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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노라'의 후예인가

#혼자 부른는 아리랑

이 시대에 누가 혼자서 아리랑을 부를까?

홀로 아리랑은 부르는 여인들이 있다. 최근 '훈'할머니가 부른 아리랑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비단 '훈'할머니 뿐만은 아니다. 이처럼 혼자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인들은 아직도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실상이 세상이 공개된 것은 1991년이었다. 위안부의 고통의 현실을 최초로 공개한 김학순 할머니는 우리 민족이 당한 수십 년간의 아픔이 역사에 묻혀질까 봐 증언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1932년부터 패전할 때까지 20여만 명을 강제로 정신대에 동원하였는데 이중에서 70~80%는 한국 처녀들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가슴 아픔 역사적 비극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현재 알려진 생존 자수는 160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불운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정신대' 문제는 결코 개인의 아픔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가슴아픈 그러나 반드시 극복해야 할 우리 역사의 단면이다. 여성들의 인권이 남성들의 힘겨루기 틈바구니애서 무참히 짓밟히고 희생된 실체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신대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여성들 인권의 단면인 셈이다. 지난 97년 1월 11일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극민기금'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5명의 정신대 할머니를 방문하여 위로금으로 2백만엔(약 1천 5백만원)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3백만엔(2천 5백만원)에 해당하는 의료. 복지 사업의 목록을 전당하였다. 이것은 우리를 한바탕 분노케 하였다. 일본은 정신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을 회피함은 물론 경제적인 보상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정신대 피해자들의 인권을 유린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정부의 나몰라라는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국민 기금'을 피해자와 지원 단체간의 개인적인 관계로만 관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정신적인 학대의 보상과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켜 버린 것이다. "나몰라라 하던 김영삼 정권보다는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준 일본인 미간단체가 더욱 고맙다"라고 말한 어떤 위안부 할머니의 원망 섞인 하소연이 우리를 더 기막히게 한다. 또 "내가 증언을 한 뒤 일본의 총리가 5번이나. 바뀌었어. 하지만 해결된 것은 없어.... 이제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를 정식 사과를 요구 하해야 할 때가 아니냐" 김학순 할머니의 말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번 '훈'할머니 기사 거리는 우리 언론의 뻔한 한탕주의 속성속에서 다루어졌다. 한마디로 이 사건은 우리 언론의 숨막히는 취재 경쟁 속의 한 특정 거리였을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훈' 할머니 기사가 온 신문을 어지럽히더니, 또 어느 날 갑자기 한 건의 관련 기사 없이 잠잠해져 버렸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냄비 저널리즘' 현상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우리 언론의 실망스러운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훈' 할머니 기사가 지나치게 스프트한 취재방법으로 다루어졌다는 데도 문제가 있다.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개인적인 삶만을 조명함으로써 정신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훈' 할머니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정신대 문제의 의미와 그에 따른 조속한 해결책을 찾는 하나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는 정신대 문제를 몇몇 할머니들의 '젊은날의 초상'으로만 취급하지 말자. 이 참에 정신대 문제를 좀 더 역사적으로 조명하자. 절대로 민족의 아픔인 정신대 문제에 있어야만은 '반짝 관심'으로 처리하지 말자. 아직도 여전히 오십년의 한속에서 소외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여인들의 세월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보상해 주자. 우리의 아리랑은 결코 슬픈 가락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의 아리랑은 혼자 부를 때보다는 더불어 함께 부를 때 신명나는 가락이 아닌가.

