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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 사라지지 못한 사회,
법과 함께 생각도 바뀌어야

직접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의 희생자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가해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넓은 의미의 희생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폭력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성폭력을 근절시키는 충분한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여기에 접근하기 위한 기본전제는 남녀간의 행동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이나 법규가 바뀌는 것이다.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과 사고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별다른 호소력이 없다. 인간의 평등, 존재가치, 의지 등을 고려한 법조항이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법조항이 모든 이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적용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편의에 따라서 강한 자의 입장만이 옹호되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한 성폭력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여름철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도 강간에 대한 책임을'이라는 신문기사가 버젓이 나오는 현실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다.

성을 쾌락의 도구로 혹은 직업, 영리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사회, 성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는 남녀 모두의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이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고 불신이 팽배해 있다면, 토폐.향락문화의 만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성도덕의 부재로 성범죄는 더욱 증사하고 있으며, 여전히 성에 관련된 문제를 다룸에 있어 그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거나 여성에게 책임전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와 사회인식에 변화가 있을 때 봉건적,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성폭력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들에게 잠재해 있는 강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첫째, 운이 없는 특정한 여성만이 강간을 당하는가?
그렇지 않다. 운이 있건 없건, 그녀의 신분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어떠한 여성이든지 현사회에서는 강간자의 목표대상물이 될 수 있다.

둘째, 노출이 심하거나 야한 옷을 입은 여성에게만 강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한겨울에도 강간은 발생한다. 여름에는 단지 강간자가 보다 쉽게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성폭력은 어떠한 장소에서만 발생하는가?
결코 아니다. 강간은 성기를 무기로 하는 폭력행위이면서 심리적으로는 가장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주는 범죄행위이다. 사소한 성폭력이 때로는 의지상실과 같은 깊은 상처로 연결되기도 한다.

넷째, 강간은 성욕을 느낀 남성의 일시적 충동에 의해 일어나는가?
아니다. 거의 모든 성폭력은 계획 아래 의도적으로 발생한다.

다섯째, 강간은 낯선 자에게만 당하는가?
그러한 경우보다는 지금까지 잘 알고 있던 주변인에게 당할 때가 더 많다.

그렇다면 성차별과 성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아래의 내용은 우리의 현실을 한번 가상해 본 것이다. 진정한 남녀평등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자.

첫째, 인본주의의 삶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안이함을 추구하는 사회가 된다. 곧 학력이 높을 수록, 돈이 많을 수록 힘있는 자가 군림하는 사회가 되며, 대학은 출세를 위한 신분상승의 자리로 인식된다.

둘째, 군사력을 증강시키면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절대로 뒤지지 않으려는 사회, 그리고 그 군사력을 자국의 정치에 이용하는 사회가 된다. 역사에서 남을 침략했던 국가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은 사회였으며, 타국을 식민지로 삼으려하는 국가일수록 여성을 억압하는 경향이 강했다.

셋째, 생명의 가치가 경시되는 사회가 된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사회일수록 그리고 낙태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인식하지 못하며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넷째, 정신보다도 물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경제에서 부를 많이 소유한 사람들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그 목소리가 법이 되며, 사회구성원들에게는 경제발전만이 최고라고 믿게 만든다.

다섯째, 권력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회가 된다. 넓은 의미로는 장년층의 남성중심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일수록 노인이나 아동, 청소년, 부녀자를 위한 정책은 안중에 없기 때문에 불만이 커지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불만을 크게 전달하지도 못한다.

여섯째,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그 노력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투기와 같은 방법에 의한 벼락부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며, 그런 사회일수록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인간으로 보인다.

일곱째, 사회구성원의 행동에 대한 기준이 여러 가지인 사회가 된다. 법규를 위반하고도 자신이 특이한 존쟁임을 부각시키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이런 사회에서 처벌받는 사람은 언제나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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