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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그만건강만점


8 찌개를 끓이는 남편
[책의 차례로], [9장으로]


전철을 타면 현숙은 늘 문 옆에 붙어 선다. 문 앞에 '기대지 마시오'라고 씌어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일단 아무리 붐벼도 거기에서 있으면 제대로 내릴 수가 있고 사람들 북새통을 모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거리며 건물들, 가끔씩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하늘이며 공원의 나무들, 아직 남아있는 밭뙈기들을 마음껏 쳐다보고,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턱없이 부족했고 변두리에 집을 얻은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확보한 일종의 사색의 시간인 셈이다. 오늘 귀가 길의 차창 밖은 어둡고 흐리다. 비가 올 것같다. 벌써 후덥지근한 것이 반팔 옷을 입어도 좋을 듯하다. 차창 밖으로 반짝거리는 불빛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미혼 때라면 그 불빛들은 따뜻한 저녁상, 가족들의 정겨운 웃음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숙은 이제 그런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현숙은 늘 시간에 쫓기는 자신이 오늘따라 처량스러웠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결혼 후 시간을 정신없이 흘러갔다.

신문 한 줄, 책 한 자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현숙은 회사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쪽에 편중되거나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겠다. 1시간, 아니 30분조차도 아깝고 귀했다. 귀가 길에는 늘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떠올렸다. 전철에서 내리니 비가 후두둑 흩뿌리기 시작했다. 현숙은 불현듯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 생각이 났다. "어머나!" 현숙은 마구 뛰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태식은 결혼 전에도 집안일에 거의 손을 대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얼씬거리기만 해도 큰일이 난 것처럼 호통을 치셨다. "아니 얘가 왜 여기서 어물고리니, 사내녀석이 궁상스럽게?" 마음과 생각으로야 아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데 늘 동의를 하고 있었지만 그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집이란 휴식의 터전이었고 안락의 제공처였다. 회사에서 머리가 터져나갈 듯이 그저 집에 가서 만사 제쳐두고 드러눕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가끔 '현숙이가 이것 좀 재줘, 저것 좀 봐 줘' 해야 겨우 아주 게으르게 움직였다. 더구나 현숙이가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불 꺼진 집에 혼자들어와 있는 게 영 불만이었다. 태식은 현숙이가 자신에게만 자상하게 신경을 써 주기를 은근히 바랬던 것이다.

오늘도 태식은 현숙보다 일찍 들어왔다. 냉장고를 열고 우유 한잔을 마시고, 웃옷을 벗고 대충 내던지고는 TV를 켰다. 현숙이 늦는 날, 태식을 위로하는 건 오직 TV뿐이었다. 시시한 오락프로 하나를 건성으로 보고 나니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고 비어는 것을 바라보는데 현숙이가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 뛰어 들어왔다. "빨래는? 빨래 걷었어?" 현숙은 태식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방을 던져 놓고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태식은 멍청히 서서 현숙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이것 봐. 다 젖었어." 현숙은 울상이 되었다. 가슴 한가득 현숙의 팔에 안긴 빨래들은 축 쳐져 있었다. "일찍 들어왔으면 이런 거 좀 해주고 그러면 안돼?" 현숙은 태식이 야속했다. "비오는 게 안 보여? 비가 오면 혹시 빨래가 없을까 옥상에 좀 올라가 보면 안돼?" 현숙은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보였다. "아, 그까짓 빨래 다시 하면 되는 걸 가지고 뭘 그래?" 태식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퉁명스럽게 굴었다. 현숙은 어이가 없었다. 태식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는 심통부리는 아이처럼 TV앞에 다시 앉는 것이 아닌가? 개수대 위엔 아침 설거지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나 아직 저녁 안 먹었어!" 거대가 무슨 유세라도 부리듯, 당당하게 저녁상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현숙은 기기 막혔다.

"난 뭐 놀다 들어온 줄 알아? 태식 씨 저녁은 태식 씨가 차려 먹어. 난 지금 막 들어와서 좀 쉬어야겠어." 현숙은 빨래더미를 아무렇게나 처박았다. 그리고 창고처럼 쓰는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후덥지근하고 텁텁한 공기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현숙은 길이 들지 않아 잘 열리지 않는 창문을 땀을 뻘뻘 흘리면 겨우 열었다. 빗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내가 얼마나 애를 쓰느지도 모르고......' 태식에 대한 원망이 솟구쳤다. 현숙은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현숙은 가사노동은 으레 자신의 일이려니 생각하고, 태식은 가끔식 도와주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판단해 왔던 자신을 탓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일도, 집안일도 흠이나 티 안나게 잘 하려고 했으니....말도 안되는 소리지.' 현숙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여자의 본업이 집안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이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자신의 솔직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자문해 보았다. '태식 씨가 집안일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난 정말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난 슈퍼우먼이 아니야.' 빗줄기는 현숙의 머리 속을 씻어주듯 세차게 창가에까지 부딪쳐 내렸다. 현숙은 뭔가 구수한 냄새 때문에 벌떡 일어났다.

