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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2등시민인가?

#그림 속의 "뜨거운 감자"

연일 대선 예비주자들이 텔레비전 토론이 한창이다. 하나같이 대선 예비주자의 부인은 현모양처의 미소를 보이며 얌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클로즈업된다.

우리는 이처럼 대선주자를 자랑스럽게 지켜보는 부인들처럼 자립심이 강하고 억센, 그래서 '동반자' 같은 이미지를 가진 여성을 부러워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변하고 있다. 정치 현장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여성정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최근 잇달아 치러진 유럽 선거를 보면 이러한 시대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유럽은 여성의 정치역량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노동당이 압승한 5월 1일의 영국의 총선에서는 120명의 여성의원과 5명의 여성 각료가 탄생하였다. 사회당이 승리한 6월 1일의 프랑스 총선에서도 63명의 여성이 당선되어 8명이 입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두나라의 선거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들에게 주목하였으며 또 다수의 여성들을 흡수했다는 점이 그들에게 승리의 열쇠를 안겨준 중요한 요인이었다. 여성들을 정책적으로 안았던 이 두 나라의 노동당과 사회당이 승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정치 쟁점과 유권자들의 안목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군사 문제와 같은 외부지행적인 이슈보다는 실업, 사회복지, 범죄 등 구체적인 자신의 삶의 질과 관련된 부 지향적인 이슈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성향의 유권자들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적극적인 정당이나 사람들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다. 최근 서유럽에서 불어닥친 우먼파워는 복지 및 삶의 질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남성들 못지 않게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의 국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의원의 수는 얼마나 될까?

깜짝 놀라 만큼 적은 숫자다. 현재 우리 나라 여성 의원의 숫자는 전체 의원의 2맥 99명 가운데 9명으로 전체 의원의 3%에 불과하다 이것은 세계 107개국 가운데에 94위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더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여성 의원의 숫자가 아직도 여성을 차별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이라크와 같은 나라가 보유한 여성 의원들의 수보다 적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여성 유권자들의 숫자는 유권자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의원의 수는 너무 적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안목과 능력을 보유한 여성들을 꼽는데 우리는 단지 열 손가락에 만족해야 한단 말인가. 더욱실망스러운 점은 여성 문제나 여성 정책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입장 표명이다.




Brain Food

한마디로 그들은 여성들의 환경과 당면 문제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그들은 여성 정책을 진지하게 구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대선 주자들은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여성 표를 싹쓸이하기 위하여 최대한의 애정을 할애하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대선 주자들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여성 정책에 목을 매어서는 안 된다. 이참에 여성 의원 수의 할당제에 대한 요구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최근 전통과 보수의 관념 속에서 잠자고 있는 서유럽에서 '우먼파워'의 돌풍이 일어나고 있듯이 이 '조용한 나라'에서도 '여걸 행진'의 바람을 일으켜 보자. 우리도 많은 '여걸'들을 키워내야 한다. 아마도 이 여걸들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의 폭죽을 터트려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유용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 중의 하나는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는 일이다. 북유럽을 보자. 금세기 초기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일찍부터 여성할당제를 도입하여 높은 여성의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 현재 아이슬랜드는 의희의 50%, 스웨덴과 느르웨이는 4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11명, 노르웨이에는 8명의 여성각료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작은 나라인 대서양상의 바베이도스와 인도양의 세이셜 군도에조차 30%이상의 여성 장관이 재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영국과 프랑스 총선에서의 여성의원들의 수가 2배로 늘어난 것 역시 후보 공천 할당제가 한 몫을 하였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번에 후보의 30% 가량을 여성에게 할당했으며, 향후 10년 안에 여성의원 비율을 50%가지 늘리기도 결의하였다. 프랑스의 사회당에서도 후보자의 30%를 여성으로 공천한다는 내용을 삽입하여 전체 입후보자의 27%를 여성으로 조직하였다. 할당제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의원에 대한 높은 공천율이 곧 높은 당선율을 가져온다는 데 있지 않나 한다. 예컨대 일찍이 여성할당제의 이같은 의미를 살려서 실행한 결과 현재 높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북유럽 여성정책이 바로 할당제의 현실적 의미를 뵤여주고 있다. 한편에서는 할당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할당제 자체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측면과 자격도 없으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몇 개의 자리를 그냥 받는 불평등한 현실 자체라는 측면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할당제는 오랜 세월 누적된 사회적 불평 등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제도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 등의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될 때까지 여성들에게 할당제의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은 그런대로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제 여성문제나 정책은 다루기 힘든 "뜨거운 감자"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계의 변화 속에서 보수와 전통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는 없다. 하루 빨리 세계 여기저기의 여걸의 행진에 발맞추어 여성의 힘을 십분 활용하는 정책을 입안할 때이다. 따라서 97년 12월 18일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여성 단체에서는 각 당 후보자들에게 각급 선거에서 여성의 30%, 공천과 당 고위직에 30%의 여성을 임명할 것을 요구하는 할당제 연대 모임을 구성하였다. 이같은 할당제가 어느 정도 현실화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남녀간의 차이를 평균 수명, 교육 수준, 소득 등을 전부 합하여 살펴보는 성별평등지수(GDI) 보면, 97년 우리 나라는 전세계의 35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녀를 서로 비교하여 정치 경제 영역에 얼마나 진출하는지의 성별권한척도(GEM)에서 우리 나라는 고작 세계의 73위에 지나지 않았다. 흔히 정치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권력이자 혜택이라고 한다. 그 동안의 우리 문화에서 당연시 해온 것처럼 정치는 남성들에게만 내려진 혜택은 더 이상 아니다. 남녀가 한자리에서 흥겹게 치뤄낼 뜻있는 잔치다. 정치계에서 남녀 평등이 이루어질 때 여성의 삶은 신명나지 않을까.

