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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의 동·면의 연혁



1. 동연혁

중앙동

1946년 6월 1일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면서, 군정법령에 의하여 옥천동, 요선동, 봉의동, 중앙로 1가등 4개동은 1973년 12월 31일까지 옥천, 중앙, 봉의, 요선동이라는 행정동으로 불렀다. 1974년 1월 1일 현재의 행정동인 중앙동으로 발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천동

본래 춘천군은 부내면(춘천읍)의 중심지 격으로 춘천도호부의 관아가 있었으므로 아골말 또는 아동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에 따라서 아동리라 했다. 1939년 춘천읍제 실시에 따라 셋으로 갈랐다. 대성정(교동), 봉의정(봉의동), 단양정으로 정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변경할 때 옥천동으로 고쳤다.

▶요선동

본래 춘천군 부내면 지역으로 요선당이 있었으므로 요선당이라 했다. 1930년 읍제 실시에 의하여 화원정 일정목이라 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 변경에 의해 요선동으로 고쳤다.

▶봉의동

춘천도호부 아동리의 일부였다. 1939년 아동리를 갈라서 봉의정이라 하였으며, 봉의산 밑에 있으므로 봉의동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변경할 때 정을 동으로 고쳐 봉의동이라고 했다.

▶중앙로 1가

본래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의 지역으로 중앙로라는 현대식 이름이 생기기 전 까지는 허문 또는 허문리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허문리라고 했다. 1939년 읍제를 실시할 때 본정일정목이라고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변경할 때 중앙로라고 했다. 춘천의 중앙이 되므로 중앙의 이름을 활용해서 그대로 중앙로1가로 정했다.

교동

본래 춘천군 부내면 지역이다. 춘천의 향교가 있었으므로 향교골 또는 교동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아동리에 편입했었다. 1939년 춘천읍제 실시에 따라 대성정일정목(大成町一丁目)이라 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폐기하고 우리의 지명을 회복시킬 때 교동으로 고쳤다.

▶조운동

조운동은 법정동인 조양동과 운교동을 합하여 조운동이 되었다. 1973년 12월 31일까지는 조양, 운교동이라고 정했다. 1974년 1월 1일 조례 제621호에 의해 조운동으로 재칭하였다.

▶운교동

본래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의 지역이다. 지금은 완전히 복개되어 보이지 않으나 운교천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있었으므로 구름다리가 마을이름이었는데 후에 한자를 고쳐서 운교동으로 불렀다. 1939년 춘천읍제 실시에 따라 대성정이정목(大成町二丁目)이라고 칭하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운교동으로 정했다.

▶조양동

조양동은 원래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의 지역으로 대파니, 대판리 지역이었다. 대파니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판리로 정했다.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가연리와 낙원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대화정일정목(大和町一丁目)으로 고쳤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조양동으로 정했다. 조양(朝陽)이란 본래 '산의 동쪽' 즉, 아침 햇빛이 잘 드는 곳을 말한다.

약사동

약사동은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의 지역으로 조선왕조 때는 일종의 여행자를 위한 편의시설인 약사원이 있었다. 이에 약사원이 있었으므로 약사리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내면의 석사리 일부와 남부내면의 상퇴계리의 일부를 폐합하여 약사리라 했다.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욱정이라고 하였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지명으로 고칠 때 약사동으로 정했다.



죽림동

본래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연리에 편입되었다.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의하여 가연리에서 갈라져 대화정이정목(大和町二丁目)으로 되었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지명으로 고칠 때 죽림동으로 정했다. 이후 1955년 죽림중서동(竹林中西洞)이라고 하다가 1974. 1. 1일자 조례 제621호에 의하여 현재의 동으로 편제되었다.

중앙로2가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가연리의 일부를 갈라서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라 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지명으로 고칠 때 중앙로 2가로 고쳤다.

▶중앙로3가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서 가연리의 일부를 갈라 본정삼정목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지명으로 고칠 때 중앙로3가로 정했다.

소낙동

1974년 1월 1일 춘천시 조례 제621호에 의거 소양로3가, 소양로4가, 낙원동 등 3개의 법정동을 합쳐 행정동인 소낙동이 만들어졌다. 1946년 6월 1일 군정법령으로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될 때 소양로 3·4가 및 낙원동은 소양로 3·4가 동과 낙원동으로 2개동으로 분리 운영되었다. 1973년 말까지 2개동으로 운영되었다.