꿈 속에서 내내 뛰어다닌 탓인지 온몸이 나른하고 어지럼증도 느껴졌다. 어제밤 태식은 골방에 들어가 버린 현숙을 불러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현숙은 태식의 사과를 듣고, 앞으로는 가사일을 분담할 것을 다짐받고야 비로소 골방을 나왔던 것이다. 태식은 자리에 없었다. 부엌에선 찌개가 펄펄 끓어넘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현숙은 렌지 불을 껐다. 마침 태식이가 헉헉거리며 들어왔다. "더 자지 않구서. 잘 잤어? 왠 잠꼬대가 그리 심해?" 태식의 손에는 두부봉지가 들려 있었다. 현숙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집 앞 슈퍼엔 아직 두부가 안 왔대. 그래서 저 넘어 구멍가게까지 갔다 오느라구" 태식은 두부봉지를 쳐들어 보였다. "나 지금 굉장히 배고프다. 어제밤 진짜루 저녁 안 먹었다구. 자, 오늘 아침엔 이 남편의 찌개 솜씨를 맛보시죠, 사모님!" 태식은 현숙의 볼을 장난스럽게 잡아당겼다. 밤새 내리던 비가 언제 그쳤는지 맑은 햇살이 부엌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 여덟번째 이야기 - 가사노동 분담문제

#가사노동이라는 것

가사노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집안일은 협소하게는 부엌일이나 청소, 빨래와 같은 단순 반복적이고 소비적인 노동이지만, 넓게 보면 육아나 가정관리 등과 전체적인 살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살림이란 말 그대로 사람을 살게 하는 직접적인 행위의 총체입니다. 먹고, 쉬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활동, 그런 일상적 삶을 보다 품위 있고 풍요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노력하는 것, 이같은 살림은 노동력을 재생산한다는 차원에서 전체 사회의 유기적인 흐름을 완전하게 해주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상품으로서 교활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보적인 여성들을 중심을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는 가사노동이 갖는 사회적 의의를 재평가함으로써 그 노동을 주로 담당하는 여성의 지위를 격상시키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육아를 비롯한 아이들의 교육문제나 보건, 위생과 같은 가족의 건강문제, 노후생활의 보장, 문화적인 혜택, 공동 세탁소나 공동 밥집, 식당과 같은 사회적 시설이 국가 및, 공공기관의 책임과 부담으로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같은 본격적이고 본질적인 사회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것은 상품이 되지 않는 것에 그렇게 투자를 하려면 경쟁과 독점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의 운동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의 상품화되는 방향에서 사회화가 추진됩니다. 각종 가정용 전자제품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치원, 학원, 각종 기예를 익히거나 배우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하고 위생적인 생활을 하려해도 돈이 필요합니다. 식당, 병원에 가려해도 마찬가지이지요. 이 모든 비용을 구하기 위해 주부들을 취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최근에는 가사노동의 가격을 매기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대략 90만원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돈을 누구에게 달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게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영원한 여성의 일?

