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는 `성'…당당해진 여성


여자들이 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TV 토크쇼에서, 문학에서 여자들이 거침없이 자기 성을 말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 등 성과 관련한 개인적-사회적 활동 영역에서 지금까지 '알아도 모르는 척'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한국이다. 그러던 것이,요즘 초등학생 성교육부터 PC 통신, TV 여성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성은한국 사회의 공개적인 의제가 됐다.

성 드러내기 핵심은 여자들이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한다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여자의 몸과 생물학적, 정치적 성에 대한관심은 문학, 미술 같은 순수 예술쪽에서 좀더 일찍 시작됐고, 이제 대중문화로까지 확산됐다.

여자의 성과 성적 주체성을 남성 지배에서 해방시키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을 남성, 혹은 주체의 타자가 아닌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같은 각성은 70년대 서구 여성 해방운동의 철학적 바탕이기도 했고, 90년대 들어 후기 구조주의 여성주의자들의 '여성적 글쓰기'연구에서 학문적으로 정련됐다. 지금 우리 사회 성 드러내기 의제는 이같은 서구 사조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특히 미디어를 통한 '성적압제'를 푸는 데 집중된다.

20대 미혼 여성의 성 의식을 담은 영화 '처녀들의 저녁 식사'. 서로다른가치관과 생활 양태를 지닌 스물 아홉살 여성 셋이 남자와 성을 화젯거리로 삼는다. "나 음탕하지?" 남자의 서로 다른 '맛'을 논하던 주인공이 깔깔웃지만, 이 영화에서 성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보던, 어색하게 숨가빠하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나 눈요깃거리로 나타나는 대신, 건강한 호기심, 당당한 성적 욕망으로 표현된다.

적나라한 용어를 구사하는 구성애의 성교육 강좌에 쏟아진 관심도 성드러내기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다. 핵심은 감추지 말고 드러내자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 숨어서 쉬쉬하는 데서 이처럼 밝은 광장으로 나온 성 이야기는 무엇보다 사회 개방과 다원적 관점의 발전, 여성주의 확산과 관련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성을 주제나 소재로 삼을 때 흔히 권선징악적 도덕적 결론을 강조하던 데서 벗어나 독립적인 한 인간이 택할 수있는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씨는 "90년대 중반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성(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소설, 만화, 영화같은 재현 장치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며 "여성이 주체성과 자율성을가진 존재라는 인식의 발로"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 성 드러내기가 모두 진지하게 여성 또는 남성의 성적 주체성을 확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확대 반복생산되는 대중 문화는 도덕적 규제 장치의 무장 해제, 혹은 가치평가의상대성 속에서 오히려 여자의 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성을 가혹하게 상품화한다. PC 통신을 통한 파트너 바꾸기 클럽 파문이나 '처녀들…'이 비디오 시장에서 단순 성애 영화 '과부들의 저녁 식사'로 즉시 재생산되는게 한 예다.

성에 대한 관심과 개방이 아직 성의 생물학적 부분에 머물러 있는 것도 한계다. 성차가 빚어내는 사회적 정치적 모순을 지적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성적 욕구와 갈등에 집중한다. 성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이 흥밋거리 수준으로 떨어지느냐, 우리 사회 성차별 문제에 진지한 접근을 가능케하느냐는 기로에 지금 우리는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