▶소양로3가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사창리 일부를 갈라서 소양통삼정목(昭陽通三丁目)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지명으로 고칠 때 소양로3가로 정했다.

▶소양로4가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전평리의 일부를 갈라 소양통사정목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소양로4가로 정했다.

▶낙원동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가연리의 일부를 갈라서 화원정이정목(花園町二丁目)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낙원동으로 정했다. 낙원동이라는 이름은 1946년 새로 생겨난 이름이다.

근화동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지역으로 춘천읍내의 앞 들에 있었으므로 앞두루 또는 한자화해서 전평(前坪)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죽전리와 수동리를 전평리에 통합하였다. 1930년 영락정으로 고쳤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근화동으로 정했다. 종전의 근화1구 지역은 호반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소양동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요선당리와 사창리의 일부를 합쳐서 소양통이정목(昭陽通二丁目)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소양로2가로 고쳤다. 1974년 1월 1일에 조례 제621호에 의거, 법정동인 소양로2가 전지역을 행정동인 소양동으로 정했다.

호반동

1939년 춘천 읍제를 실시하면서 전평리의 일부를 나누어 소야옹일정목이라고 하다가 1946년 6월 1일 군정법령에 의해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면서 근화1구의 일부, 중도 등의 3개구역을 합하여 행정동인 소(昭)1·근(槿)1·중도동이라는 행정동명을 쓰다가 1974년 1월 1일 조례 제621호에 따라 현재의 호반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근화동(1구지역)

1973년 춘성군 서면의 중도가 춘천시에 편입되면서 근화1구의 일부와 소양로1가지역이 합해져서 소1·근1·중도동이라는 행정동명을 쓰다가 1974년 1월 1일 조례 제621호에 따라 현재의 호반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소양로1가

1939년 춘천 읍제 실시에 따라 전평리의 일부를 갈라서 조양통일정목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이름으로 고칠 때 소양로1가로 정했다. 소양로1가는 소양강이라는 명칭의 1번지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소양1교·소양2교·소양정·소양강창등의 이름이 모두 소양강에서 유래했고, 소양로1가에 소양이라는 이름이 집중되어 있다.

▶중도

춘천군 서면에 속했던 것이 1973년 춘천시에 편입되었다. 소양강과 자양강이 흐르면서 만든 삼각주로 의암호가 생기기 전에는 소양강으로 나룻배가 건너다녔다. 농토가 비옥해서 농사가 잘 되었다. 의암호가 생긴 후에는 호수 안의 섬이되었다. 적석총이 정비되고 청소년 야영장이 건설되어 유원지로 변했다. 삼천동에서 중도간에는 정기 여객선이 운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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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평1동

후평1동은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지역으로 뒷두루, 뒷들, 후평이라고 불렀다. 봉의산 뒤쪽이 되고 또 읍내에서 뒤쪽이 되므로 뒷두루, 뒷들, 후평(後坪)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보안리를 병합하여 후평리라 했다. 1939년 읍제 실시에 따라 일출정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후평동으로 정했다. 후평공단을 비롯하여 속속 주택단지가 생겨 인구과밀현상이 발생하여 1986년 1월 1일부터 조례 1337호에 따라 후평 1동·2동으로 분리되었다.

후평2동

뒷두루, 뒷들, 후평1동과 지명유래를 같이 한다. 신거주지 개발로 인구밀집이 심화되어 1986년 1월 1일 시조례 1337호에 의거, 후평1동·2동으로 분동되었다.

효자1동

춘천군 부내면(춘천읍)지역으로 효자정문이 있어 효자문거리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약사리에 편입되었다가1939년 수정이라는 왜식동명을 사용하였으나 1946년 6월 1일에 군정법령에 의하여 갈라져 효자동이 되었다. 1970년 7월 1일 시조례 365호에 의해 효자 1구·2구·3구로 나눌 때 효자 1구가 되었으며, 1974년 1월 시조례 621호에 의거, 효자1동이 되었다.

효자2동

1970년 7월 1일 시조례 제365호에 의거, 효자 1구·2구·3구로 나눌 때 효자 2구가 되었으며, 1974년 1월 1일부터 시조례 621호에 의해 현재의 효자2동 이름을 갖게 되었다.

