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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위기의 시절
[책의 차례로], [13장으로]

일년에 한두번 정도 가보는 연수원 길이 이번만을 각별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이었다. 남쪽으로 난 고속도로 가의 산과 들은 맑고 쾌청했다. 태식은 창가에 기대어 진달래빛 산야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부부생활 4~5년이 고비이고,9~10년이 또 고비라고 하더니 내가 그런 생태인가?' 현숙은 아이를 낳고부터 아이에게만 정성을 쏟는 것 같았다. 아이가 부부 사이를 더 밀접하게 한다던 동료들의 말은 태식에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아이로 인해 현숙으로부터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아니, 그 때문이 아니라 현숙과는 깊은 강이 흐르듯 서로 교감이 점점 적어지는 상태였다. 도대체 왜 이럴까? 태식은 생각의 갈피갈피에 이런 저런 질문을 새기다 어느 사이엔가 잠이 들었다. 사원 연수교육은 기획실 소관이었다. 태식은 신입사원 담당이었고, 이번이 네 번째였다. 미리 와 있던 직원이 정문에서 태식을 맞이했다. "이 주임은 어딜 갔습니까?" 이 주임은 연수원에서 근무하고 직원이었고 태식과는 호흡이 잘 맞아서 술자리도 여러 번 같이 했던 터였다. 태식이 온다는 걸알 것이고, 그러면 정문에는 이 주임이 나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오늘, 출근 안했답니다." 동료직원은 이 주임이 오늘 이혼 수속을 밟느라고 출근을 못했다고 알려주었다. "결국 이혼하는 걸로 끝나는군....." 태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태식을 쫓아오든 봄햇살은 태식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저 혼자만 마당에 남겨져 뜰에 부서져 내려 앉았다. 이 주임의 부인은 남편이 내내 한직인 연수원에만 근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 얼마나 무능하고 못났으면 내내 연수원 주임자리냐는 것이었다. 이 주임으로선 곤혹스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살 맛 안 나는 비난이었다.

