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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동'의 사회적 구성

우리 사회에서 성충동은 가장 전형적인 성 정서에 속한다. '성충동 때문에', '성충동을 못 참아서', '남자는 성충동이 강하니까'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이때 성충동이라는 정서는 생리 정서론으로 더 잘 설명되는가, 아니면 사회구성적 정서론으로 더 잘 설명되는가?

성충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성이 본능인가 사회의 구성물인가 하는 물음에 보다 명확한 답변을 제시해 줄 것이다.

사실상 성충동의 개념에서 성은 '충동'적인 욕구임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성충동이란 '흥분할 만큼 강한 성적 자극,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것이 특징으로 동작이나 행위가 수행되지 않을 때는 불안감과 불쾌감이 따름'으로 설명된다.

성이 이성으로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의 영역이라는 통념은 일상의 많은 '믿음'을 통해 드러난다. 가령 신문에 난 강간범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처벌받지만 신문을 보는 남성들은 그것이 남자라면 저지를 수도 있는 일임을 마음 속으로 이해한다. 특히 그 강간범이 사춘기 청소년일 경우, 혹은 피해자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이거나 상대를 자극할만한 언행을 했다면 더욱 그렇다. 또 많은 사람들은 매춘의 존재를 필요악으로 인정한다. 만약 매춘이 없어지면 수많은 '정숙한 여성'들이 남성의 성충동에 피해자가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성들 중에서도 '남자는 다 짐승이야'라는 일반화를 통해 남성의 성충동이 어쩔 수 없는 본능임을 인정한다. 남편의 외도 역시 '본능이 부추긴 순간의 실수'로 용서한다. 우리는 성이 본능이라는 통념을 근거로 우리사회의 수많은 성 문제들, 강간, 매매춘, 외도를 합리화 한다.

그러나, 아래에 기술한 남성의 성문화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성충동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의 남성 352명에게 '남성의 성충동은 자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77.5%의 남성들이 '자제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다. '없다'고 응답한 경우는 단지 3.1%에 불과했고 나머지 19.4%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응답을 보였다. 이는 분명 통념과는 다른 의외의 결과였지만 조사대상자와의 개별면접을 통해 통념과 응답간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읽을 수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은 억제할 수 있지만 자제력이 약한 (다른) 남성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성충동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자신이 경험한 생물학적 느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충동은 자제할 수 없다'는 통념을 비판없이 내면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실제로는 성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질문지상으로는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답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응답자들의 대부분이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로서 '질문지'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그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곧 '억제할 수 없는 성충동'이라는 사회적 각본의 수용과 이것의 부정이 양립하고 있다.

또한 '성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가'라는 개방형 질문에 대한 응답을 유형화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1) 호감이 가는 여성과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2)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을 보았을 때
3) 동료들과의 술자리 등에서 분위기에 동조되어서
4) 포르노를 보고

그런데 위의 상황들은 '성충동'을 일으킨 이유가 통제할 수 없는 본능으로서 '충동'이 아니라 '사회화된 동기'라는 것을 드러낸다.

1)의 경우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살펴보면 '천사같이 아름다운 그 여성을 보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 때문에' 등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우리는 '......를 보고' '......을 확인하려는 욕구'라는 다소 환상적인 인지가 개입된 것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둘이 있게 되었다(그래서 시도해 볼 만하다?)는 상황에 대한 판단도 나타난다.

2) 역시 마찬가지 결론이 이끌어진다. 가령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 '속살이 비치는 옷을 입은 여성'은 언제 어디서나 유기체의 신경체제를 자극하는 대상은 아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현대의 한국사회에서는 성 자극을 일으킬 수 있는 대상이지만 조선시대라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조선시대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은 미친 여자이거나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귀신 정도로 여겨질 것이다. 오늘날도 어떤 보수적인 남성에게는 '철 없는 여자' 정도의 경멸대상이 될 수 있다. 즉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란 제한된 사회에서 '성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학습된' 특정한 자극일 뿐이다.



