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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의 연혁



춘천에서는 교동동굴유적, 북산면 내평리 주거지, 중도 유적등의 신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하여 청동기·철기시대의 유적,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기의 정치집단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서 막연히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다만 여러 역사, 지리서에 '본맥지(本貊地)', '본맥국(本貊國)' 혹은 '고맥국(古貊國)'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이 또한 전승에 의한 후대의 추정이지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맥국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의 "맥국의 거수가 날짐승 들짐승을 사냥하여 왕에게 바쳤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소국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맥국이 언제까지 잔존했는지도 알 수 없으나 고구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춘천지역은 고구려에 흡수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춘천의 고지명 중에 '오근내(烏斤乃)'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오근내'의 '내(乃)'는 고구려 지명 가운데 '나(那)' "노(奴)"와 통하는 것으로 본래는 소국을 뜻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춘천지방은 신라가 삼국을 통합하기 전까지는 대체로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삼국시대 말기에 와서 춘천지역도 삼국이 영토 각축을 벌이면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왕 6년(637)에 우수주를 설치하고 군주를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후는 삼국이 가장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춘천이 신라의 영역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삼국통일 후인 문무왕 13년(673) 신라는 춘천지역에 수약주(首若州)를 설치하고 북방의 방비를 위하여 주양성(走壤城)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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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신문왕대에 9주의 설치와 함께 그 영역이 정비되어 춘천지방은 1소경과 12군 26현을 관할하는 치소(治所)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경덕 왕대에 삭주로 개칭하였다가 뒤에 광해주(光海州)로 개칭되어 고려 초 까지 이 명칭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후 점진적으로 군현제를 근간으로 하는 지방행정체제를 정비해 나가게 되는데, 태조 23년(940) 춘천지역은 광해주에서 춘주로 고쳐지게 되었다. 이후 성종 2년(983)에는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점차 중앙집권체제로 개편하여 갔다. 이 당시 춘천지역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나 성종 14년(995)에 이르러 지방제도를 절도사제(節度使制)로 개혁하면서 전국을 10개도로 나누고 그 하부구조로 주와 현을 설치하였는데, 12목에 설치되었던 곳에는 12절도사를 두고 그보다 하위의 주에는 도단련사(都團練使 : 7개소),단련사(11개소), 방어사(21개소), 자사(刺使 : 15개소)를 두었고, 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5개의 도호부(都護府)를 두었다.

이때 춘천지역은 교주(交州 : 회양), 동주(東州 : 철원), 창주(昌州 : 연천), 등주(登州 : 안변), 명주(溟州 : 강릉), 척주(陟州 : 삼척)등과 함께 10도 중 삭방도(朔方道)에 편제되어 화주(和州 : 영흥)에 설치된 안변도호부 소속의 단련사를 칭하게 되었으며, 또한 성종이 수춘(壽春)이라는 별호를 지어 주었다.

이 제도는 10년 뒤인 목종 8년(1005)에 페지되었고 현종 원년(1009)에 5도호부 75도안무사를 었으나 현종 9년(1018) 전국의 군현체제를 전면 개편하여 전국에 3경(京), 8목(牧), 4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고 그 밑에 주(州), 군(郡), 현(縣), 진(鎭)을 영속시켜 고려의 지방제도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이후 몇 차례의 제도의 변천을 거쳐 5도양계제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적인 변화 속에서 춘천지역은 교주도에 속하였으나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춘주지(春州誌)등의 기록에 의하면, 춘천이 안변도호부 소속하에서 길이 매우 험난하여 왕래가 불편하므로 신종(神宗) 6년(1203)에 당시 국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충헌에게 뇌물을 주고 안양도호부로 독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지춘주사(知春州事)로 강등되어 조선시대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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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주에 속해있는 고을은 가평군(嘉平郡), 낭천군(狼川郡) 2군과 기린현(麒麟縣), 조종현(朝宗縣), 인제현(麟蹄縣), 횡천현(橫川縣), 홍천현(洪川縣), 방산현(方山縣), 서화현(瑞禾縣), 양구현(楊溝縣)등 9현이었다. 이 군현들 중에서는 낭천(화천)에만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양구와 겸임으로 다스리는 외에는 지춘주사의 관할 하에 있었다.

