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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병 순: 한림대학교 사학과 졸업(93학번).



저녁놀에서의 시 낭송


파도

─ 烏耳島에서 1

▷ 윤 병 순 ◁

烏耳島, 매캐한 새벽을 좇아
갯벌 가득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채우며 다가온다

닿을 듯 말 듯 닿을 듯 말……
시나브로
그는 이미 온몸의 세포들을 자극한다,
뻔히 그리될 것을, 고양이 새끼마냥
조금 피해보려는 종종걸음은
오히려 그를 향한 몸짓이 되고

잠시, 그는 몇 마디 나눌 새도 없이
알지 못하는 사이 멀어져 달아나고
졸렬하고 성급해진 나는
기다리다 지친 망부석 흉내를 내려는 듯

갯벌에 홀로 앉은 황새바위만 치어다 본다.





















빈 선창
─ 烏耳島에서 2

▷ 윤 병 순 ◁

언제부터
길게 뻗은 팔만 빈 손짓
멀리 수평선 너머
막내 아들 보내던 일도
이제는 헤아리지도 못하게 까마득한 날

저 다리 너머
낯익은 소리
반가운 돛은 보이지 않고
허허로이 비인 갯벌만 남아

그래, 아직 물이 들지 않아
오지 못하는 게야
이제 곧 물이 들고
왁자한 사람들 모여들면
낯익은 소리 들릴 게야

언제부터
길게 뻗은 팔만 빈 손짓
하릴없는 파도만 시린 손끝에 닿는다.





















여명
─ 烏耳島에서 3

▷ 윤 병 순 ◁

조양화학 한국화약 조일제지……
시화, 방조제 저 너머로
캇캇한 바람이 다가온다

하늘은
어둠의 시간을 지배했던
검은 연기로 흐려 있고
바람은
밭은 숨을 내쉬며 달려온
방조제 바위에 부서지는 은빛기포를 발라먹고
이내 죽어간다

그 사이 바다는 아릿한 파도 소리




























壽衣

▷ 윤 병 순 ◁

사람들은 말한다
알몸으로 태어난 인생
옷 한 벌만 가져가면 된다고

그렇다면 인생은 옷 한 벌
나는 이미 성공한 사내
남들은 평생 걸려 딱 한 벌 얻을 것을
그새 두 벌이나 얻었다

얼룩무늬 푸른 壽衣
시장 가서 산 것도 아니고
어느 돈 많은 집 마나님 생전에처럼
미리 맞춘 것도 아니고
고생한다고 한 벌도 아닌 두 벌이나
미리 얻었으니
내 인생 이미 행복하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을 수지 맞는 장사라고.























우물

▷ 윤 병 순 ◁

갈까보다
우리님 계신 곳
그곳으로 갈까보다.

고드름 얼어박힌 가슴
거짓말처럼 녹아들어
아침이면 한 삽 두 삽 땅을 파고
저녁이면 주먹돌 호박돌 가지런히 쌓아올려
우물 하나 만들더니,
몇 번 길어보기도 전
두레박마저 가져가버린
우리님

누군가 목을 적실
두레박은 남길 처사
아무도 찾지 않아 이제는 말라버릴
내 우물,
한 번 두 번 담아가 마르지 않게 할
두레박 있는 곳
그곳으로 갈까보다.






















항아리

▷ 윤 병 순 ◁

작은아버지는 담배 한 대 피우려도
베란다로 내몰린다

베란다엔 그래도 의자 하나
위로하러 나오시는 작은어머니를 위해
의자 또 하나 그리고, 구석진 모퉁이에
텅 빈 항아리 둘

몇 해 전
외딴 섬 고향 떠나 낯선 도시로 이사하던 날
돌아돌아 보시던 작은어머니
급한 몸짓으로 달려가
조그마한 항아리 둘을 꼬옥 껴안으셨다

뒤안을 따라
기다란 장독대 위로 가지런히 줄지어 앉아
유난하셨던 시어머니
몰래몰래 찍어내던 눈물 자국도
첫 아들 낳으시곤 자신도 모르던 미소, 그 자랑참도
아침 저녁 물걸레질로 배인 사랑

조그마한 과일가게일
하루종일 사과박스, 배박스에
팔다리가 빠질 듯 아파와도
집에 와 저녁이면
작은아버지를 내몰곤 얼른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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