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1. 5
그해의 기억은 밤나무 아래서 끝나다
-全 商 範



바람의 아들인 내가
처음 바다를 보다 거기서, 더 오랜
세월을 견디다 풍우뇌락의
습곡을 기억하다 지붕이 되어버린 산
나이테 둥근 내 속의 폐가 한채
흑백 티브이 안테나가 서 있고
밑둥만 큰 할아버지
잎새 무성한 칠월의 한때
서사적으로 혹은, 서정적으로
화면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던 세상
내 밖의 허영
독선으로 가득한,
부정해야 할 화면 속의 얼굴들
비로자나불을 닮은 바위 하나
마음 밭머리에 버려져 있고
껍질이 벽 지어 놓은 내 안과 밖의 모순이여
고민으로 깊어지는 밤바다에서
차라리 꽃피는 수부라도 되었더라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밤꽃이 지던 칠월, 처음으로
단막극 세상의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 올랐다
나는 오래 밤나무 그늘에 앉아 죽음을 노래했다
모든 길은, 둥근 나이테 안에서
내몸을 휘감아 가시를 만들고
희망인 빛이 가지치며 토해내던 피
할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다녀가셨다
그해 여름,

全 商 範
1967 강원도 홍천 내촌 출생
강원고 졸업
한결문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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