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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이가 온다
[책의 차례로], [12장으로]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만으로도 질려버릴 것 같은 방이었다. 현숙은 그냥 도로 나가버릴가 싶은 심정을 꾹 참아 눌렀다. "옷을 다 벗고 이 가운을 입으세요." "다요?" "예, 팬티까지 다요." 간호원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현숙은 간호원의 기세에 눌려 끽 소리도 못하고 고분고분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현숙은 특수하게 제작된 침대 위에 올라가 누우면서도 울상이 었다. 병원에 올 때가지만 해도 이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태식과 현숙 두 사람은 겨울에 아기를 낳기로 하고 봄이 되면서부터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가을이 다 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조바심이 났다. "혹시 그전에 낙태한 게 안 좋았던 게 아닐까?" 결혼 전, 태식이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서로가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 임신이 되어 엉겹걸에 낙태를 한일이 있었다. "일단 병원에 가서 알아보자." 병원에서 현숙부터 조사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현숙의 나팔관을 촬영하자고 나섰던 것이다. 천정에는 회고 푸른 빛의 형광등이 달려 있었다. 남자 둘이서 간호원과 함께 현숙이 곁으로 다가왔다. "조금만 참아요." 간호원이 표정도 없이 말했다. 우산대같이 길다란 금속 자루가 현숙의 질 속으로 무지막지하게 들어왔다. 현숙은 깊은 교통을 느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원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길 보라고 지시했다. "이게 아주머니의 자궁입니다." 의사인 듯한 젊은 남자가 현숙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오른쪽 천정쪽에 모니터

두 개가 달려 있었고 모니터 화면에는 나팔꽃처럼 생긴 자궁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아' 현숙은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얼마나 작고 아름다운지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지금 시약이 돌고 있는 게 보이지요? 검게 움직이는 게 시약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오른쪽은 잘 안돌아가지 않습니까? 오른쪽 난관이 불순물 때문에 좋질 않아요.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이 끝났고 현숙은 또 한 번의 고통을 느꼈다. 현숙은 모니터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지만 모니터의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다. "책에서만 볼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는데, 저것이 내 몸속에 있구나, 저게 내 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이 일어나드라구." 현숙은 병원에 갔던 일을 소상히 태식에게 말해 주었다. "산부인과에는 여자 의사들만 일하게 할 수 없나?" 태식은 그 점이 마음에 걸리고 못마땅했다. "그리구 꼭 그렇게 밖엔 여자 뱃속을 못 본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나도 옷을 벗고 누울 때까지도 그냥 일어서서 나가 버릴까 싶더라구." "어쨌든 원인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 얼마나 치료를 받아야한대?" "글세, 그건 잘 모르겠어...... 그런데 그 꽃처럼 생긴 예쁜 자궁을 보니까 옛날에 우리가 지워버린 아기 생각이 뭉클하니 솟아나더라." 현숙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그때는 무덤덤하게 해치웠던 일이었다. "옛날 일, 자꾸 생각하지마. 어쩔 수 없잖아. 몸에 해롭다." 태식은 아이를 갖는다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좀 봐. 이게 수정란이야. 와! 이게 상기는 것까지도 정말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구만." 태식은 현숙의 병원치료 이후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내 정자 중에서 제일 힘세고 강하고 빠른 놈이 당신의 난자와 만나야 하는데,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주 작단 말이지. 더구나 우리는 난자 생산공장 중에 하나가 영 부실했더란 거 아냐?" 현숙이는 엉겹결에 오른쪽 배를 문질러댔다. "수리중이야. 조금만 기다려." "좋아 좋아. 이 수정란은 정말 역사적인 거라구. 수억 마리의 정자들 중에 엄청나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은 오직 하나의 정자가 수정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난 오늘 감동받았다. 당신 안 그래?" "당신 정자들이 더 튼튼하고 빨라야 되겠는데, 내 난자는 최고의 용사하고만 만날 거니까." 현숙과 태식은 얼싸안으며 큰소리로 웃었다. 생명의 탄생, 그리고 그 생명의 책임있고 믿음직한 보호자와 지원자가 되는 준비는 경이롭고 따뜻하며 애정이 넘치는 것이었다. "아이가 커가는 걸 봐. 참 신기하지?" 현숙은 태아의 성장과정을 그린 화보를 보면서 말했다. 3개월쯤 된 태아의 모습에 시선이 고정된 현숙이가 풀이 족은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눈, 코, 입이 다있어, 손가락, 발가락도 다 있고. 아, 우리가 무슨 일을 했던 거지?" '아이를 지우는 일은, 또 태어나게 하는 일은 성장할 젊은 사람들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판단과 결정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 부모가 된다는 것. 그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또 마음대로 되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임신입니다."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한 지 석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현숙은 몸에 이상한 기운을 느껴 여자 이름이 걸린 산부인과를 골라 진찰을 받았다. "예?" "임신이에요, 축하합니다." 현숙은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세상이 온통 노래소리로 가득 찬 것같았다. "절데로 낙태는 하지 마세요. 보아 하니 나이도 있는 것 같으신데...."여의사는 신신당부를 했다. "안합니다. 그럼요 낙태라니요." 얼마나 준비하고 기다리던 아이인가, 뱃속에서 아이가 벌써 소리를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 이제 나 여기 있어요!' 현숙은 몸과 마음이 환히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널 위해서라면 뮈든 할꺼야" 현숙은 아이와 함께 뛸 듯이 거리로 나갔다. 나무와 하늘과 바람이, 이 도시 전체가, 아니 이 세상 모두가 뱃속의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열한번째 이야기 - 임신에 대하여

