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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김 원 국

물 속에서도 숨을 쉬었으면 좋겠다
물고기들처럼 물 속에다가 집을 짓고서 살고 싶다.
투명한 물고기가 세상에 가득 했으면 좋겠다.
자다가도 깨어나서 마구 울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뛰어와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재학(97학번).









풀잎

회색깔의 도시 속의 회색깔의 거리 옆에 회색깔의 빌딩과 페인트 위로 회색깔의 날씨가 찾아왔다 지구 가 돌듯이 의미없이 방문한 날씨는 그러나 무척이나 회색인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아마 잠들어 있던 것이었다
누군가와 누군가가 나를 깨우려고 왔다가
뭐야. 죽었잖아.라며 지나가 버렸다
나를 밟고서 그들은 흙을 생각했고 풀과 지푸라기 따위를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상냥한 마음으로 고 생하게 될 미화원들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비록 아프지는 않았으나 아주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 었다
끊어진 풀잎들을 실어 나를 바람이 왔다
순순히 나는 체념을 했고 회색으로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안타까움 같은 것은 없다 어차피 그렇게 그다지 좋아한 세상도 아니었다
남아 있는 나무 이파리와 풀잎들에게 회색빛의 이슬이
덮여짐을 본다 어차피 과거에서나 미래에서나 내 세상은 아니었으나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다 강한 충격 과 소음을 지나 맑은 하늘에 오른다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

슬픈 음악 따위는 이제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버텨내고 싶은 것이다
강과 산맥을 이리처럼 넘어오는 바람을 진정으로 생각해내고 싶은 것이다
하얀 바람과 노란 바람과 안개 바람을
내 마음껏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짧은 바람이 되어 무섭도록 짧아지고 싶다는 것이다
길고 긴 바람이나 살랑이고 산들거리는 바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부산의 바람이 되고 싶다는 것일 수도 있고
강원도의 바람이 되고 싶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픽. 픽. 자꾸만 쓰러지는 것들을 일으키고 버티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땅에서조차 나오지 못하고 목이 메이는 것들을 뽑아내고 싶다는 것이다
아가씨들의 치마를 들썩이는 즐거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샘물처럼이나 차갑고 가슴 시린 것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누구도 버티지 못하고 행복해지는 광대한 바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Press the photo
Press the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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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부터

비가 내려온다는 것은 뭐랄까
지렁이 같은 느낌이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의 빛깔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비는 누구에게나 내려오겠지
그것이 안타깝다는 것일까
비를 좋아하는 새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새를 기다리는 것도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고
그냥 기다려야만 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렁이의 울음처럼 나이를 먹었어도
눈물은 파랗게 곰팡이가 되었겠지
비가 와서 좋아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비를 좋아하는 새는 보기 힘들다
어차피 지렁이처럼 말라 죽을 거라면
빗속을 날으는 간절하다는 것에 먹히고 싶다
아그작 아그작 빗물에 섞여
시원한 것이 되고 싶다









맛보기

건빵이 무슨 맛인지 알아?
그야 밀로 만들었으니깐 밀맛이겠지 뭐
……

내가 건빵은 보리야 말하지 못한 것은
정말로 밀맛이 났기 때문이다
때때로 모든 것들은 본래와 다른 맛이 나기도 한다

할머니가 눈이 아주 나빠지셨을 때
할머니는 나를 맛봄으로 해서 구별해 내곤 하셨다
그 당시 나는 아주 철없이 못되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맛있다고 너는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잠들어 버리고마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
때때로 건빵을 먹기도 하고
날벌레들을 잡아 먹기도 한다
나비에게서 풀냄새가 나고 건빵에서 메뚜기 맛이 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깊은 하늘로부터
그 복잡한 속에서 할머니를 맛볼 수도 있다

어느 지독하게 비가 내려서 중랑천이 뒤집어지던 때에도
나는 많은 것들을 먹었다
모든 것들이
식어버린 부침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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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이야기를 할 때

시를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계절이 꿈틀대며 대화를 요청해 왔을 때
준비되어 있지 않은 마음만큼 민망스런 것은 없다
저렇게 노크하는 소리에도 창문을 외면해 갈 때
그때만큼 부끄러운 순간도 없다
겨울 나뭇가지가 긴 숨을 내뱉을 때나
겨울이라고 공기가 사각사각 얼어갈 때
시계가 단호하게 전진해 갈 때
스팀 주위로 벌레들이 꼬물댈 때
그들과 이야기해야만 할 때
나는 나를 이야기해야 한다
나도 때로는 다정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이야기
혹은 나의 첫사랑 이야기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이야기
철부지적의 기쁜 이야기
아버지가 늙었다는 이야기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힘들다는 이야기
내가 바라는 애벌레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들은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새가 그려져 있지 않은 하늘에 새를 부를 때
나의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조용히 울 때
내 동생들이 아파서 「엄마!」소리칠 때
TV에서조차 열심히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 때
나는 밖으로 도피하려 한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도무지 정신 없고 어지러워서 토해내는 상상을 할 때
떡갈나무처럼 좋은 이름을 가진 나무가
손끝으로 눈물을 쥐어짜내는 광경에서
나는 안식을 찾는다
그럴 때면 빨간 쓰레기통도 다정스레 말을 건네고
아버지같은 목소리로 하늘이 등을 두드리고
퉁명한 대지도 뽀드득거리며 겨울을 보여주고는 한다
어디선가 올챙이가 파닥임을 전달해오고
사실은 아주 높은 곳에 새가 있다는 전설처럼
희망을 이야기해온다

지금은 바람맞은 아가씨처럼 차디찬 겨울이다
내가 따뜻한 곳에 있을수록
「곰돌아!」엄마처럼 부르는 부드러운 털 속에 숨을수록
강철같다는 계절은 멀어져 간다
말못하는 계절이 되고 만다









겨울 햇살

햇살이 다리 위에 머무른 채로
아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잠들어가는 정신을 일깨워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너만한 때의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거나
네가 환하게 웃어주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싶다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라며
우리 동네 어느 청년처럼 다정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래 실제로 나의 어린 시절 속에는
꼭 저만한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 듯하다
늘 코를 매만지던 강아지 엄마와 늘 발을 빨아대던 강아지 애기
큼지막해 나를 누르던 송충이
우리집 마루 위 처마에서 맨날 시끄럽던 제비 가족들
맨발로 함께 뛰놀던 지렁이 1. 2. 3.
늘 괴롭히곤 하던 다람쥐와 족제비
나를 울렁이게 하던 은빛 물고기떼
접시물에 담긴 햇빛 아줌마
……

아 그래 너는 그 아줌마의 아기인가 보구나
삼촌네 집에 놀러 오다니
참 기특하다
그래 어머니는 어떠시니?
우리 할머니는? 그래 나도 보고 싶다고 전해주렴
아니야 아니란다 나는 이제 졸립지가 않아
모르겠니? 너는 햇살이란다
꺄르르 귀여운 표정과 소리
떨어지는 나뭇잎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눈이 올 것처럼 아름다운 저녁
이제는 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주위에는 어느새 송충이, 송사리, 개구리, 제비들과 지렁이가
모여 들었습니다
찐득하던 허파가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차가운 숨을 들이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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