 그를 껴안고 성기를 만지작 거리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가련한 내 동기는 반항하려고 하였지만 계급이 깡패라고 고참의 명령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군인 복무규율에도 나와 있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지 않고서는 앞으로의 군대생활이 편안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졸병인 그 친구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휴가때면 콘돔을 의무적으로 지급해 준다. 휴가를 나오면 사회는 전혀 달라 보인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밤거리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음흉한 환락의 도시처럼 보인다. 특히나 치마를 두른 모든 여자들이 다 예뻐보이고, 미끈하고 하얀 다리가 보이는 짧은 스커트에 가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보이는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걷는 남자를 볼 때면, 왈칵 울화통이치솟는다. '우리가 고생을 하면서 조국을 지킬 때 저 년놈들은 술 퍼먹고 껴안고 밤마다 비디오 장면 속의 그런 행위를 하겠지'하는 생각을 하며..... 이런 역겨움을 술로 달래면서 우리가 그동안 억제해왔던 욕구를 풀겸, 알코올의 힘을 빌려 청량리나 미아리 등 사창가로 향한다.


그곳 여성들은 불쌍한 병사들의 심정과 욕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호들갑스럽게 반겨준다. 휴가 나가서 군인정신을 항상 잊지 말고 세 뿌리 즉 손, 발, 성기를 조심하라던 연대장의 훈화는, 실은 이짓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군대에서 지급해 준 콘돔을 사용하여 비디오에서 익힌 사랑의 기술(?)을 현장실습한다. 그렇게 귀중한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면 병사들은 그 경험을 무슨 무용담이나 되듯 자랑스레 각색까지 해가며 떠들어댈 것이 '강요'된다. 이렇게 푸른 제복의 젊은 군인들은 군대생활을 통해 성적욕구를 배우고 또 실습해 가면서 3년을 지낸다.

물론 군대에 가면 모든 병사들이 나같이 타락하고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다. 대학에 복학한 요즘, 자신도 모르게 군대생활을 통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왜곡된 성지식과 여성관이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무게로 내 자신을 억압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캠퍼스 안에서 여학생들이 새빨간 입술에 눈가를 거슴츠레 칠하고 자신의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면 이상야릇한 포르노적 상상속에 휩싸인다. 군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포르노 필름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내가 남자주인공이 되어 눈앞의 여성과 음탕한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 자신 깜짝 놀라면서 도덕적 죄의식을 갖는다. 순진할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남성지배적 성관계를 극화하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갖가지 상업주의적 대중매체를 대할 때면 이제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성적인 것에 얽매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가슴 답답함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 되기도 한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대학까지 온 여성들이 또 왜 그런 식으로 치장을 하고 다니는가? 비디오를 보고 흉내를 내는 것인지 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나도 유치하다. 외설적인 말과 글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잡지 속의 여체의 신비(?)를 우연히 훔쳐보면 기분이 불유쾌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잠재의식이 아직도 나의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것이 최루가스를 마신 듯 역겹고 구역질이 난다. 나 자신의 기차가 어두컴컴한 군대란 터널을 통과하면서 왜곡된 성지식과 여성관의 검댕이를 묻히고 나와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나의 오점을 사회와 차단되고 엄격하게 위계서열화된 군데조직 탓이라고 원망할 수만은 없다. 내 스스로 올바른 여성관, 아니 인간관을 정립하지 못한 것이 현재의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지금도 나의 갈등과 고민은 무게를 덜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있다.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제8호, 새로 쓰는 성 이야기 189-19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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