조선왕조 건국초기의 중앙의 통치조직과 지방행정제도는 일부의 명칭을 개칭하는데 불과하였을 뿐이며 고려말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러나 태종이 즉위하면서 점차 통치체제를 정비하여 태종 13년(1413)에는 서북면을 평안도라 개칭하고 동북면을 영길도(永吉道)라고 하였다. 이로써 경기와 황해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5도와 동북면, 서북면의 2면 즉, 경기와 오도양면제(五道兩面制)는 팔도제도(八道制度)로 정리되었고, 이 조선팔도 제도는 고종 32년(1895) 23부제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춘천지역은 건국초에는 대체로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계수관(界首官) 획정에 의한 체제를 유지하여, 교주강릉도에서는 춘주를 비롯한 원주, 회양, 강릉, 삼척 등 5개구역이 계수관으로 지정되어 주변의 속군, 속현을 다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최초의 큰 변화는 태조 5년(1396년)에 있었다. 종전 춘천의 임내(任內)였던 가평현에 감무가 파견되고 이어서 태종 13년(1413) 8월 1일(음력)에는 경기좌도에 이속된 것이다. 태종대에는 이 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각 지방의 고을 명칭을 고쳤다. 이때 춘주는 춘천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태종 15년 지방관세를 개편하여 춘천 도호부가 되었다. 세종대에 와서도 계속 행정구역의 조정이 이루어져 세종 6년(1424) 7월 29일(음력)에는 춘천 경내에 있던 이포(伊布)와 회양경내에 있던 서화(瑞和)는 인제현으로, 회양 경내의 방산과 춘천 경내의 해안은 가까운 양구현으로 이속되었다. 이후 조선전기에 있어서 춘천에는 행정구역상의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조선전기의 춘천에 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는 춘천에 관한 부분과 기타 조선왕조실록에 산발적으로 보이는 기사가 주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거하여 춘천에 상황을 보면, 당시 강원도는 대도호부 1개, 목(牧) 1개, 도호부 4개, 군(郡) 6개, 현(縣) 11개등 총 21개 행정구역으로 편제되었는데 계수관(界首官)체제를 계속 유지하여 강원도는 춘천을 비롯하여 강릉, 원주, 회양, 간성, 삼척 등 6개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각기 계수관이 군현을 통제하는 체제로 편제되었는데, 춘천도호부에는 낭천현, 양구현, 인제현 3개현이 소속되었다. 또 속현(屬縣)으로 기린현이 있었고, 향(鄕)이 1개소 소속되어 있었으며, 중앙관리로서 부사(府使) 1명과 유학교수(儒學敎授) 1명이 파견되었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춘주속지」에 의하면 춘천은 당시 부내면(府內面), 동내면(東內面), 남내면(南內面), 동산외면(東山外面), 남산외면(南山外面), 서하면(西下面), 서상면(西上面), 북내면(北內面), 북중면(北中面), 북산외면(北山外面)등 10개면과 2개의 속현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그후 춘천의 행정구역상의 큰 변화는 보이지 않고, 다만 그 위상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즉, 임진왜란 중인 1592년 8월 통정대부 박종남(朴宗男)이 춘천부사로서 좌도방어사(左道防禦使)를 겸한 바가 있으며, 병자호란 중인 1638년 각 지역의 방어체제를 정비하면서 춘천이 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감영과 서로 가까이 있어서 국방상 편의점이 있다고 하여 이전에 춘천영장(春川營將)으로 있으면서 군사를 다스리는데 능력이 있었던 회양부사 권정길(權井吉)을 춘천부사로 방어사를 겸하도록 하였다. 이후 영조 21년(1745) 조덕중(趙德中)이 방어사로 오기까지 춘천부사는 방어사를 겸하게 되었으나, 영조 23년(1747) 전 해에 강원도 심리사로 파견되었던 구택규의 보고에 의하여 춘천의 방어사영이 철원으로 옮겨가고 춘천에는 부사겸좌영(府使兼左營)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영조 31년(1755) 5월 역모사건 수습을 축하하기 위한 춘당대시(春塘臺試)를 보는 중 과지(科紙 : 과거시험의 답안지)에 임금을 비방하는 심정연(沈鼎衍)의 글이 발견되어 새로운 역모사건을 일으켰다. 이때 이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강몽협(姜夢協)·봉성(鳳星)등이 춘천 태생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 후인 영조 41년(1756)에 복구되는 일이 있었다.