#여자와 원력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다. "정말 그럴까? 요사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대권을 잡는가'이다. 도대체 누가 청와대 안방을 차지할 것인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만이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하면서 살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 세월 동안 머리좋은 수 많은 남자들은 권력잡기에 그토록 목숨을 걸어왔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권력투쟁의 판속에는 여성들이 끼어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권력이 그렇게 좋은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들은 욕심내지 않는 것일가? 여성들은 정말 머리가 나쁘단 말인가. 일찍이 우리는 권력자란 '권력 지키기'의 처절한 투쟁 때문에 매우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권력=고독'이라는 구조를 쉽게 수용하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적극적으로 성공하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을 '팔자센 여자'로 평가해 왔다.

이 때문에 이런 권력지향적인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가 결코 자신에게 행복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아채고 권력투쟁의 주변부에 남아 버렸다. 그래서 머리좋은 수많은 여성들은 권력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한 남자의 배후자로 남기를 기꺼이 선택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들은 남자의 권력을 자신의 권력인양 착각하고 자족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녀는 "그림자처럼 내조 잘하는 여자가 진짜 현명한 여자예요"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권력 = 남성' 이데올로기의 또다른 산물이다. 여성들의 '권력포기'는 특히 언어 사용법에서 두드러진다. "전 아무거나 좋아요" 이것은 흔히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어쩌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해 놓고 스스로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을까" 라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녀는 '여성다움'강요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한 이 대화법을 바꾸기 위하여 무척 노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스로 여성다움을 지키는 데 능수 능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 사회 여성의 '권력포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같은 '권력포기'를 추구하는 대화법은 여러 가지의 형태롤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첫째, 여성은 "빌어먹을" 등과 같은 공격적인 표현을 피한다. 대신 여성은 구체적인 '대답'이나 '항의' 대신 '미소'와 '침묵'을 행사한다. 둘째, 여성은 "내 생각이 정말 옳지?"라는 식의 불분명한 의견이나 주장을 편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이란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임을 상대에게 확신시키려 한다. 셋째, 여성은 "혹시 쇼핑할 수 있어", "나 사실은 약속이 있지만....원하면 취소할 수 있어" 등과 같은 자신의 '표현'을 '요구'나 '주장'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대신 여성은 상대방의 괸심이나 의도를 존중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쇼핑할래, 아니면 TV볼래"에서처럼 모호하고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숨긴다. 그리하여 여성은 상대방에게 의견을 관철시킬 기회를 준다. 왜 여성은 이와 같은 수동적인 어법에 매달리는가? 그것은 바로 남성위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여성의 열등한 지위에 비롯된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미덕으로 알고 수용해 온 이같은 '침묵' 과 '소리죽이기'를 여성 스스로가 극복할 대 그리고 권력찾기를 적극적으로 행할 때 그들의 진정한 지위 향상은 이뤄지지 않을까.