효자3동

1970년 7월 1일 시조레 제365호에 의거, 효자 1구·2구·3구로 나눌 때 효자3구가 되었으며, 1974년 1월 1일부터 시조례 621호에 의해 분리되어 효자3동이 되었다.

석사동

춘천군 동내면 지역으로 벌판에 돌과 모래가 많으므로 벌말, 석사리(碩沙里)라 했다. 1914년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석리와 남부내면의 상퇴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석사리라 했다. 부내면(춘천읍)에 편입되었고, 1939년 읍제 실시에 따라 석사리를 석사동으로 고쳤다. 1988년 석사동 택지개발을 시점으로 주거지역으로 변했다.

퇴계동

춘천군 남부내면 지역으로 곰지내(공지천)이 동북쪽으로 물러갔으므로 무린개, 물린개, 무릉계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부내면의 약사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퇴계리라 하여 신남면에 편입했다. 1939년 춘천읍에 편입되어 퇴계정이라 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퇴계동으로 정했다. 퇴계 이황의 외가고을로 퇴계가 여기까지 와서 지냈으므로 퇴계동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온의동

춘천군 남부내면 지역으로 오눗골, 오鋵골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신남면 칠전리에 편입되었다. 1939년 춘천읍에 편입되어 상반정이라 했다가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온의동으로 정했다. 1990년부터 온의·퇴계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크게 변모하고 있다.

삼천동

삼천동은 원해 춘천군 남부내면 지역으로 마삼내, 마삼천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강창리, 농암리와 양지변리, 송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삼정리로 하고 신남면에 편입하였다. 1973년 3월 12일 대통령령 제6542호로 춘천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6월 8일 춘천시 조례 제608호에 의거, 삼천동으로 명명되었다.

칠송동

칠송동은 대통령령 제6452호(1973. 3. 12. 공포)로 춘천군 신동면 칠전리와 송암리가 춘천시에 편입되어 1973년 6월 8일 춘천시 조례 제 608호에 의거 칠전·송암동이라는 행정동이 되었다가 1973년 11월 7일 춘천시 조례 제621호에 의거, 1974년 1월 1일부터 칠송동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칠전리

본래 춘천군 남부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상칠전리, 하칠전리와 남내일작면의 창천리를 병합하여 신남(신동)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3월 12일 춘천시에 편입되었다.

▶송암리

춘천군 남내일작면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천동리, 별동리와 송현리, 은지변리, 마삼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송암리라 하고, 신남(신동)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3월 12일에 춘천시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우동

우두동 일부 지역과 사농동 일부지역을 합쳐 사2·우2동이라 칭하다가 1973년 12월 7일 춘천시 조례 제621호에 의거, 1974년 1월 1일부터 현재의 행정동 명칭인 사우동으로 불리고 있다. 화천에서 흘러오는 자양강 물과 양구에서 흘러오는 소양강물이 합류되는 지역에 위치한다.

우두동

본래 춘천군 북내면의 지역으로 소머리, 쐬머리, 우두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두상리, 우두하리와 우두중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우두리라 하고 신북면에 편입하였다가 1939년 읍제 실시에 따라 우두정으로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우두동이라 했다.

사농동

춘천군 북내 일작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적리, 옥산포와 우두중리 일부를 병합하여 마적과 옥산의 이름을 따서 마산리라 하고, 신북면에 편입하였다가 1939년 춘천읍에 편입되면서 마산정이라 했다. 1946년 왜식 동명을 우리 이름으로 고칠 때 사농동으로 정했다.

