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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우수주, 삭주

맥국의 멸망 경위에 관한 기록은 문헌상에 나타나지 않아 상고할 길이 없으나 삼국사기 지리지는 삼국 가운데 춘천지역이 신라 최초로 편입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 삭주조에는 "선덕왕 6년, 당 정관 11년(637)에 우수주로 삼아 군주를 두었는데 경덕왕 飁에 삭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혹은 문무왕 13년(673년)에 수약주를 설치하였다고도 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춘천지역이 선덕왕 이전에 신라령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모죽지랑가로 유명한 죽지랑의 부친인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 죽지령-죽령-을 넘어 임지인 삭주로 가면서 일어나는 죽지랑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죽지랑은 우수주에서 태어나 우두벌에서 말을 달리며 성장하여 신라의 간성이 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죽지랑이 이미 진덕왕 3년(649년)에 김유신 예하의 군으로 백제와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이 기록에 맞추어 본다면 죽지랑이 백제와의 전투에 참여할 때의 나이는 12세가 되므로 납득하기 어렵다. 춘천지역은 이미 선덕왕 6년(637년) 이전에 신라령으로 편입된다고 보아야 한다. 술종공에 관한 기록은 물론 우수주 시대가 되어야 하므로 삭주도독사 역시 잘못되어 삼국유사의 오기나 죽지랑의 탄생에 얽힌 연대는 선덕왕 6년 이전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술종공의 직위인 도독 역시 삼국통일 이후에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명칭으로 술종공 당시에는 군주로 호칭해야 옳으나 삼국유사의 찬자인 일연이 통일신라시대의 칭호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지방통치는 지난날 부족들이 웅거하던 지역에 쌓은 성이 중심이 되었다. 신라는 죽지랑의 부핀인 술정공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 지방의 성주를 중앙귀족으로 임명하여 현지에 파견하였다. 성에는 지방 군대가 조직되어 있어서 성주의 임무는 행정 이외에 오히려 군대의 편성 및 동원에 관한 책임을 지는 군사적 성격이 강하였다.

신라는 지증왕 6년(505년)에 최초호 실직주(삼척)가 설치된 이후 법흥왕 12년(525)에 사벌주(상주)가 다시 설치되었고, 한강 및 낙동강 유역에 진출하게 된 550년대 중반에는 갑자기 여러 주가 신설되어 진흥왕 22년(561)에 건립된 창녕비에는 한성(광주, 비리성(안변)), 감문(금릉 개령), 비자벌(창령)등 4주의 이름이 보이고 있다.

이 주는 작전상의 필요에 따라 주치를 이동하였다. 삼국통일 후 신문왕 5년(685)에 9주를 설치하였다.

신라는 지증왕때 9주를 설치하고 6세기 후반부터는 주군현제를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당과 교섭하면서 당의 행정체계를 도입하여 9주로 정비하였다. 삼국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에 주가 신설되고 주의 성격도 변화되어 갔다. 무열왕에서 문무왕에 이르는 시기에 시작된 지방조직의 정비는 신문왕 5년(685)에 이르러 9주제로 완비되었다.

이 제도는 신라말까지 계속되었다. 신라의 문무왕에서 신문왕대의 9주는 사벌주, 상주, 삽량주(양주), 청주(진주), 한산주(광주), 수약주(춘천), 하서주(강릉), 웅천주(공주), 완산주(전주), 무진주(광주)이다.


이 9주는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중국식으로 9주의 명칭을 향음표기에서 한자식 표기로 개명 표기되었으니 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상주, 양주, 강주, 한주, 삭주, 명주, 웅주, 전주, 무주이다. 지증왕 때부터 주의 장관을 군주라 칭하였는데 이 호칭은 진덕왕 때까지 계속되었다. 군주라는 칭호는 지증왕 때(505) 실직주 군주로 이사부를 임명하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하였다.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군주 칭호는 잠시 총관이라는 명칭과 혼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관 칭호는 순수한 군관직명으로서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당의 제도를 모방하면서 사용된 장군의 별칭으로 생각된다. 결국 삼국통일 이전의 주의 장관은 군주라 하였고 통일이후 당제도의 영향을 받아 도독으로 개칭되었다. 통일전 군주의 임무와 기능은 삼국통일 이후의 도독과는 차이점이 있었다. 초기의 주는 군관구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군주는 사령관 같은 임무를 띠어 주로 군사적인 업무를 담당하면서 행정도 총괄하는 지방관의 역할을 하였다.

