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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혼전의 약속
[책의 차례로], [6장으로]


두 사람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골목안 인적인 드문 구석배기 여관인데다 이른 새벽이어서 바깥은 한산했다. 새벽바람이 싸하니 옷자락 사이로 파고 들었다. "자, 어서가. 난 목욕탕에 들렀다 가야겠어." 여관 간판이 보이지 않는 모퉁이까지 오자 태식은 손을 흔들며 먼저 큰길로 사라졌다. 현숙은 태식의 뒷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벽에 기대어 서 있다가 태식이가 뛰어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현숙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비틀어 짜놓은 것처럼 찌뿌듯하니 개운치 않았다. 현숙은 기분이 언짢았다. 얼마 전부터 태식이와 자고 난 아침이면 허탈하고 속이 상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현숙은 태식에게 안겨서 울고 또 울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다. 세상에 한이 많으신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셨고 술 때문에, 아니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 때문에 돌아가셨다. 태식은 현숙의 눈물은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그 울음을 다 받아주었다. 마치 '이젠 내가 네 아버지다, 그러니 마음껏 투정을 부려 보아라'는 듯이. 그러면서 잦아진 태식과의 잠자리였다. 현숙은 밤이면 헤어지는 게 힘들고 아침이면 태식과 함께 있는 게 부담스러운 이 현실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더 못 견디겠어. 이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걸까?' 태식은 푸근함과 안락함을 현숙에게 안겨주었다. 서로에 대한 열망은 점점 강해지고 빈번해졌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함께 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행복하며 세상의 근심과 온갖 걱정을 다 잊어 버리게 할 정도로 편안한 쾌락을 가져다 주었다. 손 끝 하나하나에, 온 몸의 마디마디에 전류가 흐르듯 했고 조금만 스쳐도 두 사람은 충동을 느꼈다. 서로의 작은 몸짓,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두 사람에게는 다 자극적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결, 세수한 뒤의 맑은 얼굴, 술 취한 눈빛과 목소리, 미소, 소 동작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기적처럼 두 사람은 느낌까지 비슷해지고 생각도, 말투도 닮아갔고 헤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현숙은 태식을 믿었다. 의심하지 않았다. 미래는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태식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태식에 대한 믿음은 현숙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다. 태식 앞에서 현숙은 거침이 없었고, 용감하였다. 그건 자유로움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지만 결코 속박하거나 억누르지 않는 자유. 오직 그 한 사람 앞에서의 자유. 현숙은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얘 눈빛이 빛나는 것 좀 봐. 날로 예뻐지고 있어." 현숙의 변화를 느낀 민영이가 현숙을 놀려대곤 했다. 태식은 여자의 몸이 이렇게 부드럽고 또 따뜻한 것이 놀랐다. 조금씩 조금씩 태식은 현숙의 몸에 익숙해졌다. 그 아득한 쾌감. 육체적 사랑에 눈을 뜨면서 태식은 현숙과의 잠자리만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갈수록 아련한 기다림과 가눌수 없는 쾌감은 불안과 초조, 막연한 두려움을 동반하기 시작했다. '임신이 되는 건 아닐까?' 임신에 대한 걱정과 불안 두 사람을 긴장시켰고 사랑의 여행 끝에는 언제나 현실이, 현실에 대한 책임이 버티고 있음을 확인 시켜 주었다. 그런데도 임신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선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지도 몰랐다. 일단 그런 얘길 누구한테 묻거나 알아보는 것 자체가 쑥스럽고 부끄러웠으니까. 또 이런 관계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것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었다. 그거 태식이 쪽이 훨씬 더했다. 혼자서 '대부분 다 잃지 않겠는가? 요즘 누가 고 결혼해야만 관계를 할까?' 하며 변호했지만 자신의 변화가 스스로도 놀라왔을 뿐아니라 그같은 합리화에 만족하기엔 뭔가 꺼름칙했다. 태식은 무엇보다도 문득문득 책임감에 짓눌려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했다. 어쨌든 현숙을 책임져야 한다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책임감의 구체적 내용이나 책임지는 방법, 대안은 애매하고 머리속만 복잡하지 딱히 정리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에겐 만남이 주는 행복과 편안함이 앞섰다.

달콤한 육체적 쾌락과 편안함이 그런 걱정을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평안의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아침이 되면 걱정과 불안과 시달렸다. "나...... 좀 이상해." 현숙은 생리 예정일을 보름이나 넘기고 있었다. 5월의 햇살이 공원 가득 눈부신데 현숙의 얼굴은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창백해 보였다. 태식은 속으로 무척 놀랐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 거 아냐?"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닌가. 태식은 노발대발 하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지?" 현숙은 아예 울상이 되었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자기 몸 속에 아기가 생기는 일인데 저렇게 대책없이 나오다니?' 태식은 현숙이가 답답하게 느껴져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여자가 임신 대비를 그리 안하고 지낼 수가 있어?" 태식은 심란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날카로와진 현숙이가 태식의 중얼거림에 충격을 받은 듯 매섭게 쏘아부쳤다. 태식은 실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임신 대비? 그건 왜 나만 하는거야? 남자도 피임할 수 있다더라. 그런 거 한 번이라도 자기 문제로 생각해 봤어? 태식씨 어쩌면...... 난 자기가 이렇게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현숙은 더 이상 말 할 기운이 없었다. 태식이에 대한 믿음, 애정 아름답고 애틋한 기억과 느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오직 서운함과 억울함, 모멸감만이 엄습해 왔다. 태식은 당황스러웠다. "진정해. 내가 사과할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좀 놀라서 그런거야. 자자, 참착하게 같이 생각 좀 해보자구...... 나 나가서 담배 좀 사가지구 올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태식은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매점으로 걸어 나왔다. '큰 일인 걸 , 사실이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가 아팠다.