가정과 사회로 사람의 생화영역이 명확히 구분되기 어전, 즉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는 집안일과바깥일이 섞여 있었습니다. 물론 이 때에도 여성은 집안일을 전담한 데다가 바깥일까지도 거들므로 여성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대의 가정과 사회의 구분,그리고 이에 근거한 남녀의 역할 규정이 또한 명확히 구분되었다는 사실은 여성이 가정적 존재임을 그 어느 시기보다 선명히 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이 선명성은 자본가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었지요. 즉,. 여성이 원래 가정내 존재임을 강조함으러써 가사노동이 실제로 자신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여성노동력을 구입할 때에도 보다 싼 가격을 매길 수 있으며, 또 언제라도 가정으로 돌여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을 여성의 노동력을 광범하게 사회로 이끌어내게 되었고, 따라서 이제 여성의 가정내 존재라고 하는 등의 이야기는 현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성의 일은 집안일, 여성은 가정내 존재라는 망령이 떠돌아 다닙니다. 이데올로기, 문화적인 상징이나 관습이 이토록 집요하고 오래도록 남아있는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여성들은 가정내 존재가 이미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여성들 스스로가 사회적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진출하여 활동한다는, 그것도 결혼할 때까지 잠시만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평생, 죽을 때까지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 집요한 껍데기들과 어쨌든 싸워야 할 게 아닙니까? 그건 알맹이도 없는, 전혀 알맹이와 다른 껍데기일 뿐입니다. 현숙이가 자신도 여전히 자신의 본업은 주부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는 고백을 귀기울여 볼 만합니다. 게다가 이 가사노동은 개별적이고 소비적인 노동입니다 인류의 반이나 되는 여성들이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로 소모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사노동이 사회적으로 안정될 뿐 아니라 사회적 노동으로의 전화가 실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인류의 발전이 이전보다 휠씬 급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반찬, 걱정, 청소하기 등에 대한 걱정과고민에서, 보다 사회적인 대상으로 시선을 옮기는 여성들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얘기니까 말입니다.

#눈물겨운 노력들

전체 사회가 해결할 일이 가사노동 사회화의 과제라고 하면, 또 이 문제는 단순히 가사노동만이문제를 해결해서 될 일도 아니라면, 우리 개개인 노력은 어떤 것일까요? 전체적인 변화는 개별적 노력 속에서부터 움터 나오는 것이니 이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사노동을 부부간에 부담하는 것. 그것이 개별적 차원에서나마 노력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부부간에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공공기관 등을 출입하는 일, 아내는 가정 내적인 관리 등으로 역할분담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서로 일을 미루다가 한꺼번에 산더미같이 쌓인 빨래며, 선거지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는 요일을 정해서 분담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가사 노동의 공정을 세분화해서 분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빨래의 경우, 1빨래를 세에넣는다. - 2.세탁기를 작동하여 빨래를 끝낸다. - 3. 빨래를 꺼낸다. - 4.빨래를 넌다. - 5.마른빨래를 걷어서 서람에 정돈한다는 다섯 개의 공정으로 세분하고, 이 중1에서 4까지의 공정과 나머지 공정을 구분, 역할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빨래는 누구, 요리는 누구 하는식으로 구분하는 게 보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경우에 여성들은 남편 탓을 합니다.'조금만 신경을 안쓰면 그들은 모두 퇴행현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또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되더라구.' 또는 '여자들이 너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될 것 아닌가?' 가사노동 분담이 특히 남성들에게 고역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별의 문제이기에 앞서서 사회문화적 영향이 큰 탓이니 말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20년이 넘도록 태식이처럼 길러졌습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식이의 경우와는 완전히 반대방향에서 길러졌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가사노동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는 그래도 싸움을 할 명분이라도 있지만 전업주부들은 남편의 그 어떤 항변에도 맞대응을 하지 못합니다. 젊은 세대로 내려올수록 이 문제는 현명하게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만 아직도 부부간의 가사노동 분담이 생각처럼, 개인의 의지대로 쉽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한 관점, 그러나 여유있는 대응을

가사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사항은 부부가 살림의 주인이라는 자각입니다. 앞에서 살림 - 가사노동의 의미를 살펴보았듯이, 살림은 서로를 살찌우는 기본 생황을 위한 활동이며 이것에 주인으로서 자각한다는 것은 부부가 된 이들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주인이 되어야 할 사람이 그저 객인 양 '어찌되겠지' 하였다가는 그 살림이 어떤 판이 될는지 뻔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중심, 죽 가정살림의 두 중인으로서의 자각이 서면 나머지는 서로의 처지나 조건,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서 나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때 특히 부엌일과 관련된 협소한 의미의 가사노동 분담에 있어 아직까지 여성이 숙련된 노동자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남편들은 대개 시다(보조공) 수준일 것입니다. 배우다 도망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게다가 이 보조공은 자신이 꼭 숙련공이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니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잘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가사노동이 전반적으로 사회화되어도, 사회의 기초와 전체 뼈대가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해도 가사노동에 관련된 남성들의 관습, 아니 이것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 관습이 한꺼번에 급진적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바뀐다고 사람의 생각이 금세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그래서 우리는 쿠바 사회주의가 '가사노동법'을 제정했지만 왜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같은 사실이 남성들의 각성과 실천적 노력을 방기하는 어떤 시도도 합리화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책의 차례로], [9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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