삼국통일 이후 영토가 확장되고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행정을 담당하는 태수와 현령등이 중앙에서 파견되자 군주는 주로 군사적인 면을 담당하면서 감독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9주제가 정비되면서 각 지방을 주 단위로 파악하게 되자 주 장관은 군, 현, 소경을 총괄하는 행정관이 되었고 그 명칭 역시 당식을 따서 도독이라 개칭하였다.

경덕왕 16년 기록에 의하면 9주에는 117개군, 293개현이 있었다. 이 가운데 삭주에는 11개군, 27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다. 삭주가 관장하던 군현은 다음과 같다.

영현 - 녹효현 - 고구려 벌력천현, 고려 홍천현

황천현 - 고구려 횡천현, 고려 횡천현

지평현 - 고구려 지현현, 고려 지평현

나군 - 고구려 나토군, 고려 제천

청풍현 - 고구려 사열이현, 고려 청풍

적산현 - 고구려 적산현, 고려 단산현

나령군 - 백제 나기군, 고려 강주

선곡현 - 고구려 매곡현, 고려 미상

옥마현 - 고구려 고사마현, 고려 봉화현

압산군 - 고구려 급벌산군, 고려 홍주

인풍현 - 고구려 이벌지현, 고려 미상

가평군 - 고구려 근평군, 고려 가평

준수현 - 고구려 심천현, 고려 조종현

양록군 - 고구려 양구군, 고려 양구현

희제현 - 고구려 저족현, 고려 인제현

치도현 - 고구려 옥기현, 고려 서화현

삼령현 - 고구려 삼현현, 고려 방산현

낭천군 - 고구려 생천현, 고려 낭천현

대양군 - 고구려 대양관군, 고려 장양군

수천현 - 고구려 수생천현, 고려 화천현

문등현 - 고구려 문현현, 고려 문등현

익성군 - 고구려 모성군, 고려 금성군

기성군 - 고구려 동사홀군, 고려 기성현

통구현 - 고구려 수입현, 고려 통구현

연성군 - 고구려 각연성군, 고려 교주

단송현 - 고구려 적목진, 고려 남곡현

질운현 - 고구려 관술현, 고려 미상

희령현 - 고구려 저수현현, 고려 미상

삭정군 - 고구려 비열홀군, 고려 등주

서곡현 - 고구려 원곡현, 고려 서곡현

난산현 - 고구려 석달현, 고려 미상

상음현 - 고구려 살한현, 고려 상음현

청산현 - 고구려 가지달현, 고려 문산현

익계현 - 고구려 익곡현, 고려 익계현

정천군 - 고구려 정천군, 고려 용주

산산현 - 고구려 매시달현, 고려 미상

송산현 - 고구려 미살달현, 고려 미상

유거현 - 고구려 동허현, 고려 미상

삭주는 강원 영서지역과 경기 충청지역의 일부를 그 관할권 아래 두고 있었다. 9주 군현이 직관을 보면 주의 장관인 도독 밑에는 보좌관으로 주조와 장사가 각기 1인씩 있었다. 군현에는 각각 태수와 소수, 현령이 각각 1인씩 배치되어 있었으며 주에 대한 감찰사의 역할을 담당한 외사정이 9주에 각 2인씩, 115군에 각 1인씩 배치되어 있었다.

주에는 군주 외에도 당주와 도사가 있어 이들이 지방민을 직접 통치하였다. 이들의 역할은 지방민으로 편성된 군의 통솔과 지방민을 동원하거나 징제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삼국통일후 군주직은 도독과 총관으로 분화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당주는 하급 군관직과 군태수로 분화되고 도사는 현령으로 개칭되었다. 이로써 도독 - 군태수 - 현령의 지방관체제와 행정구역이 확정되었다. 신라에는 지증왕대부터 시작된 5소경제가 있다. 5소경은 금관소경, 중원소경, 북원소경, 서원소경, 남원소경인데 이 가운데 북원소경은 강원도 원주이다. 신라의 5소경은 행정구역의 의미보다는 정치 문화적 필요에 의해서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통일후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로 하고 그 예하를 9주로 정비하였는데 여기에 특수 행정구역인 5개의 소경을 설치하여 신라의 전국 행정구역을 흔히 9주 5소경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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