#용의아내

드디어 '용의 아내'가 뛰고 있다. 요사이 '영부인 만들기' 바람이 우리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많은 여성들이 선망의 대상은 바로 KBS-TV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의 처로 나오는 민씨부인(최명길 분)이라고 한다. 드라마 속에거 민씨 부인은 서릿발 같은 언사, 날카로운 눈매,그리고 한치 빈틈없는 판달력으로 마음껏 권력을 휘둘러댄다. 최근 영들의 한판승부가 열을 더해감에 따라 그 부인들의 자질또한 판세몰이에서 단단한 몫을 하고 있다. 심지어 모 일간지는 전 영부인들의 사진가지 실어서 대통령 후보자 아내의 판에 박힌 역할을 은근히 강조하기까지 하였다. 실제로 신한국당 경선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모 후보의 부인을 빗대어 "왜곡된 한국판 힐러리", "누구는 아주 좋은데, 그 부인이 너무 나서서 보기 싫어", "그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그 부인의 치맛바람은 대단할 것 같애" 등등의 말들이 오고 갔다. 그 말의 이면에는 현모양처가 바람직한 영부인상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부인의 자질에 대한 기대는 서구와 비교해서 너무나 전통적이다 영국의 총선 결과를 보자. 당시 총선전에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안방을 차지할 여성은 '영국판 힐러리'냐 아니면 '효녀 살림꾼'일 것인지가 언론의 뜨거은 감자였다. 실제로 승리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의 부인 셰리 부스는 여러측면에서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으로 선정될 만큼 잘나가는 전문 변호사였다. 그녀의 연봉은 약 정계에 입문한 관록도 가지고 있다. 반면 낙선한 존메이저 총리의 부인 노만 메이저는 소리없이 남편을 보필하는 현모양처형이었다. 지난 영국 총선에서 영국민들은 21세기 영부인으로서 '영국판 힐러리'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영부인상에 대한 변화된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앞서 가야 할 사람들이 전통적인 여성관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실망그럽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97년 5월 전국 성이 1000명에게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의 아내상을 물어보았다. 이들은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자질로 '사회봉사정신'을 꼽았다. (54.7%). 이어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여성'(47.3%),'현모양처'(29%),'전문 영역을 자진 적극적인 여성'(23.2%)의 순으로 응답하였다. 특히 응답자들은 전통적인 내조형의 현모양처보다는 사회봉사에 헌신하거나 혹은 전문적인자기 영역을 가진 적극적이 여성을 선호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 배우자로서 전문적인 여성을 선호하는 계층은 주로 20~40대에 포진해 있었다. 반면 이 조사에서 발견되 또다른 특성은 응답자가 된 국회의원 아내들은 주로 '현모양처의 내조'(47.3%) 항목이 여성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평가하였다는 점이다는 말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진보적인 여성상을 선호하지만 반면에 정치 지도자의 아내들의 성향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여성신문>이 마련한 대선주자들의 특별 인터뷰에서 대선주자들은 대체로 여성문제에 무관심했으며, 그 부인들 역시 대체로 전형적인 '내조형'으로 비춰지기를 갈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15일 YWCA가 마련한 '바람직한 영부인상 토론회'에서 바람직한 대통령 부인상으로 "전통적인 주부위 조신함과 더불어 현명한 판단력과 사고력으로 대통령을 내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여성"에 의견이 모아졌다. 참석자들은 전통적인 주부형인 '육영수여사'와 적극적인 활동가이 '힐러리여사'의 절충형을 이상혀으로 제시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감현자 한국여성저치 연맹총제는 '전통적인 주부형','활동가형',절충형'이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이 주부형은 현대적 감각이 부족한 반면, 활동가형은 우리 사회가 수용하기에는 너무진보적이어서 이 두 가지 스타일의 절충형이 오늘날에 가장 보편적으로 환영받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승희 한국여성정치연구소 부소장은 한토론회에서 영부인역활 유형이 전통적이니 내조형에서 정치적인 내조형을 거쳐서 전문적 참여형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라고 주장하면서 21세기 바람직한 영부인상으로 정치적 내조형을 꼽았다. 이제 바야흐로 세상은 급격하게 변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여성들은 단지

