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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컴플렉스

남성 중심의 사회일수록 흔히 말하는 콤플렉스는 남성들에게 더욱 심하고 또 더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컴플렉스를 찾아 드러내지 않는 한 남성 문제는 해결은 커녕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렵게 된다.

그러나 컴플렉스를 찾아 드러내기에는 남성들 자신의 반발이 너무 심하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남성들은 자신 스스로와의 관계라는 것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속 깊은 곳에 무슨 제동 장치라도 있는 듯, 조금만 내면으로 들어가 문제를 건드릴라 치면 급제동이 걸린다. "아니야, 그건 남자다운 짓이 아니야", 또는 "무슨 남자가 그런 걸 다 얘기하나, 그런 건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등등.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심각한 컴플렉스에 괴로워하면서도 철옹성 같은 장치로 이를 억제하고 견고한 뚜껑을 만들어 덮어 버린다.

오늘날처럼 삶 자체가 겉보기엔 편안한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허망하기 짝이 없고 나날의 생활이 답답하기만 할 때에는 더 고집스럽게 자기를 닫으려고 한다. 일종의 악순환이라고 할까. 삶이 고단한 만큼 이를 느껴 내고 경험할 내면의 힘이 아쉬운데 그 훈련은 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고단함 자체를 억제하며 통제하자니 힘은 더 들고.... 이렇게 남성들은 자신과의 서툴기 짝이 없는 관계로 인해 점점 더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남성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들 내면의 문제와 부딪치다가 좌초하게 될 경우에는 바깥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주려고 해도 자학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음주 문화를 들 수 있다.

또 이러한 자학 증세보다 더 심각한 병리 현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퇴행이다. 이런 저런 어려움에 부딪쳐 어째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남성들이 나타내는 현상, 쉽게 말해서 미성숙한 남성들이 어린아이처럼 구는 행동을 의미한다. 바깥에서는 큰소리치고 허세를 부리다가도 집에만 들어오면 여성의 치마폭에 사여 심리적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힘으로 홀로 서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려는 유아적인 퇴행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남성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좁혀 가면 안과 밖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서로 엇갈리기 일쑤이다. 대개의 남성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마치 목석처럼 사는데 익숙하지만 평온을 간직한 모습 뒤에는 몹시도 외롭고 힘겨운 자기 자신의 적잖이 뒤틀린 내면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도덕 군자이긴 하지만 동시에 향락적이고 무절제한 생활을 한다. 또 한편 쇠심줄 처럼 강인한 척하지만 동시에 나약하며 목석처럼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수성이 메말라 버린 존재이다. 게다가 어느 곳에서도 가부장의 권위를 부릴 수도 없기 때문에 방황하는 소외된 자아와 거세된 주관, 나아가서 권력이나 따돌림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는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남성들을 더 불쌍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문제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인 슬퍼할 권리, 울 권리를 박탈당한 존재, 그런 능력을 거세당한 존재가 남성이다. 이렇게 가장 단순한 감정 표현조차 서툴고 메마른 남성들이다 보니 남의 감정을 받아 주기는커녕 제대로 짐작 할 수도 없다.

요즘의 신세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지만 지금 중장년이 된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맵시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 말고 거울 같은 것은 자주 들여다보지 말아야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남자라면 겉모습보다는 내면 세계를 탄탄하게 키워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이렇게 '거울도 안 보는 남자'라는 이상은 원래의 뜻을 잃고 어느 때부터인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즉 어려서부터 공식적인 것, 지성적인 것, 밖이 것만 귀하게 여기게끔 자라서 어른이 될 때쯤이면 자기를 비출 거울은 아예 마주 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남성들도 어쩔 수 없이 하루 한 번쯤은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 수염을 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도 얼굴만 볼 뿐이지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남성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들여다 보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결국 남성은 남들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마저 낯설다. 스스로와의 만남을 두려워 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창피스럽게 여긴다.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끊임없이 내면을 다듬어야 할 기회를 잃은 채 남성들은 취약한 자아를 대신해 줄 집단에 기대거나 아니면 허세로 적당히 덮어 버리는데 익숙하다.

이렇게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남성들에게 최근 들어 부쩍 높아져만 가는 남녀 평등의 목소리는 자못 불쾌하고 위협적으로 들린다. 요즈음은 잡지를 펴 봐도 모처럼 연극 구경을 가도 페미니즘이다 신세대 문화다 해서 사회의 중추 세력인 중장년 남성들을 소외시키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구석으로 몰린 남성들은 시대 변화의 징후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제대로 대처해 나가려는 대신에 옛날이 좋았지 하는 식의 회고조의 퇴행으로 숨거나 아니면 이게 모두 저 극성스럽고 할 일 없는 여자들 설치는 통에 이렇게 되었노라며 공격적인 자기 방어를 시도한다.

이러한 방어는 어떤 경우 매우 유치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94년도에 방영된<남자는 외로워>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소위 외롭다는 남성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이들은 각박한 사회 현실에 대처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스스로 일탈한 병리적인 남성들이지 결코 여성들이 설쳐댔기 때문에 밀려난 피해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드라마는 교묘한 수법으로 문제의 본질은 가리고 희화화된 남성들의 모습을 재미거리로 제공하고 있다. 나중에는 일방적으로 여성들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 미안했는지 사회 문제를 끌어 들여 결국 사회 체제가 남성들을 희생시켰다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

그렇다면 그러한 체제는 누가 만들었는가. 여성들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끼리도 서로 억압하는 그 체제는 과연 누가 지탱해 왔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결국 흔들리는 남성의 위상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에 대한 성찰은 뒤로 미루면서, 기득권에 대한 손상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남성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남자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시대가 외로운 것이며 이 시대의 책임은 남성들이 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외로움은 무엇보다도 불평등한 남녀 관계 그리고 남성들이 자기 자신과 맺은 관계가 잘못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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