3)의 '분위기 동조'라는 이유는 더욱 확실한 사회적 동기이다. 실제로 남성들은 '술집에 가서 예쁜 아가씨가 옆에 앉거나 분위기가 그렇게 쏠리면 거절하기 어렵다'는 표현을 한다. 그런 경우 대개는 '어쩔 수 없어서'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분위기를 깰 수 없거나 특별히 거부할 만한 동기가 없었음을 의미하지 본능상 어쩔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의 '포르노를 보고'는 특정 사실의 지각에 의해 성 자극이 일어날 수도 잇지만, 어떤 경우 자신이 자극을 유도하기도 함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포르노 잡지나 사진을 보고 자위행위를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때 포르노 잡지를 보는 것은 '보고 즐기는 것'으로 그치기도 하지만 자위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기도 한다. 이때의 '성충동'은 무엇이 성충동을 일으킬지를 미리 알고(인지하고) 그것을 의도한 사회적 행위의 결과이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사고체계에서 볼 때 결국 성충동은 본능이라기보다 그것을 본능으로 여기는 일반의 통념이나 그것의 인지과정 자체를 포함하는 각본에 따른 관념이라고 하겠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성충동 각본'을 다음과 같이 구성해 볼 수 있다.



1) 성충동은 노출이 심한 옷이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 혹은 메니큐어를 바른 잘 다듬어진 손톱, 늘씬한 다리, 풍만한 가슴, 포르노 등의 자극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2) 일단 성충동이 일어나면 그것을 억제하기 어렵다. (그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강간이다.)

3) 성충동에 의한 행동은 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롯 잘못된 행동이라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 단지 그는 본능의 피해자일 뿐이다 (많은 강간이 정당화되고 오히려 피해여성이 비난받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4) 성충동은 남성의 성 정서이다. 여성은 성충동을 갖지 않는다 ('여성이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해'라는 언술이 얼마나 어색한가) 또 여성이 성충동을 느꼈다면 그것은 남성의 각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여성은 남성의 억센 팔이나 근육을 보고 성충동을 느낄 수 있지만 성경험이 많은 여성이거나 정숙하지 않은 소수에 해당하고, 또 억제할 수 있으며 만약 그러지 못하다면 '정숙하지 않은 여성'으로 비난 받을 만하다는 등.....)

성의 각본이라는 개념은 정서가 생리 변화에 대한 느낌이 아니라 개인의 인지과정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사회의 구성물임을 강조한다. 이때 신체상으로 나타나는 몸의 변화나 느낌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성충동'에 의한 신체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특정한 환경문맥에 대한 유기체의 신경체계 반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자신의 인지에 따라 신체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느낌을 행위로 연결시키는 문제 역시 인지의 개입에 의해 결정된다.

성욕의 본능을 강조할 때 흔히 식욕과 비유한다. 그러나 식욕에서 조차 배고품을 느끼는 것은 본능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먹는지는 지극히 문화적인 방식에 의존한다. 도넛츠 가게의 빵 굽는 냄새가 아무리 식욕을 자극한다 하더라도 유리창을 깨고 훔쳐 먹으면 처벌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성충동'에 대한 생리적 느낌과 그것을 일으키는 사회적 동기나 해소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현재의 성충동 각본은 그 모든 과정을 본능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성충동 각본은 다소 일반화의 위험이 있지만 성문화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충동의 각본을 통해 우리는 성 정서의 발생과 해소가 '인지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극히 남성중심의 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문제점을 발견한다.

그런데 성이 사회의 구성물이라는 것은 곧 성이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기 보다 사회, 문화의 변화와 함께 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화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때의 '변화'는 기존의 남성중심 성에 대한 강한 비판이자 새로운 성문화의 창출이다.

남성위주 성의 각본에서 여성은 성의 주체가 아닌 타자로서의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성이 남성 일방만의 경험이 아닌 남녀의 어우러짐인 이상 여성의 타자화는 반드시 남성의 소외를 초래한다. 따라서 성문화의 변화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인간화를 위한 변화이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새로운 성의 각본'을 쓰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것은 여성을 대상화 하지 않고, 남성을 본능의 지배를 받는 가엾은 '짐승'으로 비하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방의 충동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전인적 경험으로 공유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삶의 만족을 위한 노력의 하나이다. 그것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위한 솔직한 대화이다. 그것은 .........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제8호, 새로 쓰는 성 이야기 80-84 page (이명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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