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목 (국어국문.4)
- '97 한림 문화상 詩부문 당선





빨래


구름이 무색하게 햇살 아래 팔랑거리는 하얀 와이셔츠
그렇게 널려 있는 빨래를 보면 훔치고 싶다
때로는 그 빨래 아래 무릎 끓고 엎드려 울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부시게 표백해 낸 그 손길이 그립다































요선동 뜬막걸리집 1
- 面壁放尿로 頓悟를 얻었으니




한 어깨 오롯이 지나기도 힘든 질척이는 골목은
도끼자루 썩는 武陵도 아닌데 취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妖仙이 없는 봄내[春川] 도청앞 요선동


그 허름한 강촌집, 자매집, 맛나집
妖仙대신 들큰한 뜬막걸리) 보통 막걸리를 일부러 가라앉혀 위에 삼분에 이정도 맑게 뜬 것을 따로 주전자에 따라 마시는 것으로 춘천에서만(?) 맛 볼 수 있다. 요선동에서는 뜬막걸리라고 부르고 혹은 벌렁주 - 후펑동 토우 목욕탕 옆 시장골목에 있는 미자집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 라고도 한다. 그 내력은 모르겠지만 맛은 막걸리보다 목에 걸리는 게 덜하고 차게 냉장고에 식혀 마시면 설탕 뺀 사이다같기도 하다. 그래서 막걸리의 텁텁함이 없어 마시기는 편해도 곧잘 취하곤 한다.
를 내오는
어머니도 되고 할머니도 되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妖仙이 되기도 하는 기름내 나는 그네의 纖纖玉手


처음부터 그랬을 싶은 기름때 절은 발을 열고
기름때 절은 의자에 앉아
기름 둘러 부쳐먹는 부침개 한판,
아삭한 무채 씹히는 촌떡
향긋한 미나리 얹은 장떡
돼지고기 갈아 부친 동그랑땡


지치고 힘없이 들어갔다
술내에 땀내에 시큼 절어 나와
面壁對坐 修道僧도 아닌 주제에
시원스레 面壁放尿로 頓悟를 얻었으니
하마 거기가 武陵이 아니었나 싶다











요선동 뜬막걸리집 5
- 강촌집 쭈그렁 할매




성한 이가 도대체 몇가닥이나 될까
홀쭉한 볼이지만
아직도 강촌집 쉰사내일 망정 그런대로 파리꼬이듯 하니 오죽 하랴
땡그렁 울릴 듯한 눈에 씹힌 듯 홀쭉하나마 볼그레한 볼에 박힌 보조개가
젊을적 뭇사내 여럿 울렸을 법한 내 앉은키에 굽은 허리
쭈그렁 강촌집 할매


쭈그러들긴 그 세월같이 옹색한 주전자에
뜬막걸리 두 통 오글오글 주름 가득한 손으로 부어 놓으면
그 손길 아랑아랑 내 가슴에 전해져 오네


손발 성헐 때 까진 자식 신세질일 없다며
오늘도 쭈그러진 주전자에
그 굽어진 세월을 담는
강촌집 쭈그렁 할매























탐욕스런 시간들




선배는 삼립빵 봉지를 들여다보며 갈증을 달랬다고 했다.
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가 돌아온 선배는
그때를 생각하면 암모니아 오드뚜알렛 냄새의 빵이 그리고 (주)삼립이 떠오른다고 했다.
제대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문밖을 나오면서 덜컥 생각나게 빵공장 주소 였다고 했다.


술잔을 쥐어짜며
선배는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었던 빵을
꼭 검은 소보루빵같은 똥들 가득한 화장실의 냄새를
뭐든지 버리며 지낸 그때를
빵봉지에 저당 잡힌 탐욕스런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술취한 선배는 군대에 대한 향수를 퍼 올리기까지 했다.




























점심을 같이한 여자




점심을 같이한 여자
무엇 하나 집어들질 못하는 빈 젓가락질
저며진 수육처럼
가슴 한 자락이 접시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몇 년 만인지 도저히 알 수도 없는
그렇게 멀리 있다 나타나
점심을 같이한 여자


수육 한 점에 소주 몇 잔
가슴을 녹여 낸 찬 소주가 눈으로 흘러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한 여자


한때 풀을 뜯고 사랑도 했을
접시에 담겨진 살덩이들
길길이 날뛰며 이별을 거부했던
연분홍 진달래 꽃잎처럼 놓여진
내 저민 심장을 곰삭은 새우젓에 찍어 씹었다


이름도 불러 보지 못한 채
돌려세워야 했던 마지막 점심을 같이했던 여자














포장마차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는


똥집, 쭈그러진 근육을 씹으며
닭똥 냄새가 난다고 했다
눅눅한 한기와 허기에 손잡아 끌었던
포장마차에서
닭똥집에 소주 한 병 세워 두고
국수 가닥을 쪼르륵 빨며 즐거워했다




오리를 잡아먹고 내민 닭의 발과
멍들어 부어오른 입술처럼 까뒤집힌 닭의 똥집,
제 살을 벗기운 체 붉은 살빛으로 취객의 위를 유혹하는 꼼장어,
상추 한 잎 톡 따 장식해 논 안주감을 본다
쉬익 쉭, 입김을 올리며 끓어대는 국물과
실타래처럼 채반에 받쳐둔 국수 몇 덩어리,
한 올 잡아 빼 사라져 버린 그녀의 꽁무니에 달아둘걸......


이제와 후회를 해본다


















詩를 태우며




이미 다 씌여진 詩들
기형도 앞에서
김영승 앞에서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 앞에서
詩들을 태운다.


쓰레기더미위에 올려진
얇은 편린들을
가차없이 태운다.


더 이상 씌여지지 않길바라며
쿨렁거리는 가슴에 진정제 한 잔 들이키고
불빛으로 재로 소진할 내 가슴을 태운다.


시를 쓰기보다
시인이 되기를 바랬던
그 맹랑한 치기도 함께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