신동

춘천군 북내 일작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한계리·동포리·칠산리를 병합하여 신동리라 하고 신북면에 편입했다가 1973년 3월 12일 대통령령 제6542호로 춘천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6월 8일 춘천시 조례 제608호에 의거, 같은 해 7월 1일에 신동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동이라는 행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동까지 4차선 도로가 확장되어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2.면연혁

동면

동면은 조선후기에 편찬된「여지도서」에 보면 동산외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당시 동산외면은 지금의 동면과 동산면을 포괄하는 면이어서 만법, 학곡, 지내, 이십곡, 품곡, 말걸, 상걸은, 하걸은, 북방, 풍천, 상명암, 하명암, 원창리등 13개리를 관할하였다. 그후 1985년 8월 지방제도를 개정하여 23부를 폐하고 13도를 둠에 따라 강원도 춘천군이 되면서 동산외일작, 동산외이작면으로 분해하여 동산외일작면은 상천곡·하천곡·만법·장항·학곡·지내·이십곡·월곡·상품곡·안현·말걸·판항·군자곡·종자의 15개리를 관할하고 동산외이작면은 신리·평촌·상걸·원창·상명암·하명암·부사원·북방·풍천의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 면 폐합에 따라 이작면에 속해 있던 신이, 평촌, 상걸의 3개리를 일작면으로 편입시켜 만천리를 비롯한 10개리를 관할하다가 1917년 면명을 동명이라 개칭하였으며 이때 이작면은 동산면이 되었다. 1964년 2월 1일 품안출장소를 개설하여 민원사무소에 편익을 도모하던 중 소양댐 수몰로 인하여 출장소를 상걸리로 이전, 살걸출장소라 개칭하였으며 현재 1개 출장소, 10개 법정리, 18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동산면

동면과 같이 춘천부 동산외면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1895년 8월에 동산외이면으로 분할되면서 신리, 평촌, 상걸, 원창, 상명암, 하명암, 부사원, 북방, 풍천의 9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14년 군, 면 폐합에 따라 신이·평촌·상걸 3개리가 동산외일작면(동면)으로 이관되고, 남산외일작면의 군자곡·종자 2개리와 남내이작면의 구암·갈동의 24개리를 병합하여 원양·조양·봉명·북방·풍천·군자의 6개리도 개편하고 1917년에 동산면이라 개칭되었다. 1964년 2월 1일 북방출장소를 개소하였으나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개편으로 북방·풍천리를 홍천군으로 이관하고, 북방출장소를 폐쇄하고, 원창·조양·봉암·군자의 4개 법정리, 14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신동면

조선후기에 대체로 동내면과 남내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남내일작면의 정족·고청·지품·신암·천동·별동·송현은지변·마삼천의 9개리와 남내이작면의 팔미·증리·혈동의 3개리, 부내면의 약사원리를 병합하여 신남면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8개리로 재편성하였으니, 정족·송암·팔미·증리·혈동·삼천·필전·퇴계리였다.

1939년 10월 1일 퇴계리를 춘천읍으로 이관하고, 거두·신촌·고은·사암·학곡의 5개리와 남산외이작면의 의암리를 편입시켜 신동면이라 개칭하여 13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64년 2월 1일 신촌출장소를 개소하여 전 동내지역을 관할하도록 하였으며, 1973년 칠전·송암·삼천 3개리를 춘천시에 이관하여 10개리(27행정리)를 관할하다가 1989년 4월 1일 다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신촌출장소 관할구역이 동내면으로 승격, 신동면으로부터 분할되어 5개 법정리, 12개 행정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동내면

18세기 중반 동내면은 지석·두음곡·사예·암곡·내동·고은동·후웅곡·거두곡·석사리등 9개리를 관할하였으나 후에 약간의 변화를 거쳐 개편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1912년에 간행된「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석사·거두곡·후상·후중·신촌·후하·고은동·내동·암곡·사열·두음곡·지석리등 12개리가 편제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부내면에 폐합되었으며, 1939년 10월 1일 퇴계리를 춘천읍으로 이관하고 거두, 신촌, 고은, 사암, 학곡의 5개리와 남산외이작면의 의암리를 편입시켜 신동면이라 개칭하여 13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64년 2월 1일 신촌출장소를 개설하여 출장소 관할에 속하다 1989년 4월 1일 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어 동내면이라는 옛이름을 다시 찾게 되었다. 통합과 분할과정에서도 5개 법정리는 변동이 없고, 15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남면