#부모 姓 함께 쓰기 운동

필자가 담당한 <여성학> 강좌에서 '한국 여성의 어제와 오늘' 이라는 주제의 비디오 테이프를 감상하고 그것에 대해서 토론을 한적이 있다. 학기 때마다 이 주제의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대체로 남학생들은 으레히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가슴 아프다", "존경스럽다"라는 말로 각별한 애정을 보이곤 하였다. 매 학기마다 필자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 서로 다른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특히 그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는 경우는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되었을 때' 였다. 반면에 그들이 어머니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는 경우는 어머니가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희생할 때' 였다. 왜 이렇게 같은 부모인데 연민의 정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상황이 설정되는 것일까? 이것은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그 차이를 찾을 수 있다. 같은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가부장제에 기반한 성고정관념의 결과이다. "아버지 = 권위, 어머니 = 희생' 이라는 이미 정해진 가부장적 구도가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지난 번 제13회 한국여성대회에서는 '부모 함께 쓰기 운동'이라는 흥미로운 여성 운동이 일어났다. 이효재 정대협 대표는 "태아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로 인간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면서 남아 선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부모성을 함께 쓰기로 했다. 우리는 성차별적인 생명관 때문에 저질러지고 있는 여아낙태의 부끄러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호주제와 동성동본금혼을 명시한 가족법을 개정하고 여성의 정치경제적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을 지속할 것이다." 라고 이 운동의 의미를 제안하였다. 이것은 기존의 아버지 성을 딴 지금의 성과 이름 사이에 어머니의 성을 삽입함으로써 4자 이름을 사용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취지는 우리의 부계혈통 계승 제도가 갖는 성차별을 해체하는데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으로 자행되어 왔던 여아 낙태 현상은 해결하고 남녀평등 상상을 구체화하는 하나의 실천적 운동인 셈이다. 서강대 조옥라 교수는 '부모 姓 함께 쓰기 운동'의 효과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동성동본 금혼의 허구성을 밝히며, 이들을 통한 대잇기의 강박관념을 회석시킬 것이라고 기대한 바 있다. 이제 여성들도 대가없는 희생과 노동에서 벗어나, 반드시 그 대가를 받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하여 사회속에서 자아를 발견, 확인해야만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 운동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부모 성을 함께 쓰는 것은 실제로 자식을 낳아 기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성의 당연한 귄리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운동은 다발적인 문화운동 차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오랜동안 뿌리박힌 남아선호 사상이라는 공룡을 무너뜨릴 하나의 거국적인 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필자의 학생들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느끼는 정이란 바로 가족을 위하여 어머니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바친 순정적인 인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렇게 헌신적인 인생을 산어머니의 인생을 새로운 인생으로 살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은 정작 자신의 여성 친구나 미래의 아내에 대한 기대에서는 대단히 권위주의적이다. 필자는 가끔 남학생들에게 "어떤 여성 친구를 사귀기 원하느냐" 혹은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미래의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가" 라고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대체로 "나를 잘 이해해 주고 집안을 잘 꾸려 나가는 여성이 좋다"라고 답변하곤 한다. 이처럼 우리들은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사랑과 희생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삶에 대한 연민은 단순히 가슴에만 머물 뿐 실천은 없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서로 다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전에 아버지의 상징은 권위이고 어머니의 상징은 희생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97년 여성계가 야심차게 시작한 '부모 성 함께쓰기' 운동은 부모를 동등하게 인정해 주고 더 나아가서 여성의 귄익을 찾는 하나의 실천적인 걸음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다.

#현모양처의 꿈

주변에 딸 일곱을 훌륭하게 길러 낸 한 어머니가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 어머니는 매사에 진취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의 평소 신념은 "여자도 반드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딸 일곱 중에서 다섯딸은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딸 일곱의 적극적인 사회활 등을 주장한 대가로 손주키우기가 그녀의 몫이 되었다. 가끔 그녀의 세 살짜리 아이에서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손주 5명을 돌보고 있다. 그년의 넷째 딸은 의사였다.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소유한 건물의 2층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머니댁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그 딸이 자신의 두 아이에게만 몰두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런 후 그녀는 운영하던 병원을 과감하게 폐업하였다. 그러면서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홀가분하게 분가하였다. 한동안 그 어머니는 상심의 눈물을 흘리셨다. 오랜 시간 그녀는 딸을 설득하였다. "아무리 전문적이 기술이라 해도 쓰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 "반드시 어머니가 자식 양육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그럼에도 넷째 딸은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이는 누가 공부시키며, 갓난애는 영양은 누가 책임지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미련없이 집안에 들어앉았다. 그 어머니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함목되어 재능과 능력 발휘를 포기한 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지 한동안 서운해 하셨다. 최근 일부 직업여성들은 사회 활동 때문에 소홀한 가정 돌보기에 대해서 상당한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죄의식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 있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남편의 성공, 가정의 행복'은 여자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부르짖는 현모양처 신화를 되짚어 보자. 왜 자녀 양육의 문제에서만 여성들이 가정의 중심이 되는가. 우리 사회는 "극성스런 어머니들의 교육열에 주눅드는 어린이 흔들이는 주부들의 탈선으로 붕괴되는 가정, 남편의 기를 죽이고 살리는 아내들..." 이라는 의제를 설정하여 마치 여성을 사회적 일탈의 주범으로 지적하곤 한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바로 이러한 현상 이면에 여성의 현모양처 역할이 교묘하게 재화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여성들을 현모양처 신화 속에 묶어두고자 해도 칠순을 바라고는 이 어머니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허위위식을 거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직업 여성이란 가정일을 소홀히 하는 '이기적인 존재'인 반면 전업 주부는 사회에 뒤떨어진 '무능력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 이미지로 인해서 두 유형의 여성들이 서로 분열되고 대립되어 왔음을 우리는 인정하기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가 가사노동을 제대로 평가하진 않으며, 또한 가사노동을 오직 여성들만의 몫으로 규정짓는 고정된 역할 분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모양처의 꿈에 길들여진 일부 전업 주부들을 삶의 여러 고비 야만 제대로 평가받지 않겠는가" "도대체 내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전업 주부의 선택이 자율적이지 않은 한 건전한 가정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업 주부의 역할에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전업 주부의 삶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전업 주부의 사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또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커다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주목하자. 생각해 보면, 가사노동처럼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일도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체로 가사노동이란 자아를 전혀 찾을 수 없는 무가치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가. 이제 이러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전업 주부들의 가정적인 에너지는 반드시 사회의 에너지로 연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동안 단저롭고 소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온 가사노동은 사회 발전의 굳건한 초석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업 주부들의 쓰레기 봉투 아껴쓰기는 환경 보전 운동으로, 돈 봉투 없애기 바람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과소비 줄이기 노력은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이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가족에 대한 관심은 북한 동포 돕기의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렇듯 시민 운동의 미래는 전업 주부들의 손에 달려 있다. 전업 주부의 역할에 사회적 의미를 붙여 넣어 준다면 아마 현모양처의 꿈은 절대 여성의 자아실현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업 주부의 자율성 확보가 남녀 평등의 지름길이다.