결혼? 태식은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졸업반이니 취직해서 직장에 들어가고, 좀 안정이 되려면 2~3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게다가 현숙과의 결혼을 부모님이 찬성하실지 그것도 불확실했다. 어머닌 계모임 친구분의 딸 얘길 여러 번 하셨다. 무슨 재벌의 친척이라나 뭐라나. 태식은 '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머니'하고 말하려 했지만 좀 더 때를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심드렁히 받아넘겼다. "너, 자신 가져라. 내 아들이 어디가 어때서, 훤히 잘 생겼지, 좋은 학교 나왔겠다, 전망좋은 직장만 구하면 금상첨화인데." 어머니는 태식의 등을 툭툭 쳐주기까지 하였다. 태식은 담배를 사자마자 한 대 피워물고는 매점 앞 서성거렸다. 태식은 담배연기를 창자 속까지 들이마셨다가 땅이 꺼져라 뿜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피임책을 좀 사서 봐둘 걸.' 후회막심이었다. 친구 녀석이 술자리에서 하던 얘기가 생각났다. "야! 사나이가 여자의 생리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서 이렇게 헤매게 될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 녀석의 애인은 임신하자 녀석에게 알리지도 않고 낙태해 버렸다. 녀석은 자책감으로 며칠을 끙끙 않았다. 녀석의 술주정같은 고백이 태식의 가슴에 와 닿았다.

'어쨌든 낙태는 절대 안돼. 그럴 순 없지.' 태식의 아버지는 핏줄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남씨 가문을 더럽히면 안된다. 남씨 핏줄은 태식이 네가 순결하게 이어서 대대손손 번창하게 해야 한다." 종가집의 장손인 태식에게 거는 식구들의 기대는 과도할 정도였다. 어떻게든 해야지. 부모님을 설득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지.'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먹먹했던 가슴이 좀 뚫리는 것 같았다. "기분은 좀 어때? 괜찮아?" 태식은 얼굴 빛을 밝게 하려고 애를 쓰면 현숙 곁에 앉았다. 두사람 앞으로 풍선을 든 꼬마녀석이 제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뭔가 사달라고 칭얼대며 지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한가롭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웬일인지 현숙이가 벌떡 일어섰다. 아카시아 꽃잎이 부스스 현숙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현숙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어렵사리 말했다. "저기 있잖아 .....음.....걱정하지 말아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태식은 대꾸했다. '얘가 왜 이러나, 갑자기.' 태식은 멀뚱하니 현숙을 올려다 보았다. "나 저기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애." "나 원, 어딜 간다는 거야? 도대체 왜 그래?" 태식은 현숙의 팔목을 잡으며 이러섰다. "약국에 가서 생리대를 사야 돼. 조금 아까 화장실에 가보니까, 시작했단 말이야." 현숙은 대뜸 큰 소리를 치고는 태식의 손을 뿌리치고 쏜살같이 공원 밖으로 달려갔다. 태식은 어이가 없어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다가 기운이 빠지고 무릎이 꺽여서 무너지듯 벤치 위에 내려 앉았다.

###########다섯번째 이야기 - 혼전성교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들의 원시성

인간의 역사는 무지에서 과학으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자연현상에 관한 수많은 법칙을 발견해냈을 뿐만 아니라 인간사희의 변화와 발전에도 법칙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 개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인식하고 변화시킬 수 있듯이 인간 역시 스스로를 객관적 존재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제 자신의 생리적. 사회적 특징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인간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그 어느 때보다 우월합니다. 성문제에 있어서도, 처음에 인간들은 자연적. 생리적인 욕구를 채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것은 쾌락을 동반한 행위였고 종족을 번성케 하는 역학을 하였습니다. 동물은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존재이므로, 그들의 생존과 번식은 자연법칙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면서 또한 자연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처럼 생존과 번식이 자연법칙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인간에게 보다 유익한 방향으로 개조하기 위하여 자신보다 더 우수한 자손을 생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생산력인 낮고, 인지의 발달도 취약했던,. 아직은 자연의 지배력에서 벗어나서 못했던 원시사회의 인간들은 군혼이라는 형태로 성관계를 했습니다. 그 후 사회적. 집단적인 노동과 활동으로 점차 인지가 발달한 인간은 성욕을 사회적으로 조절. 통제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혼인방식도 발달하여 대우혼, 일부일처제로 변화했습니다. 물론 이같은 혼인형태의 변화에는 당시의 생산관계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만, 단지 생산관계의 변화 그 자체가 혼인형태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생산관계의 변화를 조건으로 하여 당시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볼수 있듯이, 성욕은 처음엔 인간을 지배하기까지 하였으나 인간이 사회적. 역사적 임무를 자각함에 따라 점차 그 위치가 하락하여 인간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생리적. 본능적으로 발생하는 성욕도 억누를 수 있거나, 다른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성욕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은 계획적으로, 남녀가 합의하여 목적의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지에 근거한, 무계획적인 성관계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는 원시성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관계

