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혜 영: 한림대학교 국문학과 재학(95학번).



어머니 3

▷ 유 혜 영 ◁

밥상이 가난하다
콩나물 국, 말라버린 오징어 젓갈, 쉬어버린 달랑무
어머니의 손끝은 내 밥그릇 주변으로 이들을 모아주지만
젓가락 두 개는 간신히 밥알만 끌어올린다

계란 하나 부쳐줄까,
아니요

밥상은 둥글기만 한데
밥상은 둥글기만 한데
어머니와 밥을 먹을 때면
내 마음엔 각이 진다



























토마토를 먹다가

▷ 유 혜 영 ◁

토마토를 한 입 물컹 베어 물면
그 속의 살이며 피 같은
모든 것들이
허물어지며 쏟아진다

꼭, 헐어있는 가슴에서 토해지는 울음 같다

이 주먹만한 아픔 덩어리
씹혀지질 않는다.

































비 오던 날의 점심

▷ 유 혜 영 ◁

점심에 먹은 갈치구이가 가시되어
위 속에 걸렸나 보다
뱃속이 꿈틀거려 더 이상 편히 있지 못해
변기 위에 앉았다
다시 가시에 살이 붙어 기다란 갈치 한 마리
위 속에서 살아나는 걸까
내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
그 아늑한 바다품을 잊지 못해서 일까

화장실 변기 물을 푸른 바다로 보내본다
그리움에 야위어 늘어진
갈치를 위해.






























연필을 깎을 때마다

▷ 유 혜 영 ◁

칼끝이 닿을 때마다 얇게 벗겨지는 나무의 부끄러운 살갗
아, 그건 내게 生膜이 찢겨지는 쓰라림으로 다가왔는데
무심한 그의 손끝은 연필 깎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앞에서 깎던, 흉한 몰골로 감춰지던 내 연필

어느새, 날카로운 黑心이 드러난 그의 연필
그 뾰족한 心 끝에 찔릴까
난 언제나 불안한 연필을 깎았던 것일까

연필을 깎을 때마다
깎이는 心































포장마차

▷ 유 혜 영 ◁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 이 끈질김 닮은 꼼장어
한 마리 조바심에 타들어가고 며칠 묵어 퉁퉁 불은
울음덩어리 우동 국물 속에 쏟아버린다 후우, 작게
내쉬는 한숨 소리 저 구석 소주병들 위에 차곡히 쌓
이고 안개 속처럼 뿌연 국수가닥들 정신없이 엉킬 때
면 아, 걷던 발목 잡아두던 춘천의 밤안개가 미치도록.




































젊음, 그 설익은 날들

▷ 유 혜 영 ◁

딸기, 바나나, 사과, 배, 키위, 참외, 수박, 감... 한창
물오른 것들과 아직 철도 안된 것들이 버젓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과일안주 꽃샘 추위로 차가워진 맥주
를 옆에 끼고 콕콕 포크로 그들을 찍어대는, 딸기처
럼 달어오른 나는 유독 감만을 집어내질 못하고 있다
접시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철 안든 감 감이 잡히질
않는다 삶에 대한 감 아, 감이 익는 가을이 오면 콕콕
집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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