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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성문화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단 하루라도 좋으니 성폭력에 관한 사건 기사가 실리지 않는 신문을 볼 수 없을까 하는 바램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꿈처럼 멀어져 가는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부녀자 대낮 납치, 유괴, 가정 파괴범, 인신 매매 등의 끔찍한 범죄가 자주 일어나더니 이제는 폭행 살인, 어린이 강간 같은 한층 섬뜩한 낱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렇게 성을 둘러 싼 온갖 범죄가 난무하다 보니 우리 사회도 이제 비로소 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깨달음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실 예전에도 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적 은 없었으나 그것들은 대부분 흥미 위주의 선정주의에 머물거나 거의 전부가 성문제를 남성과 여성에게 달리 적용시키는 이중 규범 위에서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 들어 성희롱이나 성폭력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그런 문제들이 보통 여성의 일상적인 삶을 위협하는 보편적인 문제라는데 사회가 공감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끔찍한 범죄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일그러진 성문화가 그려내는 여러 가지 표현들의 일부일 뿐이다.

흔히 생각하기에 성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 사이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개인적인 행위인 것 같지만 결국은 사회적 관계의 반영이다. 때문에 간혹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성의 권력 관계 는 대개 남성은 지배하고, 여성은 복종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똑같은 행위에 대하여 남성에게는 허용적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금지하는 쪽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단적인 예로 순결에 대한 관념을 들 수 있다. 남성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를 막론하고 소위 '외도'가 남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로,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능력의 과시 행위로 받아 들여져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첩을 두는 것은 능력 있는 남성들의 자연스런 행위로 인정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남성의 외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순결은 목숨보다 중요한 의무로 강조되어 왔다. 한쪽에서는 여성들의 순결 관념이 형편 없이 허물어졌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드높은 가운데, 한쪽에서는 아직도 단지 첫날밤에 출혈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밤늦은 귀가 길에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라며 트신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순결관을 역이용하여 강도범들은 물건을 훔친 사실을 신고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여성들을 강간하는 일이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가정파괴범'이라는 낱말은 이렇게 강제에 의해 정절을 잃은 여성들이 결국 가정을 유지하지 못 하고 파멸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범죄의 희생자로서 마땅히 위로와 보호를 받아야 할 여성들을 오히려 소외시키는 이러한 현상에 서 우리의 성문화가 얼마나 남성들의 이기심에 의해 규정되어 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중 규범은 성욕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남성의 성욕 표현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 문제시된다. 물론 예전처럼 여성을 두 부류, 즉 성을 아는 여성(기생, 첩, 매춘 여성)과 성을 모르는 여성(요조 숙녀, 가정 부인 )으로 나누던 관행은 오늘날 거의 사라져 가고 있으며, 요즈음에는 오히려 아내에게도 성적 매력을 요구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간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 기관에 따르면 부부 생활과 관련돼 여성의 갈등 가운데서 상당 부분은 남성이 아내에게 '정숙한 여성'이기를 원 하면서 동시에 성적 매력을 발휘하기를 요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혼란과 갈등이라고 한다.

문제는 여성들 스스로도 이러한 이율 배반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 따라서 아내는 성관계에 있어서 자기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늘 남편의 주도에 따라서 피동적으로 행동하면서 불만을 쌓아 간다.

최근 이러한 여성 심리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면<에마누엘 부인>이나 <원초적 본능>같은 영화가 그런 종류의 것들인데 이 영화들은 가정 주부들을 극장으로 대거 끌어들이는데 크게 성공하였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성문화 속에서 억눌린 여성들이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성관계를 맺어 가는 여주인공들을 통해서나마 대리 만족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얼마전 외국에서는 부부간의 강간을 인정하여 아내의 동의 없이 성행위를 한 남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남성들은 상당한 당혹감을 느꼈을 테지만 반면 여성들에게는 성적 결정권에 대한 인식 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여성들은 남편이 아무런 정서적 교감 없이 성행위를 요구할 경우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 하 나의 대상물 같은 느낌에 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남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는 책임감이 앞서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성 위주의 성문화는 자본주의의 생리와 맞물려 곧장 여성의 상품화로 연결된다. 여성의 몸 자체가 상품화되는 경우는 이미 원시 시대부터 존재해 왔다는 매춘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 다.