조선후기 18세기 중반에 발간된「여지도서」에 의하면 당시는 남산외면으로 군자곡리, 추곡리, 사동리, 관천리, 방하곡리, 서사천리, 하방곡리, 상방곡리등 8개리가 있었으나 고종 32년 실시한 관제개정에 의하여 남산외일작면과 남산외이작면으로 분할하여 일작면은 수동, 후동, 유대곡, 항곡, 가지동, 한덕, 추곡, 통곡, 섬배, 후대곡, 관판, 법소, 반의, 군자곡, 종자등 15개리를 관할하였다. 이작면은 관전, 박암, 하방곡상리, 하방곡하리, 서토천하리, 방하, 서토천상리, 하방곡, 수동의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 면 폐합에 따라 일작면의 군자곡·종자 2개리를 이작면으로 넘겨주고, 이작면의 관천·박암의 2개리를 일작면에 편입하여 남산외일작면은 관천·박암·가정·후동·발산·한덕·추곡·통곡·행촌·광판의 10개리를, 남산외이작면은 의암·마곡·갈동의 3개리를 편입하여 의암·마곡·갈동·강촌·방곡·창촌·수동·백양·서천·방하의 10개리를 관할하였다. 1917년 면명을 개정하여 남산외일작면을 남면으로, 남산외이작면을 남산면으로 하였다가 1934년 다시 두 면을 통합하여 남면이라 칭하고 남산면에 속해 있던 의암리를 신동면에 이관하고, 관천·박암·가정·발산·후동·한덕·통곡·추곡·행촌·광판·창촌·방곡·강촌·수동·백양·서천·방하의 17개리를 관할하는 거대한 면으로 광복과 6.25동란을 거쳤다.

1967년 12월 5일 발산출장소를 개설, 현재의 남면지역을 관할하고 본면에서는 현재의 남산면지역을 관할하였다. 1989년 4월 1일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발산출장소가 남면으로 승격되고 남면은 옛 명칭대로 남산면이 되었다. 관천, 박암, 가정, 발산, 후동, 추동, 한덕리의 7개 법정리(11개 행정리)를 관할하여 오늘에 이른다.










남산면

남산면은「여지도서」에 의하면 남산외면 지역으로 당시는 군자곡리·추곡리·사동리·관천리·방하곡리·서사천리·하방곡리·상방곡리등 8개리였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남산외일작면과 남산외이작면으로 분할하여 남산외일작면은 수동·후동·유대곡·항곡·가지동·한덕·추곡·통곡·섬배·후대곡·광판·법소·반의·군자곡·종자 등 15개리를 관할하고, 이작면을 관천·박의암·하방곡상리·하방곡하리·서토천하리·방하·서토천상리·하방곡·수동의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 면 폐합에 따라 남산외이작면의 군자곡·종자의 2개리를 동산외이작면에 넘겨주고, 남산외이작면의 관천·박암의 2개리를 남산외일작면에 편입토록 하여 남산외일작면은 관천·박암·가정·후동·발산·한덕·추곡·통곡·행촌·광판의 10개리를, 남산외이작면은 의암·마곡·갈동의 3개리를 편입하여 의암·강촌·방곡·창촌·수동·서천·백양·방하의 8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17년 면이름을 고쳐서 남산외일작면은 남산면, 남산외이작면은 남면으로 하였다가 1939년 다시 두 면을 합하여 남면으로 하고, 남산면 관할이던 의암리는 신동면에 넘겨두고 관천·박암·가정·후동·발산·한덕·추동·통곡·행촌·광판·강촌·방곡·창촌·수동·백양·서천·방하의 17개리를 관할하였고, 1957년 12월 5일 발산출장소를 개소하여 7개리를 관할하였으며, 1989년 4월 1일 발산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어 출장소 관할지역은 남면으로, 본면 관할지역은 남산면으로 분할되어 현재 통곡·행촌·광판·강촌·방곡·창촌·수동·서천·백양·방하의 10개 법정리(20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서면

서면은「여지도서」에 의하면 서상면과 서하면을 합한 지역에 해당하는데 당시 서상면에는 수정·월굴·화천·향천·반송·오매·사·보가대·권산·신포·갈월·지가암·원당등 13개리가, 서하면에는 안보·마당·명월·예동·방동·갈둔·와빈리등 7개리가 속해 있었다. 그후 고종 32년에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서하면을 분할하여 서하일작면, 서하이작면이라 하여 서하일작면은 와빈·갈둔·금산·하방동·상방동·상현암·하현암·덕두원·명월의 9개리를, 이작면은 백일동·마당·고역촌·안보·탑동·율장의 6개리를 관할하게 되었고, 서상면 소속의 13개리도 분리되거나 개칭되어 18개리로 조정되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한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서하일작면 9개리와 서하이작면 6개리를 폐합하여 금산·방동·현암·덕두원·당림·안보의 6개리로 재편하여 서하면으로 하였고, 서상면은 종전의 18개리를 폐합하여 6개리로 조정하였다. 그후 1934년 4월 1일 서상면의 지암·원평 2개리는 사북면으로 이관하고, 신매·월송·서상·오월의 4개리를 병합하는 동시에 면명을 서면이라 개칭하여 10개리를 관할하였다.

