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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최 윤 선


진심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벌거숭이로 울고 싶을 때
시는 내게,
부끄러움도 모르는
아이의 눈물이 된다.

◈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재학(97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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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인생을 위하여


성찬의 식탁에 앉아
일말의 감사하는 기색도 없이 젓가락만 째각대는
배부른 TV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며
김치뿐인 밥상의 숟가락질이
굶주린 개처럼 걸어진다.

다음 세상에선 차라리
개로 태어났으면!

개에게 밥은 단지 밥일 뿐이다.
게에게 모든 밥은 평등하다.
그릇에 담겼거나 쓰레기통에 들었거나
차별하지 않고,
차려먹지 않고,
섬기지 않고,
그저 먹는다.
씩씩하게 주워 먹고, 얻어 먹고
밥으로 삶을 치장하지 않고,
그래서 밥 때문에 주눅 들지 않는다.

개처럼 떠돌며,
개처럼 죽어 뼈와 살과 가죽을
布施할 수 있다면!

개 같은 인생은 축복이다.



보시(布施): 깨끗한 마음으로 법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사람에게 베품.








화장실에


화장실에 앉아 아랫배에 힘주며
살기 위해 먹은 것처럼
살기 위해 배설한다.
밥그릇을 비우듯 내장을 비우며
나의 삶도 이렇게 비워지길 기도한다.
밥은 오물이 되어 몸밖으로 흐를 때
뼈와 살을 만들고
미래는 과거가 지워지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사라지는 모든 것에서 새 것이 태어난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화장실에서.








뒷모습


헤어질 때야 비로소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힘주어 손아귀를 잡고 반갑다며 환히 웃던,
쉴새없이 큰 소리로 얘기하던
그의 뒷모습은
너무나 작고
조용했다.
숨겨둔 일기장을 훔쳐 본 것처럼
괜스레 미안해 고개를 돌렸을 때
마주 앉았던 시간들이
구멍 난 봉지에 모래처럼
발 밑으로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거리를 메운 무수한 말 줄임표들
………
등돌린 뒷모습이
까만 멍처럼
눈에 와 박혔다.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소리는 들리는데
술래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얼굴도 없는 무의식에 쫓겨
이부자리를 땀으로 적신 밤이면
내가 술래는 아닌 듯한데
눈을 부릅뜨고 머리 속이며, 가슴 속이며
통통하게 영근 말이 있나 뒤지고 다닐 때면
나는 영락없이 술래가 된다.
오늘처럼 비 내리고 궂은 날이면
고놈의 발 없는 말은 더욱 발빠르게
내 뒤통수를 때리곤 도망을 쳐
나는 지치도록 그놈이 숨은 자리를 찾으러 다녀야 한다.

‘잡히기만 해봐라, 이놈. 종이에 커다랗게 박제를 해줄 테다’








나의 사랑


너는 결국 나에게
사랑이었다

낮도 밤 같던 시절
훤히 눈 뜨고도 악몽에 내둘리던 그 때

술이 되어 주고
노래가 되어 주고
혼자 걷는 어둔 골목길
묵묵히 뒤따르는 발자국이 되어 주던

너는 결국 사랑이었다

얼음칼 같던 不忘의 마음
물기도 없이 조용히 녹이고
들어찬 너의 햇빛

이제야 너를 향해
가느다란 팔을 뻗고
이제야 너를 마주 보는
나는 새순 피우는
봄기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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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 시에게


바다 밑에 거대한 뿌리를 두고,
물에서 삶을 건지는 해녀의
꿈 속에서
꽃이 피는 이어도가
시푸른 바다 남쪽
어딘가에 있다

숨가쁜 자맥질을 수백 번
거듭해도 어쩌면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지 않을지
몰라

하지만 그리움 없이는
두려운 바다를 살아낼 수 없어
이어도 꽃피는 계절을 기다리며
날마다 목마른
물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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