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37)퍼포먼스


14일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신촌역(서울)에서 성추행을 풍자하는 퍼포먼스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추진본부와 여성 직장인들의 모임인 돌꽃모임 등이 주축이 돼 지하철 성추행을 고발하는 퍼포먼스라고 한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행위예술가 이윰은 지난 92년 `도표를 그리다'라는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퍼포먼스 역시 남자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윰은 알몸뚱이였다. 환등기가 그녀의 알몸뚱이를 향해 돌아갔다. 환등기는 이윰의 몸뚱어리 위에 온갖 쓰레기같은 언어를 쏟아부었다.

그 언어들은 남자들이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지껄여대는 `깔따구' `깔치' `까이' 등이었다. 환등기는 `깃발을 꽂았다' `먹었다' `맛있게 생겼다' 등의 문장도 쉴새없이 쏟아냈다.

이윰은 모든 여성을 대신하여 자신의 나신(裸身) 위로 찍히는 그런 언어의 폭력들을 고스란히 받아낸 것이다.

그날 이윰의 퍼포먼스를 관람했던 사람들 가운데 남자들은 꽤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바로 이윰이 노렸던 바이기도 했다.

이윰은 그 이전에도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갖가지 성적 폭력을 고발하는 작업을 해왔다.

89년, 이윰은 퍼포먼스 `선데이 서울'을 통해 관객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벌려진 자궁 속에 박혀있는 비닐로 만든 태아인형, 복수심에 불타는 듯한 여인의 거대한 엉덩이….

90년의 `아트 토일렛'도 충격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방독면을 착용하고, 신문지로 밑을 씻고….

`도표를 그리다' 2년 뒤인 94년엔 `여성, 다름과 힘'을 선보였다. 골조만 남은 철제 침대, 침대에 수갑으로 연결된 이윰, 삼지창을 들고 관객을 꼬나보는 이윰…. 그녀는 알몸뚱이였다.

미술평론가 김현도같은 사람은 이런 이윰의 작업에 대해 "그래 보고싶으면 실컷 보렴, 먹을테면 먹어봐라는 식의, 말하자면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라는 식의 체육전술과도 통하는 바"라고 평가하기도 한다.(대중문화 계간지 `리뷰' 97년 봄호)

돌이켜보면 국내 최초의 퍼포먼스도 남성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성격을 갖고있었던듯 싶다.

후배 이윰처럼 홍익대 미대 출신인 행위예술가겸 화가인 정강자는 68년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투명풍선과 누드' 퍼포먼스를 펼쳤다. 정강자가 팬티와 러닝셔츠만을 걸친채 무대에 나타나고, 조명이 그녀를 비추면, 남자가 달려들어 셔츠를 폭력적으로 찢어버리는 해프닝이었다.

이번 신촌역에서의 성폭력 고발 퍼포먼스는 어떤 형식,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