'누구의 아내' 혹은 '남편이 국회의원이면 내가 국회의원이다'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제는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정처계에 진출해야만 한다. 영부인도 대통령의 독립적인 '정티적 파트너'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한국판 힐러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마디로 '전문적인 참여형'은 보통 사람들의 진보적인 의식과 행동이 선행괼 때 무리없이 수용될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아일랜드에서는 '메리 로빈슨'이 여성 능력을 발휘하여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않았던가. 도 베네수얼라에서도 전 미스유니버스였던 '이레네 자에즈'가 유력한 대권후보자로 나섰다는 소식이 잇다. 그녀는 각종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4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당선자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서구의 영부인들이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깨어있는 여성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던 자게를 배워야 한다. 그동안 어떤 영부인 후보들은 '배갯머리 송사'에 각별한 재주를 발휘하면서 임으로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의 서아별은 거의 사라졌다"라고 떠들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영과이 바로 내 영광"이라는 틀 속에서 권력 휘두르기에 맛들이는 영부인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같은 소수 특정 계층의 여성이 갖는 허위의식이 평법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짓누르는 족쇄가 아닐까.

#힐러리와 암탉외교

힐러리가 뛰고 있다. 힐러리는 세계 여기저기를 누비면서 민주주의룰 누비면서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힐러리 "외교"는 '성추앵'이나 '불법정치헌금' 스캔들로 실추된 클린턴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면서 클린턴 정부의 "호감얻기"에 일조하고 있다. 아마도 힐러리의 외교는 여성의 지위를 행상시키는데 또다른 전기를 마련할 것 같다. 수십년전 존 F 케네디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역시 훌륭한 외교가였다. 그녀는 세계 여러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맏았으면 실제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보다 인기가 더 높았다. 케네디는 외국을 방문할 때면 으례히 재클린을 동반하였는데 그녀는 영부인으로서 보다는 미국을 알리는 유능한 정치인으로서 자격으로 동행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영부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요즘 앞서가는 사람들이 워하는 영부인상은 바로 '힐러리와 육영수의 혼합형'이라고 한다. '능력은 있지만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 '독립적인 자질은 있지만 그림자로 남는 여성'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대권주자의 한 사람인 모후보의 부인은 우리 사회의 영부인에 대한 고정관념 때분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너무 나선다.","치맛바람이 너무 세다","권력지향적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한국판 힐러리'라고까지 칭하였다.

따지고 보면, 그 부인을 한국판 힐러리라고 칭한 것은 대단한 평가다 생각해 보자. 힐러리는 유능한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모 후보의 부인에 대한 평가를 붕정적으로 해석하려 하는가. 그것은 바로 "여자는 남자보다 한 발짝 뒤에서 있어야 제겻"이라는 우리늬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일다. 그 후보의 부인은 부정적인 여론몰이에 밀렸기 때문일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결국 그녀는 당당했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수더분한 현모양처로 변신하였다. 그녀는 늘 단정하게 빗어 &#41379;은 머리에 한복차림의 자애로운 미소로 나타났다. 그녀는 언제나 남편의 뒤에서 묵묵하게 내조만 하겠다고 다짐할 뿐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 후보 부인의 변신은 21세기를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우리를 꽤 슬프게 한다. 여전히 우리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변해야 한다. 요즘처럼 표밭다지기가 한창일 때 어떤 정치인들은 여성의 지위를 반드시 향상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내심으로 전통적인 여성상을 여전히 찬양하는 한, 성차별을 무너뜨리자는 외침은 한낱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과감하게 성차별을 깨트리면서 외교 전선의 전면에 서 있는 힐러리야말로

적극적인 현대 여성의 전형이 아닐까. 우리의 영부인도 치렁치렁한 한복 대신에 겨편한 활동복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청와대 안주인으로 자리잡고 손님 접대에만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탄식하는 민심에 귀기울여야 한다. 암탉이 운다고 집안 망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부엌 밖에 있는 세상