"그래요. 난 못난 놈입니다. 여편네 하나 제대로 마음대로 못하니 말이죠." 작은 체구지만 다부진 이 주임은 술이 취하면 무너져내려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자라는 것, 남자이기 때문에 져야 하는 짐이 이토록 무거운 것인가를 이 주임을 보며 새삼 깨우치곤 하던 태식이었다. "야 이주임! 술 맛 떨어진다. 그깟 마누라 줘 패! 흠씬 두들겨 주라구! 아, 누군 출세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구 있는 줄 아냐구, 너 땜에 내 신세가 더 엉망이 된다구 호통도 치구 말이야!" 연수가 끝나면 벌어지곤 했던 술판에선 동료들이 그렇게 이 주임을 부추켰다. 이 주임은 동료들의 부추김이 아니어도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면, 술김에 온 집안을 부수어 놓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 주임의 아내는 더욱 드세어졌고, 이 주임은 더 풀이 죽었다. 집으로 않고 그냥 연수원에서 잠자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이 주임의 자리가 휑뎅스럽게 비어 있었다. 태식은 이 주임의 책상머리에 걸터앉았다. "사람들은 다 입소했습니까?" 동료직원은 파일을 가져와서 태식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명단입니다. 방배치까지 끝난 상태구요. 저녁식사 후 시작하기로....." 파일을 넘겨받은 태식은 동료직원의 설명을 건성으로 들었다. 태식은 얼마 전 회사자리에서 보았던 이 주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연말 희식은 그동안 수고한 연수원 식구들까지 포함해서 거하게 치러졌다. 일차 식사를 끝내고 여직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남은 남자직원들끼리 이차를 하기 위해 스탠드 바로 옮겼고, 거기에서 이 주임은 또 술에 흠뻑 취해 버렸다. 놀기 좋아하는 기획실의 조 대리가 분위기를 들쑤신 것도 그때 쯤이었다. 연말이었고, 사람들은 홍조를 띠고 취홍을 더 즐기고 싶어했다. 삼차는 룸살롱으로 잡혔다. 태식은 이 일련의 절차를 누차보아 왔었고, 동료들의 눈초리를 뒤로 한 채 삼차에선 빠지곤 했었다. 삼차 룸살롱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늘 술자리만 벌어지면 사람들을 들쑤셔 삼차를 진행하려는 조 대리는 그런 태식을 비아냥거렸다. "아봐, 남주임. 나도 기혼이야 거 꽤 순결한 척 하는데 이거 기분 나쁘다구!" 태식은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는 언제나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은 이 주임이 걱정되기도 하고 웬지 마음이 어수선해서 삼차에 따라갔다 여자들이 남자들 사이사이에 끼어앉았다. 가슴이 다 드러나 보이고 허벅지가 태식의 엉덩이 엎에 찰싹 들어붙었다. 불빛은 오렌지색이었고 몽롱한 술잔들이 오갔다. 태식은 이 주임이 한 여자와 농을 걸지만 않았어도 태식 역시 옆의 여자와 호텔로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저거 봐. 저 고상하던 남 주임도 별 수 없단 말이지." 태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면 집으로 와 버렸다. 그날 이 주임은 마치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 처럼 자신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모든 규범,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신을 풀어내어 되는 대로 살려는 사람 같았다. 일정은 새벽 한 시가 되어 모두 끝이 났다. 언제나 첫날이 제일 고달프다. 별 내용이 없는데도 뚵분들 챙기랴, 어수선해지지 않게 처음부터 별 내용이 없는데도 윗분들 챙기랴, 어수선해지지 않게 처음부터 기강을 잡으랴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태식은 샤워를 하고 자신이 늘 묵던 방에 들어왔다. 회색의 천정이 추위를 느끼게 했다. 연수원의 밤은 늘 조용하다. 창밖에는 별들이 차가운 빛으로 반짝거린다. 태식은 침대 위에 벌렁 누었다. '현숙이는 지금쯤 자고 있겠지.' 태식은 현숙에게 자꾸 짜증을 냈었다. 왠지 회사일도 시들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저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생활, 도대체 인생은 무엇인가? 승진을 하고, 그래서 중역이 된다. 그리고? 태식은 애초에 자신의 꿈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심란해졌다. 그래. 난 공부가 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어떻게?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아이는? 생활은?'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태식을 괴로혔다. 생활이 무의미해지면서 현숙이와는 별로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도 않게 되었다. 마치 현숙이가 자신의 발목을 붙들고 더 나아가지도, 또 다시 되돌아가지도 못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때문이었다. 현숙은 이런 자신의 속도 모르고 가사노동 분담을 요구하고, 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요구했다. 현슥은 그저 요구만 해대는 요구의 귀신 같았다.

'태식 씨. 술 좀 작작 마셔라. 몸이 견뎌 나겠어?' '여보. 일요일엔 아이도 좀 보고 산보도 좀 합시다. 당신이 요리 해주면 더 행복해질 거 같은데?' '사람들 있는 데서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여편네가 뭐야? 아내라든가, 누구누구 씨라든가, 그렇게 신경을 쓰기가 힘들어?' 씻고 자라, 청소 좀 해라, 머리깎을 때가 아니냐, 양말을 방구석에 처박아 두지 마라........ 태식은 벌떡 일어나 옷도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이 뺨에 부딪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맥주나 한잔 했으면 좋겠는데....' 태식이가 입맛을 다시며 정문 쪽으로 걸아가는데 어둠 속으로 비틀거리며 누군가 오고있는 게 보였다. "거기......아니, 이주임 아냐!" 태식은 달려가 이 주임을 부축했다. "아, 이사람 웬 술을 이렇게....." 이 주임은 눈이 반이나 감긴 채 태식을 쳐다보았다. "예! 저 오늘 술 좀 했습니다. 오늘 제가 술을 좀 했어요....." 이 주임은 혀꼬부라진 소리로 태식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그래. 알았어요. 알았어. 잘 했습니다." 태식은 허우적거리는 이 주임을 끌어안 둣 부축해서 현관 안쪽소파에 앉았다. 이 주임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일단 이 주임이 거쳐하는 방으로 옮겨야 했다. 태식이 이주임의 흐트러진 자세를 다잡아 들쳐업으려는데 이 주임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허영-. 내가 오늘 뭘 하고 온 줄 아십니까? 이혼을 했어요. 이혼요. 도장을 그냥 꽝 찍어주고 왔다 그말입니다." 이 주임은 꽝 소리를 하며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빈 홀에 쩌렁하며 큰소리가 울렸다. "아, 이봐요 이 주임! 여기서 소란피우면 안되니까 방으로 갑시다. 어서요."