1964년 2월 1일 용산출장소를 개설하여 오월리를 관할토록 하고, 1965년 3월 10일 덕두원출장소를 개소하여 덕두원·당림·안보리를 관할토록 하였고, 1971년 1월 7일 행정구역 개편시 현암·금산리의 일부(중도)를 춘천시로 이관하였다. 서면은 현재 10개 법정리와 23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사북면

「여지도서」에 의하면 당시 이 지역은 사탄외면이라 하여 서오지와 오리동 2개리 뿐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이르러 지방관제를 면단위까지 세분하여 행정력을 강화함에 사외면으로 개칭하고, 군량대·서오지·오리동·탄감의 4개리로 개편하였으나 지금의 관할구역과는 차이가 있다.

1914년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군, 면 통폐합으로 종전의 북내이작면의 고탄상리·고탄하리·인람·가일·송암상리·송암하리의 6개리와 화천군 하서면의 서오지리, 사북면 지역을 통합하여 사외면에서 사자와 북내이작에서 북자를 취하여 사북면이라 개칭하고, 고성·고탄·인람·가일·송암·신포·지촌·오탄의 8개리로 개편하여 관할하게 되었다. 그후 1934년 4월 1일 서상면의 원평·지암의 2개리를 편입시켜 10개리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과 더불어 38도선이 가로막아 국토가 분단되어 신포·지촌·가일·오탄의 4개리가 북한치하에 들어갔다가 1954년 11월 15일 수복되었다. 1964년 11월 15일 인람리에 있던 면사무소는 춘천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 위치인 신포리로 이전하였고, 1965년 3월 10일 지암·고탄·고성·송암·인람리 지역 주민의 편익을 제공하기 위하여 용산출장소를 개소하였다. 1개 출장소, 10개 법정리, 16개 행정리를 관할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신북면

「여지도서」에 의하면 당시는 북중면지역에 해당하여 율대, 천구, 산본, 발산, 장본, 유포, 천전리 등 7개리가 속해 있었으나 1912년 당시는 율대리, 문정리, 천구리, 산본리, 발산리, 장본리, 상유포리, 하유포리, 상천전리, 하천전리등 10개리로 되어 있었다.

1914년 군, 면 통폐합에 따라 종전의 북중면 지역 10개리와 북내일작면 14개리를 합하여 천전, 유포, 율문, 산천, 발산, 지내, 용산, 신동, 마산, 우두의 10개리로 개편하고, 면명을 신북면이라 하였다. 그 후 1939년 10월 1일 춘천읍 확장에 의하여 우두·마산 2개리를 춘천읍으로 넘겨주고,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시 신동리를 또 춘천시에 이관함으로써 7개 법정리(25개 행정리)만을 관할하여 오늘에 이른다.

북산면

「여지도서」에 보이는 북산외면 지역으로 당시는 부창, 건천, 내평, 사전, 오항, 추곡, 대곡, 대동, 수산, 조탄, 무노곡리등 11개리가 속해 있었다. 그후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상건천, 하건천, 부창, 여오천, 내평, 오항, 상추곡, 중추곡, 하추곡, 대곡, 대동, 수산, 사전, 조탄 삽교, 가협, 물노곡리등 17개리가 속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양구군 남면의 상수내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종전의 17개리를 재편하여 청평, 부귀, 추곡, 추전, 오항, 내평, 물노, 조교, 대동, 대곡, 수산리 11개리로 개편하고 1917년 북산면이라 개칭하였다.

1970년 7월 1일 내평리에 소재한 면사무소가 소양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 위치인 오항리로 이전하였고,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산리를 인제군에 이관하였으며 조교출장소를 개소하여 1개 출장소, 10개 법정리(15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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