#'바그다드 카페'의 두 여자

지금 ! 당신의 삶이 권태로운가 ? 아니면 괴로운가?

그렇다면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를 감상해 보자. 매우 유쾌해질 것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퍼시 애드론이라는 감독이 1988년에 만든 미국 헐리우드 영화다. 캘리포니아의 황량한 사막에 서 있는 <바그다드>라는 카페! 이 카페는 무능한 남편을 내쫓고 삶의 희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브랜다'의 군태와 불만의 공간이다. 남편이 없어서 도맡아야 하는 수많은 일들, 그리고 딸과의 마찰등은 끊임없이 '브랜다'를 괴롭힌다. 그런 어느 날 황혼 무렵 이 카페에는 여행길에서 남편과 싸운 홀로된 '쟈스민' 이라는 여성이 나타난다. '쟈스민' 역시 폭력적이면 권위주의적인 남편으로부터 끊임없이 여성다움을 가용 받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홀로 서기를 시도한 여성이다. 두 여성은 사막 한가운데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만난다. '브랜다'는 무능한 남편으로부터, '쟈스민'은 귄위주의적인 남편으로부터 각각 버림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수동적인 버림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삶을 과감하게 버리고 뛰쳐나온 능동적인 여성들이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억압받아 왔지만 자신만이 세상을 만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카페를 성취의 공간으로 만들게 되었다. '쟈스민'은 열심히 노력하여 유능한 마술사가 되고 '브랜다'는 라스베가스의 어떤 쇼보다도 더욱 멋지게 마술쇼를 연출해 낸다. 이 두 여성은 자신의 피동적인 삶을 주체적으로 바꾼 것이다. 기존의 억압된 관행과 질서 속에 묻혀 있었던 이 두 여성의 재능과 삶은 명쾌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꽃피워졌다. 더 이상 기존의 사회구조 억압당하지 않았다. 또다른 영화인 <델마와 루이스>역시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이것은 리들리 스코트가 연출하고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열연한 영화였다. 델마는 권위주위적인 남편에 의하여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며 루이스는 가난에 찌든 독신녀이다. 이들의 세상 도피 여행은 우연히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성억압에 억눌린 두 여성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역행은 우리 시대의 여성의 삶을 의미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사회의 전형적인 삶을 버린 이 두 여성의 최종적인 선택(자살)을 통해서 사회의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남성 지배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반면에 <바그다드 키페>는 여성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특히 <바그다드 카페> 영화는 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즉 새로운 여성 공동체 문화의 창출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도 <바그다드 카페>에서처럼 자신의 운명을 극복해 가는 여성들의 삶을 묘사하는 여성 영화가 많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사막 한가운데에 라스베가스가 건설되었듯이, 우리 주변 한켠의 음지에서 억압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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