위에서 이 일을 알게 되면 이 주임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세상에 나같은 놈, 이 병신같은 놈, 이제 더 일할 맛두 안 나요. 허영-." 난감한 일이었다. 이 주임은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남 주임! 우리 마누라가, 아니 이제 아니지. 글세 그 여자가 내가 도장을 찍을 줄 몰랐던지, 도장을 흘리며 웁디다. 막 우는데, 내가 왜 우냐구 했드니, 뭐라는 줄 아십니까?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자기는 날 사랑했다는 거예요.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허영-." 이 주임은 눈물에다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얼굴이 엉망이었다. 태식은 주머니에 든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을 펴서 이 주임의 얼굴이 닦으려는데, 손수건 갈피에서 왠 종이쪽지 하나가 툭 떨어졌다. 현숙이 쓴 편지였다. 태식씨. 요즘 당신 심기가 몹시 안 좋은 걸 알아요. 연수원에 갔다 와서 조용히 이야기를 좀 합시다. 당신이 연수원에서 있을 7박 8일 동안 나도 생각을 정리해 볼께요. 이렇게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를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어려울수록 힘을 합쳐야 되지 않겠어요? 우린 끝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했으니 힘내서 이겨냅시다. 밥 꼭 챙겨 먹구, 잠도 푹 자요. 30대에 건강 확보 못하면 나이 먹어 고생이랍니다.

당신의 아내 숙.

'당신의 아내'란 글에 태식의 눈이 박혔다. 이 주임의 기운없이 신음하듯 우는 소리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열두번째 이야기 - 부부간의 불화에 대하여

신문에 보도된 통계를 보면 91년의 경우에 하루에 220쌍이 결혼하는 반면 27쌍이 헤어졌습니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이혼율이 98%나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10쌍의 부부 중 한쌍 정도는 이혼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가정법원 조정위원회는 부부가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사전 조정을 하는 기관인데, 이 기관의 보도도 부부간의 불화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90년에 들어온 조정신청이 141건이었는데, 91년에는 9월말 현재 496건으로 무려 3.5배가 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혼을 제기하는 쪽도 과거에는 남자가 압도적이었는데, 최근에는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먼저 제기하는 여성이 50~6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특히 20~30대 여성이 다수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았던 여성들이 이제는 남편의 구타나 외도 등을 더 이상 참지 않는 추세가 증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90년의 경우 재판으로 이혼한 부부 중 42%가 결혼한 지 3년 안에 파경을 맞이한 부부였다는 사실도 부부간의 불화가 점점 일찍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91년 1월부터 시행중인 개정 가족법에는 이러한 세태의 반영인 듯 재산분할청구권이 신설되었습니다. 즉, 부부가 협의하여 이혼하면 상대방에 대하여 재산분활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협의가 안되면 법원이 분할 액수와 방법을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와 권한을 강화시킨 대표적 법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판상 이혼의 경우에는 재산분할 외에 부정행위나 학대행위 등에 대한 위자료도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조정위원 중의 한 사람은 신문 지상을 통하여 이같은 세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내 삶'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여성들의 의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같은 의식변화는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해마다 늘어남에 따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고, 매를 맞거나 남편의 외도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참고 사느니 별거 또는 이혼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불완전한 자립

이는 전통적인 유교적 윤리에 의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변화입니다. 위의 조정위원의 평가처럼, 이같은 변화는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자립을 선언하고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며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어 남편에게 경제적 종속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점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 자립은 사람의 생활에 있어 기본적 조건이 물질적 기초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것은 사회적, 의식적, 자립의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으로서 자각하기 시작하였으며, 더 이사 남편의 비인간적인 대우, 폭력과 욕설, 외도 등과 같은 부부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용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가족법의 개정은 이같은 여성들의 자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여성들이 사회적 진보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민주주의요 선진화를 향해 전진하는 사회요 하고 화려하게 선전해도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은 여전히 봉건적 억압속에 놓여져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자립선언은 여전히 제한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자립선언은 여전히 제한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혼의 사유를 보면 '성격이 맞지 않아서'가 으뜸을 차지하고, 거기에는 성생활 부적응 문제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즉, 여성의 자립이 부부관계, 또는 가정내 관계라는 차원에서만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가 부부와 자녀 중심의 핵가족 형태로 보편화되면서 부부관계도 윤리에 얽매였던 전통에서 벗어나 점차 애정과 성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향은 그것 자체로서 별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역사나 전체 사회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가족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를 조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관습에 의한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잔존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여성의 자립선언은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에 놓여있게 됩니다. 이 개인주의적 경향과 구습적 잔재의 결합이 빚은 극단적 형태가 바로 외도가 아니겠습니까?

