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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청동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1) 집자리 구조

춘천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내평리와 신매리유적을 들 수 있다. 내평리 집자리는 문화재관리국이 소양댐 수멀지구에 대한 발굴과정에서 찾은 것이고, 신매리의 집자리 3기는 국립종앙박물관의 중도일대에 대한 연차발굴 때 조사된 것이다.

⸁ 내평리 집자리

전체적인 규머는 남북 3.1m, 동서 2.65m 이며, 평면형태는 각을 죽인 네모꼴이다. 바닥은 거의 평탄하게 마련되었으며 움깊이는 대개 40-45cm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바닥면에는 타다남은 굵은 숯토락이나 부스러기가 많이 포함된 잿더미층이 있다. 숯기둥은 네벽 모서리에서 중앙를 향해 쓰러져 있는데, 그 굵기는 6-8cm, 남은 길이는 1m내외가 되어 본래의 기둥 굵기는 10cm 이상 되었다고 추정한다. 불땐자리는 별 도의 시설이 확인되지는 않앗기만, 집자리 중앙에 유달리 검게 탄 흙이 40⁓25cm 범위의 타원형으로 발견되었다. 화재 때문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자리에서는 간돌화살촉 5점, 숫돌 1점이 출토되었다. 집자리 내부에서 나온 숯을 이용하여 연대측정한 결과, 2290⁑60B.P.(B.C. 340), 2930⁑60B.P.(B.C. 980),2590⁑60B.P.(B.C. 640)의 연대가 나왔다.





⸂ 신매리 집자리

1호 집자리는 신매리 나루터에서 강 아래로 약 250m 내려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남동 4.7m, 북서 4.2m 크기며 움깊이는 약 35cm정도이다. 평면형태는 각을 죽인 네모꼴을 이루거 잇다. 집자리 바닥은 모래땅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네 벽을 돌아가며 군데군데 불탄 흙과 숯들이 집중되어 나타난다. 그바5에 불땐자리나 기둥구멍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출토된 유물은 그릇꼴을 알아볼 수 있는 구멍무늬 토기 1점과 민무늬토기조각, 붉은 간토기조각, 반달돌칼 1점으로 빈약한 편이다.

2호 집자리는 북동 5.5m, 남서 4.5m 크기이며, 움깊이가 약 45cm정도인 긴 네모꼴움집이다. 불땐자리는 집자리 중간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75cm 간격으로 2개가 나란하게 만들어져 있다. 바닥은 역시 모래땅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기둥구멍은 발견되지 않앗다. 2호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은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만무늬토기조각 등이며, 약간의 석기와 석기재료 파편들이 흩어져 나왔다.

3호 집자리는 1,2호 집자리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져 있다. 이 집자리는 호숫가 단애면에 파괴된 채 노출되어 있었으며, 바닥면의 길이는 약 4m, 움깊이는 40-50cm정도였다. 바닥에는 약 10cm 두께의 모래를 깔았으며 구 위에는 숯층이 5-10cm두께로 전면에 깔려 있었다. 벽선은 비스듬히 경사져 올라가도 있다.

3호 집자리가 드러난 단애면 안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는 지름이 약 140cm 이며 , 60cm정도 움을 파고 설치한 불땐자리가 나왔다.

(2)고인돌 무덤의 구조와 성격

춘천지역에서 발굴된 고인돌 자료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국립박물관에서 1960년 대에 발굴한 천전리 고인돌, 소양댐 수몰지구에서 발굴된 대곡리. 추전리. 내평리 고인돌, 국립중앙박물관. 강원대 박물관. 한림대 박물관에서 1980년대에 발굴한 중도와 신매리 고인돌 등이 있다.

① 천전리 고인돌

천전리에서는 1966년과 1967년 두 차례엥 걸쳐 고인돌 3기와 돌무지무덤 3기가 발굴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돌무지 무덤이라는 것도 사실은 돌무지가 추가된 고인돌의 하부구조인 것이다. 제 1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2.60×2.20×0.45m이며 타원형의 돌무지 위에 놓여 있었다. 돌무지의 규모는 8.88×6.50×1.00m이며, 그 중심에 4매의 판석으로 만든 석관이 위치하고 있다. 2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없어졌지만 7.80×5.30×0.5∼0.6m 규모의 적석과 약 70×75㎝ 크기의 석관으로 이루어져있다. 3호 고인돌은 1.70×1.30×0.2∼0.4m 크기의 덮개돌과 돌무지 반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관은 없어진 상태다. 4호 고인돌은 4.20×5.00m 규모의 돌무지와 그 안에 마련된 2개의 석관(41×25㎝, 45×22㎝)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예이다. 2개의 석관은 각각 4매의 판석으로 만들었다. 5호 고인돌은 심하게 파괴었으며, 남은 돌무지의 크기는 5.00×4.00m 이다. 6호 고인돌의 크기는 2.50×1.95×0.20m 이다. 남은 돌무지의 규모는 약 6.00×5.00 이다.

