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 애: 한림대학교 국문학과 재학(96학번).



어머니

― 집詩 6

▷ 이 영 애 ◁

돌아본다,
내가 떠나온 집
아직도 건재한지를...

매일 밤 눈을 감을 때마다
가장 편하게 잘 수 있었던,
그 곳
지금쯤 어디 있을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로 집을 떠날 때,
집은 방을 늘려 위대해지고
나는 집을 나와 새로워졌다.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을까?
내 목숨만한 집
눈물처럼 짠 물과 살갗처럼 여린 벽으로
이루어진 집

벽에 기대 가만히 들어보면
체온처럼 따뜻한 피가 흐르던
소 리
귀 기울이려 자꾸 눈 감아야 했던
내가 머물던 방

그 모든 것이 나를 닮아서
사무친 그리움에 눈물 흘리던
처마 끝의 시간
터졌을 때,

나는 파도와 같이 밀려 여기까지 왔다.







손톱

▷ 이 영 애 ◁

손톱이 자란다.
잘라버려도,

손톱 밑에는
손톱, 그 밑에 또 손톱
생활을 막아서며 줄기차게 자란다.

날씨가 스산하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의 손톱들은 좀더 자라
좁은 손톱 밑에서 파닥인다.

매니큐어 인조손톱은커녕
긴 손톱조차 불편한 나는 손톱을 깎는다.

세상에 익은 눈 부릅뜨고
다 자라 썩은 이까지 앙 물고
손톱을 깎는데,

손 톱

세상 바라보는 창처럼 불투명하고
창에 부딪히는 빗물처럼 강렬하게
손끝에 맺힌다.

“탁”하고
자르면 남의 살처럼 아프지 않지만
모으면 눈물처럼 가슴에 고인다.

어색한 감각으로 가슴 한 번 쓸어내리고
휴지로 닦아낸다.












눈 오는 밤

▷ 이 영 애 ◁

내려간다, 나는,
명멸하는 빛 속으로...

하늘에선 구름이 바람과 부딪히는 소리.
땅에선 車들이 길에 끌리는 소리.

소리에 섞여 내 모습은 깜-빡, 깜-빡
까만 窓에서 녹아 내린다.

차갑게 식어 가는 방안에선
각자 홀로
깊은 잠에 빠져가는 사람, 사람들...

발을 헛디딜 틈도 없이
나는 생각한다,
끝없이 내려가면서

세상은 온통 부딪히는 소리들.
새하얗게
공허가 울리는 轟音으로부터

소리의 파편처럼
떨어진다, 나는, 초조하게

발 디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끝없는 공중을 내려가고 있다.
















변기 위에서

▷ 이 영 애 ◁

너는 하양 물고기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너는 遊泳하던 새

희고 성스러운 자태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을 품고
지상까지 올라왔다.

너는 하양 물고기
헤엄치는 지느러미, 번뜩이는 비늘이 없는
짜고 쓴 소금만을 먹는
너는 편식주의자

나는 너를 올라타야지만 편안해진다.

나는 염세주의자
네게 소금만을 먹이는
허공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나는 허무주의자

너를 떠날 때면 언제나
헛기침을 하고, 가래침을 뱉는
나는 가식주의자

너는 눈물로써 나를 씻는다

















빨래 1

▷ 이 영 애 ◁

밝은 날이다. 바람이 분다.
계절이 바뀌고 꽃들이 자리바꿈을 한다.

나는 빨래를 한다.

봄바람같이 따뜻한 물이 빨래를 적시면,
나는 비누를 뿌리고, 빨래는 싹을 틔운다.
생활을 싸고 헤매던 빨래, 나는 그를 흔들어 깨운다.
한숨을 쉬고 빨래는 꽃처럼 피어난다.
잠들었던 영혼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비튼다.

팽-팽하게 공중을 가르는 빨래줄
위로 나는 빨래를 넌다.
빨래가 피어난 빨래줄 한 자는 낮아져 있다.
내 삶의 무게도 한 자는 낮아져 있다.

만발한 빨래 위로 햇살이 눈부셔
나는 잠시 주저앉았다.
새들이 자꾸 머리 위를 날고,
나는 공중에 주저앉아 버린 빨래
앞에 주저앉아 있다.

빨래에선 뚝뚝 물이 떨어져
시멘트가 덮인 바닥에 하늘이 열렸다.
마르면 닫히고 떨어지면 다시 열렸다.

마당을 엿보며 떠돌던 구름도
내 작은 마당에 들어와 잠겼다.














빨래 2

▷ 이 영 애 ◁

다시 한 번 입혀지기 위해
세탁된 빨래들
빨래줄 위에 맥없이 늘어섰구나.

제각기 삶에 바쁜 여덟 식구
다 나가고 빈 집에는
부화한 껍질 같은 빨래만
어지러이 걸려있구나.

지하 전세방안
고여있는 정적 위에
어둠 같은 빨래들
손짓처럼 허공을 휘젓네.

거친 세탁기의 회전판 위에서
낡아가는 빨래처럼
우리는 또 얼마나 돌아가야 하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태어나야지 생각할 때마다
소매 끝이, 바지 단이, 목 언저리가
자꾸 낡아가는 것만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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