#잉태의 과학

임신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미시적인, 아주 섬세하고 세분화된 생리적 현상에 대해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임신은 과학이고, 법칙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신이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수정란이 형성된 후 자궁에 안착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정자는 성인남자의 경우 하루에 7천 2백만 마리 정도가 고환에서 생산됩니다. 한 번 사정할 때 정액을 타고 나가는 정자는 약 3억~ 5억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정자의 수명은 약 72시간. 이시간 동안에 난자와 만나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운명입니다. 수억 마리의 정자중에서 난자 근처까지 도달하는 정자는 100마리 정도이니 난자와 결합된 정자의 생명력은 굉장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난자는 평생 동안 약 400개 정도가 배란됩니다. 한 달에 하나씩, 그러니까 여자가 배란 할 수 있는 시기는 약 30여년 정도입니다. 배란된 난자의 수명은 10~12시간 이므로 사실상 수정이 가능한 기회는 한달에 반 나절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정란은 그야말로 숨가쁜 생존의 성취물이며 자랑스런 생명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임이란 수정이 안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정자의 운동을 주로 방해할 것이냐, 난자의 운동을 방해할 것이냐에 따라 방법의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간의 실증적이 연구에 따르면 정자의 운동을 방해하는 편이 두 사람을 위해 좋은 선택이라고 하지요. 그건 콘돔을 사용하는 것과 정관수술, 질외사정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초체온법이나 점액관찰법, 오기노식 월경주기법 등으로 피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가임시간 동안 성교를 금하거나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이 방법의 공통점입니다. 이 방법들은 부부의 절제된 노력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수정란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을 불임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꼭 여자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들을 보면 정말 부모가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임신이 되었다가도 유산이 되어 버리는, 즉 수정란이 제대로 발육. 성장하지 못하고 중간에 죽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자연유산의 경우와 인공유산의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자연유산의 경유와 인공유산의 경유로 나뉘어집니다. 자연유산은 수정란이 제대로 자궁에 착상하지 못했거나 수정란 자체가 부실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나타나며,. 윈치 않는 결과입니다. 인공유산은 의도적인 태아살해입니다. 인공유산은 흔히 낙태라고 하는데 현숙이나 태식이 후회하듯 가능한 삼가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모체에도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뿐 아니라 수정란은 이미 하나의 생명체라는 차원에서 판단해 볼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무계획성에 의한,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경우는 물론이고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태아유기, 살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귀한 손님 맞이하기