#원시적 성(1) ; 무계획성

현숙이와 태식이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원시적으로 성관 계를 했는데도 무사하니 말입니다. 실제로 무지하고 무계획적이어서 원시적으로 살게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생각 없이 좋아서 같이 잤는데 - 생각지도 않게 임신이 되어 - 계획에 없던 동거, 또는 결혼생활이 시작되어 아이들 키우다 보니 세월이 다 갔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아이를 키우게 된 경우는 다행입니다. 결혼 약속을 하고도 임신을 하면 낙태하거나 헤어지는 일도 부지기수 입니다. 91년 7월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효한 바에 의하면, 90년 5월에서 10월 사이에 중소도시의 32개 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미혼여성이 1,985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전체 대상자 중33%를 차지하는 숫자였습니다. 대략 한 해에 150만 명의 태아가 낙태에 의해 살해당한다고 하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 낙태아의 숫자는 기혼 여성도 포함한 것이니 앞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를 감안해서 1/3이 미혼의 경우라고 가정해 본다면, 결혼전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낙태로 죽어간 태아의 수가 약 50만 명의 된다는 계산입니다. 무계획적인 임신. 이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도 계획하는 데, 하물며 후손을 낳아 키우는 이 중요한 일을 계획도 없이 저지른단 말입니까.

#원시적 성(2) ; 비주체성

현숙이가 태식이와 성관계를 하게 된 근거는 태식이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합법적인 성관계는 결혼을 통해 보장된다는 우리 사회의 성규범은 남녀 모두이게 있어 결혼을 전제로 한 성관계라면 윤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프리섹스가 이와 무관한 자유연애주의라면, 혼전 성관계는 결혼이라는 전제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프리섹스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이규범에 따라 성관계의 윤리를 형성하고 있지요. 성관계를 하면 책임(결혼)을 져야 한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혹은 성관계를 하기 위해서 결혼을 빌미로 여성을 유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혼인빙자 간음이 그런 경우입니다. 여성들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을 결혼상대자로 사랑한다고 믿으면 성관계에 응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주관은 객관적인 근거를 가져야 비로소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난 널 사랑해. 난 널 책임질 수 있어. 사랑하다면서 왜 안된다는 거야?" 농밀한 표현과 그럴듯한 분위기만으로 믿음의 근거를 찾는 어리석음이 무계획적인 성관계를 허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만약 상대 남성이 혼인을 빙자해서 성관계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혹은 단지 책임감만으로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여성의 삶은 불신으로 얼룩지거나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비참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혼전 성관계는 남녀 모두의 자각적이고 주체적인 결정이어야 합니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한 환경인 조성되어 있는 조건하에서 여성들은 보다 더 주체적이어야 합니다. 즉,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진다는 주인된 태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사랑의 감언이성이나 결혼언약만을 믿고 몸과 마음을 내주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성의 요구라도 성관계를 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사랑한다는 근거가 불충분한데도 성관계를 한다면 이후에 닥칠 불이익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단지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운명이 그 남자에 달렸다는 의존적인 태도를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원시에서 과학으로

그게 가능한가, 감정이 치솟고 열이 오르는데 근거와 계획이라니, 비현실적인 생각이 아닌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과 달리 사회문화적 인류의 유산을 담지하고 있고, 자각한, 의식적으로 사고하며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피임법의 개발은 이 가능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과학적 진전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또 인간이기 위하여 당연히 합의하에 계획적으로 성관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성관계 역시 남녀 두 사람의 인간관계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둘 사이에 상호존중과 배려, 인간적 유대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원칙이 지켜진다면 성을 노래한 인류의 문화유산은 두 사람의 만남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관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합의하에서 누가 어떻게 피임할 것인가를 사실 문제도 아니겠지요. 성욕을 자연스러운 것,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과학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 인식이 우선 중요합니다. 그 다음엔 실천적 의지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성욕을 과학적으로 다스리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면서 지키지 못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특히나 성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실천문제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실천없는 자각은 무용지물입니다. 아무리 말로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몸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아는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더구나 사람은 인식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갖춘 유일한 존재인 것입니다. '원칙적으노는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옳지만 실행하기 어려우니 원칙을 파기하자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현실적으로는 어려워도 조금씩이나마 원칙적으로 실천하려고 하는 게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요? 결국 실천의 문제는 올바른 것에 대한 동의를 전적으로 하고 있느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전적으로,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천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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