② 중도 고인돌

1호 고인돌은 1982년에 강원대학교 박물관이 주관한 중도 선사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조사된것이며, 파괴되어 흩어진 석재들을 통해 볼 때 덮개돌과 돌무지시설, 석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2호 고인돌은 1호로부터 동쪽으로 약 10m쯤 떨어져 있다. 덮개돌은 잘려나가 衁자형으로 남아 있었으며, 그 주변에 동서 길이 9.5m, 남북 길이 8.0m 규모의 돌무지가 동서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그 돌무지 중앙에 석관이 위치한다. 3호 고인돌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한 것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3.12×2.20×0.90m 이며, 8.8×6.6×0.6m 규모의 돌무지가 있었다. 석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덮개돌과 돌무지시설로만 이루어진 예로 보인다. 4호 고인돌은 1984년에 강원대 박물관이 발굴한 것이다. 덮개돌은 모가 죽은 삼각형이며, 크기는 2.7×1.8×0.48m이다. 역시 동서 길이가 6.4m, 남북 길이가 6.4m, 남북 길이가 4.4m인 돌무지를 하고 있으며 내부에 석관이 놓여 있다.

③ 신매리 고인돌

신매 2리 고인돌은 한림대학 박물관에서 발굴한 것인데 덮개돌과 돌무지시설, 석관으로 이루어진 남북 장축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신매 1리 1호 고인돌은 남북 장축의 덮개돌 밑에 서로 반대쪽으로 쓰러진 2매의 판석이 석관을 이루고 있었으며, 주변에서 밀집된 돌무지 시설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매 1리 2호 고인돌은 1호에서 북쪽으로 19m거리에 위치하며, 덮개돌은 3.1×1.8×0.6m 크기이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돌무지시설은 남북 길이가 2.5m, 동서 길이가 약 2m 인데 그 서측부에 석관으로 보이는 판석 1매가 남아 있다. 신매1리 3호 고인돌은 2호로부터 북쪽으로 13m 거리에 있으며 3.4 1.5m크기의 덮개돌 위에 1.21m 크기의 소형판석이 덧놓여 있었다. 파괴되어 교란된 것으로 여겨진다. 신매 1리 4호 고인돌은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지만 돌무지시설을 한 것이 앞의 것과 동일한 형태로 여겨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춘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한강유역 고인돌의 기본구조는 덮개돌 하부에 광범위한 규모의 돌무지시설을 하고 그 중앙에 판석으로 이루어진 석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질충적토 위에 일정범위로 돌들을 깔거나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탁자식 고인돌을 축조한 형태가 북한강유역 고인돌의 특징이다. 이러한 돌무지시설을 고인돌에서 돌무지무덤으로 전이해가는 중간단계의 형식으로 보기도 하고, 이 지역의 지반이 사질충적토이기 때문에 하부구조를 보강하기 위한 시설로 보는 사람도 있다.

4) 초기철기 - 원삼국시대의 사회와 문화

(1) 집자리구조 : 중도 유적

춘천지역에서 발굴된 초기철기시대의 집자리 유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사한 중도 유적을 들 수 있다. 1980년과 1982년 두 차례에 걸쳐 2기의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① 1호 집자리

1호 집자리는 근화동에서 출발하는 배가 도착하는 중도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 좌측 강언덕에 있는 김종수씨 소유의 밭에 위치한다. 집자리 규모는 동서 5.4m, 남북 5m 정도 크기(27㎡, 8.1평)이며, 평면 형태는 각을 죽인 네모꼴을 이루고 있어 둥그스름한 편이다. 움깊이는 약 42m정도이며, 불땐자리를 중심으로 직경 2m 정도의 범위에는 진흙을 2㎝정도 두께로 다져서 바닥을 처리하였으나 그 외에는 모래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둥구멍은 동쪽벽에서 1개, 서남쪽벽에서 3개가 발견되었다. 그 중 동쪽벽에서 확인된 기둥구멍의 바닥에는 강돌 5개가 깔려있어 기둥을 보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땐자리는 집자리 서벽에서 1.5m 떨어지고, 중앙에서 북으로 50㎝정도 치우쳐서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95×120㎝정도이며, 바닥에는 둥글납작한 냇돌 50여개를 빽빽히 타원형으로 깔고 그위에 진흙을 펴서 다졌다. 둘레에는 6 - 7개의 길죽한 냇돌을 돌리고 그 위에도 역시 진흙을 덮어 테를 이루고 있다. 불땐자리 서편 끝에는 높이 14㎝, 길이 40㎝, 폭 12㎝의 큰돌이 세워져 있다.