임신을 하게 되면, 아니 임신을 하기로 마음먹고 노력하기 시작하면 부부 사이가 달라집니다. 우선 서로의 몸은 이제 각자의 것이 아니며 또 둘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생명의 모체내에 자신의 터전을 잡아나가는 데 있어 두 사람의 육체는 건강해야 하고 또 순결해야 합니다. 또한 서로의 정신이나 마음이 하나로 일치되기 위한 노력이 필사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심한 배려, 애정 깊은 태도, 특히 남편은 아내를 그 어느 때보다 각별히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만은 단지 자신의 핏줄에 대한 관심과 욕심 때문에 아니라 인간이 누리고 느낄 수 있는 인간끼리는 유대가 표출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임신이 일정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때 두 사람의 일치는 더욱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한 인간관계를 목적의식적으로 창출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 아니 하나의 존엄한 인간이 성숙한 남녀의 몸을 빌러 탄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확연해질수록 부모란 자식을 소유하거나 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가족으로, 공동운명체의 성원으로서의 사람을 만들어내며, 그를 잘키워낼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입니다. 마치 귀한 손님이 방문하게 되었을 때 온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음식을 준비하듯 말입니다. 인생 최고의 손님인 우리들의 아기가 오는데 준비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실종되는 모성보호

아기를 임신하여 건강하게 출산하는 문제는 개별 가족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이 탄생한다는 의미이므로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며, 그 책임 영역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성보호에 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아서 우리를 서글프게 만듭니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증가하는 여아 살해, 임신한 여자들에 대한 해고나 감원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건만 그 엄연하고 숭고한 사실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임신을 문제로 해고나 불이익의 처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법적으로는 보장되어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압력과 은근한 협박이 임신한 여성이나 임신을 하려는 여성으로 하여금 퇴사를 생각하게 만들고, 때로는 강요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노동부에서 제기한 시간제 근로제가 시행될 경우 여성 시간제 근로자에게는 산전산후.월차.생리휴가를 주지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임신을 하고도 직장생활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시간제 근로제의 시행 및 확대는 정상적인 고용구조까지 불안하게 하므로써 전체 여성의 고용불안정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임신 등의 문제로 불이익 처분을 할 수 없다는 법조항들이 아무리 그럴 둣해도 현실에선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게 됩니다. 여아 살해에 이르면 임신이 인간의 유대를 실현하는 원초적 행위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아예 무색해집니다. 자연분만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제왕절개 분만이 의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임신과 출산조차도 상업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저울질되는 우리 사회의 극도로 피폐화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은 정부가 25세의 여성운동가 이중섭 씨를 임신 중임에도 차가운 감옥에 가두고, 출산 후엔 다시 아기와 함께 수감하는 기막힌 사건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태어남을 위하여

임신을 계획하거나 임신중인 모든 부부들은 태식이네처럼 서로의 몸을 새삼 소중히 여기고, 서로의 생각이나 정서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단지 부모가 될 부부의 준비만으로 아이가 충분히 평등하고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아기는 가족의 한 성원으로 태어날 뿐 아니라 사회의, 민족의 성원으로 태어납니다. 아이는 부모와 그의 조상이 형성한 사회 속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니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태어난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조건과 영향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부모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전반적 규정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 사회가 정치적으로 타국에 예속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후진적이며, 문화적으로도 낡고 어리석은 관습에 얽매인 상태라면 그러한 사회에 태어나는 아이는 그만큼의 고통과 억압을 짊어지고 자라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된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고백은 이같은 사실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젊은 시절에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을...... 이못난 어미는 아들을 감옥에 가게 해놓고 이제야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쏟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태교등과 더불어 아이를 맞이하는 준비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그아이가 태어날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될 부부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태교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며 활동하는 부모를 통해 태어나는 아이는 역시 적극적이고 건강하게 잘라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태어남을 위해 우리 부모된 이들은 자랑스럽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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