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문화상' 부문중 詩 부문 당선작


1985년부터 시작된 한림대학교 '한림문화상' 부문중 詩 부문 당선작을 소개하며 아울러 당선자의 과, 학년은 그해 연도 한림학보에 기재된 그대로 실었음을 밝혀둔다.
(단, 1989, 90, 93년 5, 6, 10회 당선작 없음)...자료정리 by 유혜영

1985. 10. 26. (제 1회)



목각인형
- 박창원 <사학.3>


어제는
종일토록 외로웠다.
땅끝을 말아올리는 눈발의 소용돌이
종일토록 처마 끝에 마주 앉아
스무한 해 굳은 등뼈 깍으면
시리게 도지는 신경들의 반란
침묵으로 다스리는 고통
살점을 저미는 칼끝마다 신경 돋아
가벼운 경련으로 배반하는,
오후 내내 바람은 담장을 넘나들며
눈을 져다 나르고
떨어져 나간 骨片들은 하나씩
낯선 얼굴로 솟구치는
눈발따라 살아난다.
이윽고 지친 눈발 업드리고
소리없이 덮친 어둠의 덫에 갇혀
굽은 어깨로 일어서면
나를 향해 다가서는
낯선 사내를 만난다.
종일토록 깎아내던 나의 영혼 닮은
木刻人形
활처럼 휜 어깨 위
소리없이 내려앉는...















1986. 11. 15 (가작)



한방울의 시간
- 송종관 <국어국문학과.1>


밤을 새워 눈을 빗으면
전혀 다른 눈물이 내린다. 가슴에 구멍이
아주 조금 뚫렸다. 너무 작아서 끝이 보일 지경이다.
편지를 썼다. 날 기억해주기 바란다는
사연을 접어 미련을 마쳤다. 젊은 시간은
추억의 곱셈이다. 거미줄에 별이 걸렸다.
거미는 독을 뿜어 대면서 어쩔줄 몰라했다.
쥐가 긴다. 세상은 그들의 것이다. 바람은
밤의 순수에 흡족하다가도 바람이 멈추길
바라는 세상에선 가슴을 감춘다. 대신
스쳐지나감을 뿌린다. 추운 모양이다.
아무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심장은 언제나
바스락거린다. 肝만이 피를 연기로 날릴 줄 안다.
하얀게 눈 만은 아니다. 그러면 지금 세월은
눈이다. 올겨울엔 까만 눈이 내릴 것이다.
누군가 날 보고 있다. 눈을 감았다.
눈물속에 내가 있었다.





















1987. 11. 19 (가작)



석수장이
- 이소영 <식품영양학과.1>


푸른 새가 날아 오른다
여린 부리로
돌을 열고 날아 오른다.

지금 천막그늘 밑에서
새를 닮아가는 젊은 사내가
땀방울 떨구며
돌의 뼈를 깨뜨려서
뜨겁고 선명한 혈관과
자유로운 영혼과
환호하며 일어서는 돌의 맥박
소리를
열어주고 있다.

어둔 밤 그의 곁에 다가오는
머언 태고적 고통,
금방이라도 산 속으로 뛰어갈 듯
어둠에 갇힌 형상들을
몰아내고 있다.

말 없이 돌 쪼는 정소리에
푸른 새가 날아 오른다
짐승들이 뛰어간다
석수장이가 날아 오른다.














1988. 11. 4



불가사리
- 신정복 <국어국문학과.4>


바람은 모래를 타고
아이는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 작은 兵丁들

兵丁들은
시방 곱게 잠든
先天性 脫關節炎

절름발이 아이의
꿈 속으로 들어가

소리없이
은하수 타고

여름볕에 말라버린 꿈들을
星城으로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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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12. 19



도시의 悲歌
- 홍석호 <국어국문학과.4>


1
서늘한 가을 오후!
수 천년 전 먼지와 재로 덮여진
공룡의 흰 턱뼈를 씻어냈을
빗물이 내리고 있다.

빗물은 역사를 알고 있다.
지층의 균열과 신생대를 거쳐
진화하는 동안 빗물은
똑똑히 보았다.

굶주린 인간은 낙엽처럼
거리를 뒹굴고
어김없이 겨울은
거칠은 푸념이 되어
쏟아지는 것을.

2
흰천장! 검은전등! 5개의 노랗고 딱딱한
불빛을 토해낸다.
오후의 실내는
방송중이다.

엉덩이를 안은 비닐커버의 휴식!
입에문 사탕의 달콤한 타액!
감동적인 "once upon a time in America"
포장된 행복에 나는
잠이 쏟아진다.
잠이 쏟아진다.

1991년 서울의 먹물빛 하늘에
감시의 그늘은
검은 장막처럼 덮여져 있고
여전히 빗물은
도시를 적시고 있다.



