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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기억과 원시감각

'원풍경' '원·원풍경'에 대해 앞에서 읽었던 것을 다시 정리해 보자.

태어나 아홉 살까지가 원풍경인데, 이때 주위로부터 애정을 받으며 자람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따뜻함을 알게 된다. 전두엽의 기본 신경연결이 형성되는 것도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원·원풍경'은 모친의 태내에 있던 때의 기억을 말한다. 태아는 따뜻하고 어두운 양수의 바다에 떠있으면서 모친을 통해 조금씩 세계를 알아 간다. 이때에는 이미 기억의 뇌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인간은 자궁 감각에 의해 깊은 안식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원·원=원풍경이란 것이 있다고 앞에서도 이미 서술했다. 원시적인 생명이 탄생한 23억년 전가지 더듬어 올라가는 소위, 생명 기억의 세계를 뜻한다. 사람의 유전자는 불사신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노화가 되어 결국 죽어 가지만 유전자만은 자손에게 남아 영원히 전해지게 된다. 이 불사신인 유전자는 생물이 개체로서 나타난 것보다 훨씬 이전, 아마도 생명이 탄생한 32억 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 온 것이다.

태아는 그 성장 과정에서 단기간 동안의 계통 발생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필자는 10년 전에 읽은 『태아의 세계』라 책에서 받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책에는 수태 32일에서 38일까지의 태아의 얼굴이 실려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고생대 데본기의 어류 시대에서부터 중생대 초기의 수형파충류시대까지, 약 1억2천만년이 재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우 7일 안에 막대한 지구 생명 진화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일주일간의 드라마가 끝나면 태아의 얼굴에는 원시 영장류의 얼굴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80일에 걸쳐 현인류의 얼굴로 바뀌어 간다. 즉, 인간의 최초부터 인간은 아니었다. 아득한 진화의 역사를 맹렬한 스피드로 재현해 인간이 된 것이다.

태아는 억년이 넘는 기억을 유전자에 담고서 진화한다. 이것을 생명 기억이라 한다. 생명 기억은 생후 일년 동안이나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기의 성장을 떠올리기 바란다. 최초는 기어 다니는 양서류, 파충류이고 이윽고 네 발로 달리는 포유류가 된다. 그 다음에는 무언가 붙잡고 서는 영장류가 되며 한 살이 되었을 때쯤 겨우 직립보행의 인류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태아는 생명 기억에 의해 커다란 방향이 이미 잡혀진 인간이 된다. 쾌감 정보를 수집하고, 신경세포를 늘려가면서 뇌를 발달시켜 가지만 그것을 강력하게 도와주는 것 또한 생명 기억이다.

그렇다면 이 장대한 생명 기억이 지금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가장 고등한 정신의 좌인 전두엽을 여기까지 크게 발달시켜 온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생명 기억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답은 예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억, 즉 후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이야말로 그 증거이다. 머나먼 태고적 생명 탄생의 순간서부터 지금껏 내내 같이 해 온 것이 바로 감각인 것이다. 소위 생명 기억과 함께 면면히 전해져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시 감각의 자극이 실은 전두엽의 활동 수준을 지켜주고 있다.

여러분은 아마 불상의 그윽한 눈길을 기억할 것이다. 그윽한 눈길이란 생명 기억이 연출하는 아득한 과거에 대한 추억이다. 그 쾌감 정보를 머나먼 미래까지 전달하고자 하는 신호라 생각된다. 그러나 시청각에 지나치게 편중된 현대에서는 그윽한 눈길을 갖고 있는 사람이 격감하고 있다.

그것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생명 기억이 새겨질 때와 비슷한 환경이 필요하리라 본다. 즉, 원시 감각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냄새, 맛, 촉감 등의 감각에 온몸을 내맡겨야 우리들도 그윽한 눈길을 되찾을 수가 있다. 그것이 전두엽의 활동을 지탱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원시 감각의 자극이 전두엽의 활동 수준을 유지시켜 준다고 했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설명이 더 필요할 듯하다. 지극히 동물적인 감각이라 생각되는 후각이나 미각, 촉각이 어째서 정신의 좌를 지탱해 주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네발 보행을 하는 동물은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냄새를 맡고, 맛보고, 건들어 보고 확인하며 그 환경에 적응해 간다. 땅에 입이나 코끝이 가깝게 접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간도 처음에는 네 발 보행 짐승과 같았다. 수족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아기들은 무엇이든 입에 넣어 버린다. 입에 넣고 빨아봐야 물건의 크기나 형태를 안다. 표면의 촉감으로 그것의 질을 알고 냄새와 맛으로 그것이 동일 물건인지 아니면 새로운 것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이윽고 시각과 청각이 발달하게 되면 그 동물적 감각과 함께 모자이크 모양으로 인식한다. 이 공감각이 건전한 뇌의 발달에 절실히 요구된다.

뇌는 우뇌와 좌뇌로 나뉘어져 있다. 우뇌는 이미지뇌이며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좌뇌는 언어뇌라고도 불리우고 언어나 문자, 기호, 숫자 등과 관련이 깊다. 언어뇌인 좌뇌는 두 살 때부터 독자적인 발달을 한다. 이 시기는 뇌의 후두부에 있는 시각야의 신경연결이 가장 발달되는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이전의 유아의 구강 감각을 통해 들어온 세계의 인지 정보는 우뇌가 움직여서 이미지로 수집되고 뇌내에 필름처럼 남게 된다.

언어는 분명 인간만이 갖고 있는 능력이다. 생각할 때도 언어로 사고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좌뇌의 담당이고 우뇌는 형태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인 세계를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야말로 존엄하다. 인간 생명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것을 느끼고 표현시키는 곳이다. 즉 뇌는 생이며 성이다.

우뇌와 좌뇌는 상호 보완적으로 그 힘을 발휘한다. 유아 수유기에 이루어지는 우뇌 발달이 충분치 못하면 좌뇌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대로 좌뇌의 발달이 먼저 이루어지고 우뇌를 발달시키려 해도 그것은 뜻대로 되질 않는다. 이러한 관계는 유아 수유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언어나 숫자를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뇌의 단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언어가 단순한 문자나 음성만이라면 정서는 단조로울 것이고 시야도 좁을 것이다. 생명이 숨쉬는 원시 감각 정보가 적으면 적을수록 다음 행동의 프로그래밍을 하는 전두엽의 소프트웨어인 신경연결이 제대로 배치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생물에 대한 배려와 의욕을 일으키는 이 소프트웨어가 불충분하다면 그 인간의 행동 또한 무언가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섹스 부재 현상 등도 뇌 신경연결의 문제이다. 가능한 균형 잡히고, 생명의 향기가 있는 정보를 뇌에 보내야 한다.

그 유력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식(食)'이다. 타인과의 교제, 접촉을 전제로 한 '식'이다. 잘 씹고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먹는다면, 그를 통해 자연의 속삭임을 듣고 이미지를 뇌속에 새긴다. 이렇게 길러진 인간은 자연에게 너그럽고, 생명의 존엄성을 알며 성이란 곧 생이란 것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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