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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적 관계는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성을 좁은 의미로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잔다'는 욕구이다.그것만이 두 사람의 목적이고 서로를 인식하는 수단이며 방법이다. 그러므로 서로 질리면 두 사람은 그 순간부터 남남이 된다.

성적 관계를 뇌적 관계로 진화시킨 남성과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뇌가 지배하는 성적 관계는 다양하다. 뇌의 주역은 '인간의 뇌'로 불리우는 대뇌피질이다. 인간만 크게 부풀려져 있는 부분인데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대뇌신피질(大腦新皮質)은 기획과 창조, 그리고 미적인 것을 인식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외가 지배하는 성적 관계는 기획성이 있으며, 창조성이 있으며 미적이기도 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기획'이 있고, '창조' 즉 , 낭만이 있고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러한 것에 바탕을 둔 성이야말로 남성과 여성의 여유로운 드라마이다. 그것은 마치 소설 속의 남녀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역사 연애 소설 속의 남녀를 묘사한 것과 흡사하다. 소설 속에서 그려진 남녀의 등장 배경에는 계절감이 있고, 때론 자연 경관이 그려지기도 한다.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리고 전통있는 가옥과 의상 등이 묘사되어 있다. 그곳에서 밀회를 즐기는 남녀. 만나자 마자 무섭게 호텔에 뛰어들어가 서로를 성의 도구로 보듯이 거칠게 성교를 하고 대화도 없이 헤어져 집에 돌아가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남녀의 만남은 계절에 맞게 유희를 즐기고, 풍경이나 전통을 즐기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성은 원래 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사정의 쾌감을 느끼는 것은 페니스이리라 생각하지만 커다란 착각이다 쾌감은 뇌로 느끼는 것이다. 성기는 뇌의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성을 사모하고 원하는 것은 뇌의 작용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 여러 가지 것들을 즐기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역시 뇌가 주체가 된다. 성적 매너리즘에 빠진 두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뇌의 역할이다. 뇌를 쓰지 않고 사귀는 남녀, 다시 말해 상대를 쾌락의 도구로 밖에 보지 않는 관계는 쉽게 타성에 빠지게 되고, 이내 질려 버린다.

남녀의 만남에는 늘 '신선함'이 있다. 100번을 만나면 거기에는 100번의 신선함이 있다. 상대가 같아도 변함이 없다. 남녀의 만남은 그렇게 운명지어져 있다.

인류가 남자와 여자, 이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남자는 여자에 의해 인생을 알게 되고, 여자 또한 남자에 의해 인생을 알게 되며, 서로 생을 즐기도록 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간단한 원리를 망각하니 아내를 과거의 여자 혹은 이미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좀더 어리고 매력 있는 여자를 찾게 된다. 설령 어리고 매력있는 여자를 찾아 그 여자와 육체 관계가 생기더라도 성적인 쾌락만을 좇게 될 것이고 또 쉽게 타성에 젖게 될 것이다.

우주의 이치가 남녀는 항상 만나도록 되어 있고, 인간이 그것을 자각했을 때 비로소 두 사람의 관계에서 뇌가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두 사람의 관계는 저절로 신선해진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디슨 카운티 다리에서 이루어진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이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만남이 갖는 우주적인 의미 때문이다. 단 나흘동안의 일이지만 그 만남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 나흘 동안의 만남이 진실한 사랑을 만들고 결코 빚이 바래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다.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억을 강화시킴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 된다. 영원이란 것도 뇌에 남는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뇌와 뇌의 감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체 관계는 곧 뇌적 관계가 되고, 뇌는 그것에 자극을 받게 된다. 이 자극은 뇌의 노화 방지에도 커다란 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생 그 자체가 즐겁고 활력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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