1992. 12. 4



거울을 보며
- 강하구 <국어국문학과.4>


바람이 분다.
낙엽 하나가 발 밑에서 웅얼거리며 굴러간다.

한 해 만큼의 젊음이 낙엽과 함께 굴러간다.

거울을 보면 낯선 얼굴 하나가 나를 본다.
아무리 짜맞추려해도 맞지 않는
한 귀퉁이 모자란 조각을 찾을 수 없어
낭패한 낯선 얼굴 하나가 쳐다 보고 있다.
그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조각을 찾지 못한 텅 빈 가슴을,
출출세와 욕정의 한 자락을 아둥거리며 움켜 쥔
그 더러운 손을 차마 볼 수가 없다.

그 거울을 깰 수는 없다.
낭패한 낯선 얼굴을 부정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는다면,
그 얼굴에 조그만 미소라도 지을 수 있다면,

바람이 분다.
낙엽이 굴러 간 자리를 쫓아
바람을 타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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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1. 22



어린왕자를 생각하다.
- 김장환 <사학과.4>


해가 저무는 시간대에 어린왕자를 생각했던 시절,
있어지라 의자를 자꾸만 뒤로 뒤로 해서
하루에 열두번도 석양을 즐긴다던
어린왕자, 그 녀석을 생각했던 시절
있었지라 길가다 잘가꾸어 놓은 화단
가시 속에서 핀 장미를 볼 참이면 어린왕자를
생각했었지라 떼거리를 써 겨우 동물원에 가서도
여우보고 어린왕자를 생각했었지라
생떽쥐베리가 후레쉬베리보다 좋았던 시절,
그 푸르기만 했던 시절 있었지라
밤하늘 촘촘히 박혀 빛나던 은하수 사이에서
B혹성 612호를 찾으며 순수를 생각했던 그 시절,
솜사탕이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후,
후레쉬베리가 생떽쥐베리보다 중요하다고,
여우를 보면 여우목도리를
장미를 보면 장미꽃값을
석양을 보면 빈주머니를
이적도 어린왕자를 생각하고 싶은디
고게 참 요상시럽데요. 자꾸만 자꾸만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주머니 속 잔돈만
속셈하면서 밤하늘의 은하수가 내 머리 위에
쏟아지는 다이야였음 싶은게
이적도 이적도 어린왕자를 생각하고 싶은디....















1996. 1. 26



논술고사
- 신지연 <국어국문학과.3>


신생대 제4기 가장 특징적인 생물로는 無毛類를 들 수 있다(학자들에 따
라 이 생물을 怪足類라고 부르기도 한다). 無毛類는 이 期에 나타나서 지
구 전역에 방대한 분포를 보였다가 이 期 말엽에 완전히 멸종하였으므로
表準化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동물의 수많은 화석에는 개별화석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털이 골격을 중심으로 그 흔적을 보이고 있어 처음에는
다양한 진화를 이룬 것으로 추측하였으나, 모두 다른 동물들의 털을 깍아
그들 자신의 몸에 덧씌웠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실
제 이 동물의 몸에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털이 거의 없는 듯 하다.
지구상에 생물이 나타난 이래 이렇게 짧은 기간동안 이만큼 큰 번성을 이
룬 동물은 없었으며, 이 동물의 멸종이유는 ( )으로 알려졌다.


( )안에 들어갈 학설에 대해 아는대로 쓰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1,000자 내외로 정리하시오.


일정기간 동안 생존해 있었으므로 지질시대의 구분을 가능케 하는 화석





















1997. 1. 22



빨래
- 이종목 <국어국문학과.4>


구름이 무색하게 햇살 아래 팔랑거리는 하얀 와이셔츠
그렇게 널려 있는 빨래를 보면 훔치고 싶다
때로는 그 빨래 아래 무릎 끓고 엎드려 울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부시게 표백해 낸 그 손길이 그립다


점심을 같이한 여자


점심을 같이한 여자
무엇 하나 집어들질 못하는 빈 젓가락질
저며진 수육처럼
가슴 한 자락이 접시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몇 년 만인지 도저히 알 수도 없는
그렇게 멀리 있다 나타나
점심을 같이한 여자


수육 한 점에 소주 몇 잔
가슴을 녹여 낸 찬 소주가 눈으로 흘러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한 여자


한때 풀을 뜯고 사랑도 했을
접시에 담겨진 살덩이들
길길이 날뛰며 이별을 거부했던
연분홍 진달래 꽃잎처럼 놓여진
내 저민 심장을 곰삭은 새우젓에 찍어 씹었다


이름도 불러 보지 못한 채
돌려세워야 했던 마지막 점심을 같이했던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