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자: 한림대학교 국문학과 졸업(93학번).

1998년 7월 현대시학으로 등단.



섬·詩

▷ 이 인 자 ◁

잔뼈처럼 널부러진 산호초 모래섬

누가 이 많은 뼈들을 낳았는지,

아름다운 잔뼈들, 수십 길로 펼쳐져

공룡이 낳은 뼈일까?

중생대 고생대를 거듭 올라가도

풀리지 않을 신비 곁에 두고

뼈없이, 철없이 출렁이는 무척추 바다

곰곰이 한참을 거닐다,

꺼억 꺽-

해녀들의 숨비소리

흰 떡가래로 뽑아내다 사라지는 시간,

바다도 슬쩍 몸을 빼며 밀려갈 때

한 줌 더 늘어난

물기 젖은 산호초 모래알.

바다가 뼈를 낳았어,

속도 뼈도 없이 출렁이는 바다가

뼈를 낳았다고 중얼거리다

그만,

에덴의 동산에서 훔쳐온 갈비뼈 한 대

아직도 돌려주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몸이 부끄러웠다.








바다 위에 떠오른 해녀가 참고 있던 숨을 내쉬는 소리.



문예창작론 시간

▷ 이 인 자 ◁

나의 문예창작론 시간은

춘천시 옥천동 강의실

학점은 왕소금

춘천 터줏대감 선생님들 모셔 놓고

수강생들, 숱많은 머리카락

드문 드문 새치처럼 희끄무레 앉아

대뜸, 시 잘 쓰는 道가 따로 있는지

더벅머리 학생의 시껍잖은 질문에

봉의산 선생님

아 글쎄?하시며 산등성이

꼭 닮은 긴 물음표로

이리 저리 내빼시고

멀리 소양강 선생님

첫 시간 첫 수업

첫 숟가락에 어디 배부르랴시며

잔잔한 말줄임표로 말끝만 흐리는데

저기, 띄엄 띄엄 쉼표 찍으시는

구름 선생님

쉬엄 쉬엄 생각해도

늦지않는데 왜 그리 서두르냐고

채근하시는 사이

아뿔싸 봄, 제비선생님

맑은 물똥 느낌표처럼 흘리면서

내일부터 마음으로 느낄 줄 모르는 놈은

아예 들어오지 말라시며

따뜻한 남쪽 오시다가 한 말씀 툭 던지시는

문예창작론 시간, 첫 수업

오늘은 이만

땡 땡









내 발바닥에는 나이테가 있다.

▷ 이 인 자 ◁

도둑 고양이 발 저리도록 잠을 자는

이젠 나도 그만 잘까하는 시간

버선짝처럼 버려진 맨발을 씻다,

그만 나무토막처럼 잡혀지는

발바닥 굳은 살들을 본다.

앗!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나무의 나이테하고 꼭 빼닮았는데

언제부터 나의 딱딱해진 발바닥은

한 줄 두 줄 나이테를 만들어

세월의 기록들을 남겼던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은 나무의 밑둥처럼

언제나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나의 발바닥은

몸뚱아리 가장 낮은 그곳에서

습기와 어둠 속에 홀로 싸우며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왔는지

이제야 알았다.

나의 발바닥에는

참고 살아온 忍苦의 세월만큼

그 기록들이 남겨지고 있다는 것을

세월의 나이테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북경반점

▷ 이 인 자 ◁

울면으로 주세요.

북경반점 한 모퉁이에

울적 울적 앉아, 기다린다.

누군가 내 빈 마음에

하루종일 나무젓가락질 하듯

휘젓고 사라진 날.

눈물샘으로 끓였는지

울고 있네.

퉁퉁 불어버린 울면 한 그릇

나무젓가락으로 한 입

쭉- 뽑아들면

울먹이며 아우성치는 면발들

언젠가 나도 저런 울면 같은 여자였을까?

세상의 한 끄트머리에 서서

한쪽 세상을 부여잡으며

울며 불며 매달리는 울면 같은 여자

이럴 땐 매정하게 떼어놓는 게

약이고, 사랑이라고

울지마 -

우는 여자 딱 질색이라니까

우는 면발 한꺼풀 잠잠해진,

북경반점 울면 한 그릇.
















수제비태껸

▷ 이 인 자 ◁

수제비가 자시고 싶다던 할머니

한때는 쫄깃쫄깃하셨을 젊은 시절

질리도록 잡수셨을 풀때기 뭐가 그리 맛나실까?

바나나 껍질을 밟으시고는

품에 안았던 손녀딸 다칠세라

엉덩방아에 허리까지 삐끗하셨다는

그 말씀,

지금에서야 효도 반푼어치는 해야겠다 싶어

수제비 반죽 처음으로 시작하는데,

내 그럴 줄 알았다.

자고로 수제비 반죽은 이 할미 겨드랑이살 같이

흐물렁 흐물렁 해야 제 맛이 나는데

스물댓살 처녀살처럼 탱탱하기만 하니

이 할미 겨드랑이살 만져보고

다시 반죽하라 하신다.

할머니 살이라도 뭐 별다를까 싶어

숭늉처럼 무덤덤히 잡아본 살가죽

일흔 여섯 세월까지

후루루룩, 흘러내린다.

에이, 할머니도

아직 뭐,

탱탱한 칼국수 반죽이시구만

하는 버르장머리없는 수제비 태껸에

요년 봐라!

이 할미 놀려먹는 입반죽 하나는

납죽 납죽- 잘 맞추는구나.








수제비태껸 : 어른에게 버릇없이 내던지는 말




퇴근길

▷ 이 인 자 ◁

강물도 월급쟁이였나?

숯댕이 같은 저녁, 저 강물도

투명한 겨울 햇빛에 하루종일

새까맣게 그을려

온종일 속 태운 내 가슴과

어쩜 저렇게 꼭 빼다 박았는지

그래, 오늘 하루

또 무슨 일 있었니?

이 사람 저 사람 부대낀 부대찌개였니?

이 마음 저 마음 섞어 끓인 섞어찌개였니?

직장 월급쟁이 생활

아직도 흰 띠쯤 허리에 매고

허구헌날 노란 띠, 검은 띠에 채여 사는데

뭐 재미있는 일 있겠니?하며

다 알아, 말로 안해도 다 안다는

강물의 以心傳心

잠실철교 아래 흐르고

강물 저, 멀리서

수은등도 글썽글썽 불빛으로

오늘도 내일도

무사히 안녕 안녕 인사를 하는데

오늘따라 이 모든게

서글픈 월급쟁이처럼 보이는

퇴근길,

어느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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