1월 9일자 모 일간지에 실린 한사진이 눙에 들왔다. 노동법 규탄 피켓을 든 한가족의 모습이, 특히 여자 어린아이의 눈망울이 클로즈업되었다. 이 사진은 바로 이 시대의 부끄러운 힘의 놀리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이의 눈망울을 천진하고도 적나라하게 힘센 자의 억압을 비난하고 있다. 온 나라는 지금 날치기 노동법을 규탄하는 파업의 불결로 술렁이고 있다. 1천 2백만 노동자와 2천 5백만 봉급생활자의 생존을 보호자는 외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남편과 아들 딸들의 거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시습적으로 이루어진 '안기부법'과 '노동계법'날치기 처리는 바로 사회의 히미센 권력이 펼칠 수 있는 전형적인 오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우리의 보수 언론들은 이러한 현실을 이 엄청난 사실을 ,이른바 사실 속에 파묻힌 진실의 발견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같다. 오직 지배세력의 입장만을, 그리고 보수층의 이익만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언론에서 크게 그리고 중요하게 다루는 기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반대로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은 좀퍼럼 관심을 둘 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중요치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언론의 '의제설정기능'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한술 더 떠서 사회 환경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뉴스난 시사물보다는 오히려 드라나와 같은 오락물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가? 이러한 여성의 의식을 정치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의식 불감증' 상태에 있다는 말로 비판해도 좋을까? 여성들은 아직도 정치 불감증 시대에 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명 여성들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병에 찌들어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노동볍이 날치기 통과되었는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왜 노동법 규탄 파업과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여성들의 정치 불감증 현상은 한 라디오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온 여성 청취자들의 말에서 잘 알 수있다. "왜 파업으로만 해결 할려고 하는지","시민의 불편을 생각하였음 좋겠다." 그러나 같은 프로그램에서 남성 청취자들은 "생존권을 위한 당여한 시위다", "그동안 노동시위의 성과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무엇인가를 얻어내야만 한다."고 말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이런 현상은 프로그램 제작자의 성차별적인 제작의식에서도 나올 수 있다. 또는 현실적으로 노동법 규탄시위에 대한 여성들의 해석이 남성들과 크게 다른 데서 나올수 있다. 동시에 살면서 왜 이토록 서로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19세기의 준스튜어트 밀이 일찍이 <여성의 예속>에서 갈파한 여성의 현실참여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오해되고 있단 말인가? 며칠전 한 TV뉴스는 수천만원하는 수입 모피코트를 구입하는 여성들을 보여주었다. 그토록 엄청나게 비싼 모피 코트를 구입할 수 있는 여성들은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론은 허리 졸라매며 검소하게 살고 있는 이땅의 많은 여성들이 마치 몸에 모피 코트를 휘감는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수많은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영하의 추운 거리에서 생존권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이 시점에서 여성들은 TV속에서 왜 이렇게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가. 정부가 경제파탄 원인을 노동자에게 부과하고 있듯이 언론은 과소비&#40833; 원인을 여성어게 전가시키고 이다. TV는 전체 여성을 과소비의 주범으로 혼돈한다. 마치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변형 근로조건을 만들 때만이 경제가 다시 회생할 것이라고 과신하는 정부의 '날치기' 정책처럼 말이다. 이제 여성정책 담당자들은 여성의 경제적.물질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들의 의식개혁 정착에도 관심울 돌여아 한다. 왜 지금 세상이 흥분과 분노로 뒤덮여 있는지를 사회구조적인 맥락에서 정확하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다. 수천만원짜리 모피코트가 더 이상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지 않을 때 다가오는 연말 대선에선 여성의 표몰이용으러 내몰리지 않게 될 것이다. 또 여성들도 더 이상 부엌이나 거실에서 편안하게 안주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기꺼이 일터를 뛰쳐나온 남편과 아들딸들의 가슴시린 저항의 의미를 심각하게 다져봐야 할 때이다. 이제 부엌에만 머물러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들여다 볼 수 없다. 우리가 적응하고 변화시켜야 할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은 부엌 밖에 있다. 여성들이여, 눈울 들어 부엌 밖의 세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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