중도 1호 집자리에서 주목되는 것은 동쪽벽에서 발견된 진흙 구조물이다. 동벽에 붙은 폭 1.5m의 진흙띠가 벽의 어깨면으로 좁아지면서 올라가 어깨면에 나타난 크기가 폭 70 - 75㎝, 길이 150㎝, 높이 30㎝정도 되었다. 또 동벽에 붙은 진흙더미 속에는 높이 23㎝, 폭 50㎝의 화구와 같은 터널이 있고, 그 속에 2.5㎝ 두께의 나무판자가 막혀 있고 아래에는 다시 굵은 재목을 가로질러 놓았다. 보고자는 이 진흙 구조물을 집자리와 연결되는 굴뚝같은 시설로 추정하였다.

1호 집자리에서는 경질의 민무늬토기, 두드림무늬토기 등이 여러 점 출토되었고, 석기로는 간돌 1점과 숫돌 2점이 있다. 철기로는 단조된 도끼날형 넙적촉 2점, 끌로 추정되는 철기 1점, 작은 철편 1점이 발견되었다. 그밖에 탄화된 조가 두드림무늬토기 속에서 발견되었고, 짚이 섞인 진흙덩어리가 집자리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② 2호 집자리

2호 집자리는 삼천동에서 중도로 들어오는 유람선 선착장 부근의 강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 6m ,남북 6m 크기(36㎡, 10.8평)의 네모꼴 움집이며, 움깊이는 90-100㎝정도이다. 집자리 바닥에는 전면을 1-3㎝정도 두께로 진흙을 펴서 다졌다. 기둥구멍은 동쪽벽에서 1개, 남쪽벽에서 1개가 확인되었다. 불땐자리는 170×114㎝크기의 타원형이며 집자리 북편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축조방법은 1호 집자리와 같이 바닥에 평평한 강돌을 편 다음 진흙으로 덮고, 주위에 두께 16㎝의 진흙띠를 돌렸다. 불땐자리 북편 끝에는 높이 20㎝, 길이 77㎝, 두께 4-10㎝의큰돌을 60°정도 경사지게 세워 놓았는데, 바람막이돌로 추정된다. 2호 집자리에서는 경질의 무문토기, 두드림무늬토기 등이 여러 점 출토되었고, 철기로는 손칼 4점, 낫 2점, 장방형 고리 1점, 철정 1점, 철편 10점 등이 나왔다. 그 밖에 간돌도끼 1점, 가락바퀴 9점, 관옥형 토제품 1점이 출토되었다.

(2) 돌무지무덤의 구조와 성격 : 중도 돌무지무덤

중도 돌무지무덤은 중도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2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2기중 1981년에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동쪽 돌무지무덤을 발굴하여 그 구조가 밝혀졌다. 이 돌무지무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강돌과 모난돌, 모래 등을 이용해 기단없이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먼저 얕은 구릉위에 모래를 계속 깔고 덮으면서 굴곡을 없애고, 강과 인접하여 무너지기 쉬운 곳에는 4m 높이로 밑에 모난돌들을 놓고 그 위에 축대를 쌓듯이 납작한 강돌과 모난돌을 쌓아 올려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였으며, 그 내부에 모래를 넣어 다진 것으로 보인다. 맨 아래쪽에 굵은 모래를 4m 가량 덮고 다시 가는 모래를 10㎝정도, 다시 그 위에 모래질 찰흙을 7.8㎝깔아 내곽과 외곽의 강돌을 세우고 바닥에 납작한 강돌을 평면이 되도록 깔아 무덤방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매장 주체부에는 최소 2개이상의 무덤방이 설치된 것으로 여겨진다.

출토된 유물은 경질의 민무늬토기, 두드림무늬토기 등이며, 청동제 귀걸이쇠칼쇠못쇠화살촉 등의 철기류가 포함되어 있다. 중도 돌무지무덤의 방사성탄소연대는 1860±140B.P. 와 1855±120B.P.로 나타났다.

(3) 새로운 토기유형의 설정 : 중도식 토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중도의 집자리를 발굴하면서 두드림무늬토기와 함께 나오는 새로운 형태의 민무늬토기를 '중도식 토기'라고 이름 붙였다.

중도식 토기의 형태상 특징은 몸통부위가 장대하고 최대지름의 위치가 몸통 윗부분에 있다는 점과 밖으로 벌어진 입술에 있다. 이러한 형태의 토기는 동시기의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 영동해안지역의 중부지방에서 비교적 많이 나타난다. 중도 집자리 발굴자들은 중도식 토기가 두드림무늬토기와 함께 나오는 점을 들어 기원후 1-2세기로 편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홍종은 중도식 토기를 송국리식 토기에 연결하여 민무늬토기적인 전통에서 파악하고, 원삼국기의 토기로 보지 않으면서 연대를 기원전 3세기경으로 올려보고 있다. 또한 안재호도 중도식 토기를 민무늬 토기시대 중기로 설정되고 있는 송국리식 토기의 계승으로 보아 송국리식의 형태가 중부지방에서 극단화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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