우리 사회의 경우 향락 퇴폐 문화의 번성으로 나타나는 매춘이 지금 과 같이 급증하게 된 배경 을 따지면 60년대 이후 국가가 채택한 경제 제일주의적 정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관광 수입을 얻기 위한 명목으로, 그 다음에는 유휴 자본 활성화라는 구실로 유흥 서비스업에 대한 육성책을 쓰자 향락 산업이 불붙듯 번창하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각종의 크고 작은 업소마다 수많은 여성들이 유입되어 결국 매춘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국가의 관료주의와 기업체의 이권 청탁이 맞물려서 나온 비공식 적인 접대 문화는 향락 산업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매춘의 역사에서도 남성에게는 허용적이며 어떤 사람들은 이중적 사고 방식을 작고 있다 즉매춘 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남성에게는 허용적이며 어떤 사람들은 정숙한 가정이나 선량한 여자들의 안전을 위하여 매춘은 필요악이라 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우리 사회가 공식적으로는 매춘을 불법화하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매춘을 인정하고 있는 데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직접적인 거래를 통해서 여성이 상품화되는 현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중 매체를 통 해 상품화된 성이 점점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 잡지의 성관련 기사들, 음란 비디오, 성인 만화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권위지를 자처하는 일간지에서까지도 해외 화제라는 그럴듯한 난을 만들어 여성들의 벗은 몸을 빈번하게 싣고 있다.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분야는 광고 매체인데 최근 몇 년 동안 TV 광고에서 노골적인 묘사 는 사라졌지만 그 대신 세련된 기법으로 은밀하게 상품 광고에 성을 동원시키고 있다.

여성의 상품화 현상에 대해 너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미적 감정의 표출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시키면서 상품을 사도록 부추기는 것은 인간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즉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의 축제라고 불리는 각종의 미인 대회에서도 상품화 정도가 지나칠 때가 많다. 또한 성의 상품화가 만연하면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까지도 상품화되기 쉽다. 중요한 것은 누가 권력 과 돈을 가졌느냐에 달려 있으며 현실적으로 여성의 상품화 현상이 문제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바로 그 돈과 권력을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1993년 8월 국내 최초의 성희롱죄에 대한 법률 소송 사건이 된 '서울대 교수에 의한 조교 성 희롱 사건'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진지하게 되돌아 볼 계기를 마련했다. 그 동안 취업 여성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또다른 정신적 부담을 느끼면서도 솔직히 털어놓기엔 어딘가 부끄러운 문제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성희롱이 바로 그것이다.

성희롱이란 권한이나 지위가 대등하지 못한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성적 접근이 일어나게 되는 행위를 말하며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행위이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상사의 지위에 있는 남성으로 고용이나 승진이나 직무상의 혜택 등을 미끼로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단 한 번의 행위를 했다고 해서 범죄시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를 말한다.

도대체 이러한 행위가 성희롱이냐,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 어깨 한 번 툭 쳤다고 해서 법정으로 끌고 가면 가뜩이나 삭막한 세상에서 신경 쓰여 어떻게 살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조그만 회사의 과장인 김씨는 여직원에게 인기 없는 사람이다. 공연히 손놀림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데 본인은 자신의 행동은 친절의 표현이지 성희롱은 하지 않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미스 김은 역겹고 불쾌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참고 있다.

상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퇴직을 당하지 않나 하는 염려와 평점이 나빠질 것이 우려되고 또 농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좁은 여자로 낙인 찍혀 매도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서울대 조교 사건의 판결을 놓고 여자들 목소리에 끌려 들어간 '여론 재판'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또 한편에서는 여자들이 가만히 있을 때는 언제고 나중에 밀려나니까 보복 심리로 그러는 것이라며 여성들의 이기심에다 원인을 돌리기도 한다 .

이러한 반응에 대해서 법 전문가들은 여성에게 모욕감이나 수치감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친근한 행동은 범죄로 구성되지 않으며 여성들이 참을 수 없는 정도의 행위, 이른바 수인 한도를 넘는 행위를 문제 삼기 때문에 일반 남성들이 우려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왜 처음부터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가 갖고 있는 남성 중심주의 에 대해서 외면하는 처사이다. 이제 까지 일반적으로 성희롱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문제였으므로 여성들 스스로도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성희롱은 남녀가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며 성적인 농담이나 가벼운 접촉 같은 것은 오히려 직장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 고 그런 것쯤은 모르는 것처럼 지나쳐 버리거나 아무일 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성숙한 직장인의 자세라는 식의 통념들을 과감히 깨는 것은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여성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모욕감이나 수치감,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때그때 모면하는 식으로 문제를 키워 온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이 반복되다 보면 여성들은 수치감 정도가 아니라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 장애나 두통, 근육통, 위장 장애를 일으키거나 일할 의욕을 상실하기도 하며 나중에는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까지 생긴다.

앞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어날 것이 확실한데 이러한 직장내 성문화가 지속된다면 결과적으로 여성의 고용 평등에 대한 실질적인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성희롱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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