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VR AR & MR

1) 예맥의 개념과 변천

예맥은 한과 더불어 고대중국의 사서에서 우리 민족의 종족 명칭으로 불려져 왔다. 『사기』와『한서』에 이르기까지는 주로 만주지역에 있었던 우리 민족종족 명칭의 하나로 불려져 왔으나 부여와 고구려가 강성하여지자 이들의 구성체가 된 예맥은『삼국지』『후한서』에 이르러서는 만주지역에 거주하던 이들의 일지파가 남쪽으로 이동한 동해안 지역의 예국과 춘천지역의 맥국을 지칭하게 된다. 이 예맥은『한서』『삼국지』『후한서』에 이르면 예와 맥으로 단칭 혹은 예맥으로 연칭 되기도 하여 혼동을 주기도 하나. 주로 예는 부여의 구성체로, 맥은 고구려의 구성체로 파악된다.

'예'자의 현재 한국음은 '예'이나, 본래는 '세'음이었을 것이다. '세'자의 한국음은 '세'또는 '셰'이고, 일본의 한음 오음이 무두'セイ'이고 관용음이'サイ'이다. 따라서 '예'자의 본래 음이 '세'자의 음인 '세'에 가가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는 고어에 '새'로 음전되었으며 동.신.서.사 등으로 표기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강릉조에 "강릉 대도호부는 본래 예의 옛나라이다. 혹은 철국이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 19년 병신에 동원경이라 이름하였다."고 되어 있다. 예를 철국이라 한 것은 철의 훈이 '쇠' '서' 이기 대문이고, 고려 태조대에 이것을 '동원경'이라고 한 것은 '도원'이 '서벌' 이기 때문이다. '철'자가 '시'의 차자인 예로는 동서 철원조에 "철원도호부는 원래 고구려의 철원군이다. 신라가 철성군이라 고치고, 고려 태조가 철원을 고쳐서 동주라 하였다." 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철원을 동주라고 한 것은 물론 동의 훈이 '서'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예'는 '세'의 음부를 가져 '세'음의 한자 표기였을 것으로 보이며'세'는 동의 고어이니. 이는 해뜨는 동쪽을 향해 이동해 오변서 태양숭배사상을 갖게 된 우리 민족과 연결된다.

주국측 문헌에 맥의 다른 지칭으로는 '박', '발' 이 있다. '박'자는 중국상고음으로 어떤 음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우리음으로는 '박'이다. 우리나라 한자음은 중국상고음에 상당히 가까우므로 '박'의 중국 상고음은 '박'에 가까운 음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기와 춘추에서 맥을 지칭하는 '발'과 같은 것으로 '발(發)'은 '발'의 차자(借字)이다. '맥'의 중국상고음은 음부인 '백(百)'의 음'백'또는 '박'이었을 것이다. 일직이 양주동도 '맥'을 '부여', '발' '백'등과 같이'ꑁ'의 차자로 본 바 있다. 따라서 맥을 나타내는 '박' '발'은 맥과 더불어 '밝음'을 나타내는 우리말로서 이들이 고대에 태양숭배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흔적을 보여 준다.

주대에 중국의 북방에 있던 예와 맥은 전국시대에 연이 가성하여지자 요동을 포함한 동북지방으로 이동하여 부여(예)와 고구려(맥)로 성장하게 된다. 맥은 이미 B.C.4세기에 중국의 북방에서 조세제도를 갖춘 맥국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시대 연의 강성과 요동 진출(B.C. 3세기), 진시황(B.C. 247-B.C.210)의 역, 고조선 왕실의 교체와 멸망, 한군현의 설치 등은 만주지역의 예맥족을 이동하게 한다. 이 만주지역의 예의 지파가 강릉을 중심한 동해안지역을 남하한 것이 동예 즉 강릉의 예이고, 맥의 지파가 춘천지역으로 남하한 것이 춘천 맥국이다.



2) 춘천 맥국설과 강원 예맥설

지금까지의 기록에는 춘천은 옛 맥국, 강릉은 옛 예국으로 전해오며 강릉 예국과 춘천 맥국을 합쳐 강원도를 옛 예맥의 땅으로 보아 왔다.

춘천이 신라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는 선덕왕 6년(637년) 이전 춘천의 고대사회에 관하여는 춘천이 맥국의 고지인가 아닌가를 증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한반도 내에서의 맥의 명칭은 고려시대에 쓰여진 삼국사기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가탐의 고금군국지를 인용하여 "고구려의 남동쪽 예의 서쪽이 옛 맥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이 삭주이며 선덕왕 6년에 우수주로 하여 군주를 두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삭주는 지금의 춘천이다.