한편 18세기 중반에 와서 춘천은 종전의 10면(面) 2개 속현 체제가 대체로 유지되면서 남부내면이 신설되고, 2개 속현이 면으로 개칭되면서 사탄(史呑)이 외면(外面)과 내면(內面)으로 나뉘어져 총 14개면 114개리로 편제되었다. 1871년에 만들어진 춘천부 읍지(邑誌)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을 보면 일부 리(里) 명칭의 한자 표기가 바뀐것과 호구수(戶口數)상의 변화를 제외하고는「여지도서」에 수록되어 있는 춘천의 행정체계는 19세기 후반까지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호부 체제로 유지되어 오던 춘천은 고종 25년(1888)에 그 격을 높여 유수부(留守府)로 개편되었고, 2년 후에는 춘천유수였던 민두호(閔斗鎬)가 왕명에 의하여 현재 강원도청 자리에 조정이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해 2년에 걸쳐 이궁(移宮)을 짓기도 했다.

고종 32년(1895) 5월(칙령 제98호 : 1895. 5. 26. 공포)에는 갑오개혁의 추진에 따라 지방제도 역시 8도제 체제에서 23부 336군 체제로 개편되었는데 이때 강원도는 강릉부와 춘천부로 개편되었고, 원주, 영월, 평창, 정선등 4개 지역은 충주부로 이속되었으며, 원주 감영을 폐지하고 춘천과 강릉에는 관찰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춘천부는 춘천군, 양구군, 홍천군, 인제군, 횡성군, 철원군, 평강군, 김화군, 낭천군, 회양군, 금성군, 양근군, 전평군 등 13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편은 인위적인 획정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1년 2개월만에 폐지되어 13도 1목 7부 331군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고, 춘천에는 춘천군을 비롯한 원주군, 강릉군, 회양군, 양양군, 철원군, 이천군, 삼척군, 영월군, 평해군, 통천군, 정선군, 고성군, 간성군, 평창군, 김성군, 울진군, 흡곡군, 평강군, 김화군, 낭천군, 홍천군, 양구군, 인제군, 횡성군, 안협군등 26개군을 관할하는 치소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후 광무 10년(1906) 9월에는 전국의 지방구획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당시까지 춘천의 속현이었던 기린면이 인제군으로 이속되었다. 기린면은 신라시대 이래로 주위의 군현들과 함께 춘천의 영현이었으나 주위의 영속현들에 수령이 파견되면서 독립될 때 독립된 단위를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춘천의 영현(領縣)→임내(任內)로서 월경처가 되었다가 이때에 이르러 조정되었던 것이다.

이에 1912년에 간행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의하면 춘천군은 당시 18개면 191개리로 편제되어 있었으며, 곧 12개면 103개리로 다시 조정되었다. 이후 1917년 춘천군 부내면이 춘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20년 7월 29일 부령(府令) 제13호(1920. 7. 29. 공포)로 면제(面制)가 제정되어 지정면(指定面)이 되었다.