#외도 : 불신과 극단

최근 남편의 외도로 부부생활의 위기가 초래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어떤 조사를 보면, 여자가 이혼을 생각했던 이유 중 2,3위를 차지하는 것이 남편의 외도와 간통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90년에 결혼 후 3년 안에 이혼한 부부들의 이혼 사유 중 44%가 간통 등 부정행위였습니다. 태식의 경우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외도는 '영업'에 속하는 일이라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보통입니다. 부부사이에 성관계가 중심적인 것인 양 생각되는 세태 속에서 성적 부조화가 발생하는 경우, 남자에게는 다른 대상을 찾을 수 있는 번창한 향락산업은 자정까지의 영업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경기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10대의 소녀들까지 진출하는 형편이니 말입니다. 부부 사이의 성적 부조화는 단지 성관계 그 자체에서의 문제라기보다는 들 사이의 생각이나 생활태도, 또는 정서나 감정에서 비롯된 갈등이 성관계에서의 불일치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성관계를 원활히 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통해 해결할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사이의 정상적인 신뢰회복을 통해 정상적인 성관계로 나아가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감정적으로 치달아 불신을 증푹시키는 행위를 일삼게 되고,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모습을 이 주임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 개인주의가 구습과 결합한 대표적인 행위인 남편의 외도는 부부 사이의 씻을 수 없는 불신을 초래합니다. 성관계는 남녀를 부부로 맺어주는 행위이며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책임지겠다는 육체적 약속인 것입니다. 따라서 외도는 또 다른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겠다는 것이므로 기왕 부부로 살아 온 사람과는 연을 끊겠다는 뜻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니 사람대접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조건, 주변 상황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이지만, 사회적 환경은 사람 하나하나의 올바른 자각으로 개선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잔소리, 이젠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구태의연한 관계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아내들의 책임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망가뜨리는 행위로 나아가게 된데 에는 아내의 책임이 없을 수 없습니다. 무관심이나 관성화된 관계 등. 서로가 생활의 활력이 되어 주는 것은 서로 미루어서 될 일이 아니죠. 어쨌든 아내의 구태의연함도 외도를 정다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것도 하나의 조건일 뿐이죠. 문제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다시 단결을 위하여

이혼이란 부부관계의 비적대적 성격이 적대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된 경우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함께 사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에 이혼이 성립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백한 오류나 잘못, 이를테면 남편의 심한 구타나 무책임한 외도, 아내의 도박행위나 약물 중독 등의 경우에는 이혼이 성립할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선 꼭 이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상습 적이라든가, 설득과 용서로 계속 노력했다든가, 함께 해결을 위한 간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망이 없을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대개의 경우엔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서로에게 서로가 소중한 사람들이고 단결하여 거친 세상을 굳세게 살아가야 한다는 자각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태식이네같이 냉각기가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현숙이와 같은 지혜와 아량이 필요하기도 하겠지요. 무엇보다도 험하고 어려워도 한 길을 함께 간다는 단결의 마음, 애정있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단결의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평소의 솔직한 표현, 일상적 대화,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욕심내지 않을 수 있는 아량과 이해심, 변화에 대한 믿음이 빚어내는 인간관계의 빛나는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평생을 한결같이 개인보다는 사회, 가족의 안일보다는 민족을 위해 함께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그 삶의 풍요로움이야말로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쉽게 헤어지는 풍토는 부부가 숱한 고통과 불화를 딛고 평생의 몝은 동료와 반려자로서 살아가는 모습보다 보기 좋을 것을 결코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인간적 유대를 강화하는 노력이 전제될 때, 여성이 이혼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의 확보도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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