또한 삼국유사는 "명주는 옛 예국인데 야인이 밭을 갈다가 예왕인을 얻어 바쳤으며 또한 춘주는 옛 우수주로 옛맥국인데 혹 지금의 삭주를 맥국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평양성을 맥국이라 하기도 한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삼국유사는 지금의 강릉을 예국, 춘천을 맥국으로 보고 있으면서 맥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가탐이 생존했던 당시의 삭주설과 평양성설을 첨가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생존했던 당시의 삭주는 평안북도 삭주이다 일연은 고금군국지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개금신라북삭주'를 삼국사기를 찬할 당시의 삭주로 잘못 보고 해석한 때문이다. 삼국사기지리지의 삭주는 삼국사기를 찬할 당시의 삭주가 아니라 가탐이 고굼군국지를 찬할 당시의 삭주인 것이다.

또한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라고 한 것은 고구려인의 주 구성체가 맥족이었으므로 고구려 초기까지 고구려를 맥이라 불렀기 때문에 일여닝 만주 지역 맥족의 한 지파가 춘천 지역을 내려와 성립한 춘천 맥국과 혼동하였다고 생각된다.

이어 고려사 지리지 역시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이 춘천을 맥국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는 춘천을 맥국으로 보는 출처를 밝히고 있지 않다. 이는 고려사가 삼국사기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후 조선시대의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은 삼국사기와 교려사를 답습하여 춘천을 맥국으로 비정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조선시대의 사서와 지리지는 모두 춘천을 맥의 고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측 사서로는 삼국사기가 춘천을 매국의 고지로 비정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서이다. 삼국사기가 인용하고 있는 가장 원사료인 가탐의 고금군국지는 지금까지 그 사료적 가치를 놓이 인정받고 있는 역사지리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김정암은 그의 중국사학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탐(賈耽)의 지리학은 다만 도(圖)의 제법(製法)만을 구심(究心)한 것이 아니라 연혁(沿革)에 극히 주의 하였으며 고군국을 검게 제하고 지금 주현을 붉게 제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바뀜이 없다. 그가 찬(撰)한 '고금군국현도 사이술(古今郡國懸道 四夷述)'은 고금을 모두 갖추고 있고 인혁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방총지의 선본이라 할 수 있다.

수대관찬인 '구우도지(區宇圖地)' 당 위왕태가 그 부료에 명하여 합찬한 괄지지를 더욱 중요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는 지리연혁학을 연 인물이다."

위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가탐의 고금군국지는 그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만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내의 맥에 관한 기록이 희박한 것은 맥의 일지파가 춘천에서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고립된 춘천지방의 입지적 조건이 중국측 정사에 수록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후술할 고고학적은 자료와 삼국사기의 기록 및 이 지방에 전해오는 전설 등이 춘천지방에 맥계총의 초기철기시대의 부족국가 형태가 존재했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후술할 자료 및 기록에 의거하녀 고금군국지를 신뢰성있는 사료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춘천맥국설과 관계되는 것으로 조선시대 이후 호칭되어 온 가원예맥설이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 간행된 강원도에 관한 대다수 간행물은 강원도를 예맥의 땅으로 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은 다같이 "강원도본예맥지지"라 하여 강원도를 본래 예맥의 땅으로 보았다. 물론 이것은 강원도가 행정구역으로 등장한 조선 태조 3년 이후의 일이다. 강원예맥설의 근거는 삼국사기에서 강릉을 예국의 고지(故地)로 보고 춘천을 맥국의 고지로 본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삼국사기 지리지 명주(강릉)조는 역시 가탐의 고금군국지를 인용하여 "지금 신라의 북쪽인 명주는 모두 예의 고국인데 전사는 부여로서 예지가 되었다 함은 잘못"이라고 하여 강릉을 예국을 보고 있다.

위 삼국사기가 인용하고 있는 전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여가 예의 땅이라고 함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전사 이하의 내용은 고금군국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김부식 등 삼국사기 찬자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김부식 등 찬자(撰者)는 남만주에 있던 예(濊)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는 오직 한반도내의 동해안예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와 후한서 이후 혼동되기 시작한 예맥(濊貊)의 개념이 삼국사기에 이르러서는 예는 오직 동해안 예만을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강원예맥설은 강릉과 춘천이 강원도에 있으므로 이 강릉의 예와 춘천의 맥을 합하여 강원도를 예맥의 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당시 삼척과 원주지역은 삼한의 땅으로 보아 강원도 전체를 예맥을 볼 수 없다고 본다. 삼척은 삼국사기에 실직국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 연맹관계를 볼 때 진한(辰韓)계통으로 보여진다. 원주는 남한강 유역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 지역적인 면에서 마한(馬韓)계통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원주에서는 북방식지석묘(북(北方式支石墓)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원주가 북방계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예맥의 연칭은 강릉예와 춘천맥의 연맹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이 연맹관계의 여부는 앞으로 더 많은 고고학적인 성과에 의하여 규명되어질 것이다.





강원예맥설 역시 가탐(賈眈)의 고금군국지에서 춘천을 맥국으로 비정한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조 3년 이후 강원도가 행정구역명이 되면서 강릉예국, 춘천맥국에 근거하여 조선시대 이후 통념화된 강원예맥설은 강원도 전체를 비정하고 있다.

360 VR AR & M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