1931년 4월 1일 부령 제103호(1930. 12. 29. 공포)에 의한 지방제도의 개혁으로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35년 12월 1일에는 부령 제112호(1935. 9. 28. 공포)로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일부가 춘천군 사내면 맹대리에 편입되었다. 또 1938년에는 읍 전역과 신남면 칠전리 일부를 포함하는 시가지 계획이 실시되었으며, 1939년 10월 1일에는 부령 제169호(1939. 9. 30. 공포)로 당시 신북면의 우두리, 마산리, 동내면의 석사리, 후평리, 신남면의 퇴계리와 칠전리외 일부를 춘천읍으로 편입하면서 구역이 확장되고, 신동면과 동내면을 통합하여 신동면으로 개편하게 되어 1읍 9면이 되었다.

1946년 6월 1일 군정법령 제84호(1946. 5. 13. 공포)로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어 24개동을 관할하였고, 춘천군은 춘성군으로 개칭되어 행정구역이 갈라지게 되었으며, 1949년 8월 15일 법률 제32호(1949. 7. 4. 공포)에 의해 지방자치법이 시행됨에따라 종전의 모든 부(府)가 시(市)로 개칭되어 춘천부는 춘천시가 되었다.

이후 구춘천시에서는 1970년 7월 1일 시조례 제365호(1970. 7. 1. 공포)로 효자 1동을 분리하여 효자 3동을 신설하였으며, 1973년 7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 12. 공포)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춘성군 신동면의 삼천, 칠전, 송암리와 신북면의 신동리, 서면의 현암리와 금산리의 일부가 춘천시로 편입되었다. 1986년 1월 1일 시조례 제1337호(1985. 12. 2. 공포)로 후평동을 후평 1·2동으로 분동하였으며, 1988년 1월 21일에는 시조례 제1432호

(1988. 1. 21. 공포)로 교동 일부를 후평동에 편입하였고, 1990년 4월 4일 시조례 제1617호(1990. 4. 4. 공포)로 효자동 일부를 후평동으로 편입하였다.

1992년 9월 22일에는 시조례 제1772호(1992. 3. 3. 공포)로 석사동 일부를 효자동으로 편입하였으며, 1993년 3월 3일에는 시조례 제1791호(1993. 3. 3. 공포)로 효자동 및 온의동 일부를 근화동으로 편입하였다. 1993년 7월 2일에는 시조례 제1810호(1993. 7. 2. 공포)로 퇴계동 일부를 온의동으로, 온의동 일부를 퇴계동으로 편입하였다. 시청사는 옥천동 111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한편 구춘천군에서는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동시에 38선으로 나뉘면서, 사내면과 북내면 1개리, 사북면 4개리가 행정구역에서 제외되어 1읍 8면이 되었다. 1946년 6월 1일에는 군정 법령 제84호(1946. 5. 13. 공포)로 춘천읍이 춘천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어, 춘천군을 춘성군으로 개칭하고 8개면을 소속시켰다. 1954년 10월 21일에는 법령 제350호(1954. 10. 21. 공포)와 수복지역 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으로 사내면의 4개리와 북산면의 1개리가 화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6542호(1973. 3. 12. 공포)로 동산면 북방리가 홍천군 북방면으로, 풍천리가 홍천군 화촌면으로 편입되었고, 신동면 칠전, 삼천, 송암리와 서면의 금산, 현암리 일부 및 신북면 신동리가 춘천시로 편입되었으며, 북산면 수산리가 인제군 남면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4월 1일에는 군조례 제1200호(1989. 3. 29. 공포)로 신동면 신촌출장소 지역을 동내면으로 승격하였고, 같은 날 군조례 제1202호(1989. 3. 29. 공포)로 남면 발산출장소 지역을 남면으로 승격하면서 종전의 남면을 남산면으로 개칭하였다. 군청사는 춘천시 죽림동 6-1번지에 소재하였다. 춘천시와 춘천군은 '경기도 남양주시 등 33개 도농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 4774호(1994. 8. 3. 공포, 1995. 1. 1. 시행)'에 의하여 1995년 1월 1일부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