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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유 혜 영

요즘에는 도통 시가 써지질 않는다
몸과 마음이 살찌고 있다.

◈ 한림대 국어국문학과 재학(95학번).








그들 사이로 소양강은 흐르고
- cafe '해우소'(解憂所)에서


근심을 풀어주는 곳이지, 예전에는 화장실을 '해우소'라 부르기도 했다지 아마
세상 모든 걱정 주름진 웃음골짜기 사이로 넉넉히 흘려 보내며
하회탈 웃음으로 주인 아저씨는 말씀해주셨다, 그래서인가
마음에 거친 물결 이는 날이면 찾아가게 되는 cafe '해우소'
그곳의 창가는 언제나 잔잔히 흐르는 소양강의 정경을 품고 있었다
하늘과 강물이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세상 온통 푸른빛 도는 저녁이 찾아들면
저 멀리 아파트와 거리 가로등에서 슬며시 기지개켜며 일어나는 환한 불빛, 불빛
검고 탄탄한 밤의 피부를 더듬고 다니는 안개의 몸 구석구석을 비추어내어
부끄러움으로 놀란 안개를 허옇게 질리게 하곤 했다


해우소에서 가까이 보이는 소양교
오랜 세월 강물에게 제 몸 다 주어 이제는 앙상한 철근 위에 흙빛 살가죽만 겨우 붙어있어
간신히 소형차 한 대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을 지닌 다리
가끔 해우소에서 늦게까지 술 푼 날이면 여지없이
술 취해 비틀거리는 내 두 다리를 끌어당기곤 하였다
처음엔 내 젊은 두 다리의 탱탱함을 시샘하여 이리도 불러내는가 싶었다
그러나 낡아 부서질 듯한 그 몸에 내 살을 섞으면 떨어지지가 않아
내처, 가슴 속에는 따뜻한 화로가 들어앉아
뿌옇던 밤 안개를 모두 말려버려 앞길을 환히 비쳐 주곤 하였다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이곳 해우소.










1998년 어느 늦은 가을밤

검고 탄탄한 밤의 피부를 더듬으며 내려오는
자취방으로 통하는 지름길은 언제나 목마른 외길
좁고 가느다란 골목 사이의 저 외등은
한낮의 치열한 싸움 끝에 튀긴 한 점의 혈흔 같아
싸구려 잠바를 걸치고 잔뜩 웅크리며 지나가는
따뜻한 피가 모자란 이들의 가슴에 한 방울 피로 섞여
가난으로 굽은 등을 곱게 펴주고


무심한 까치의 외도로 버려진
마른 가지 끝, 겨우 매달려 있는 홍시는
볼품없이 늘어진 그 옛날 할머니의 달랑무 같은 젖가슴 같아
뼈마디로 남아 있는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한 입에 베어 물면
그 맛 기막히게 달듯 싶은데
날다날다 지쳐 돌아온 까치의 빈속을 채워 주려
이 밤에도 그 빛이 너무 고와 감히 손뻗지 못하고


톡, 파고 드는 초겨울 바람의 코끝 찡한 매운 트림
어느덧 내 자취방 앞을 기웃거리고 있네
지름길 끝을 돌아 나오며
다짐한다
이제는 너를 보낸다


안녕,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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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와 목련

촉, 촉,
첫 키스 소리 닮은 봄비가 내린다
낮부터 조심스레 불거져 나오던 목련 꽃망울
그 하얀 살빛 위를 감싸는 봄비의
보들보들한 손길에
흠칫 놀라는 척
속살 감추며 오그라들지만

흥!
내일이면 달작지근한 분내 풍기며
몽글몽글 꽃피우겠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뽀얗게 살오른 피부 한껏 뽐내겠지,
시치미 떼고 고상한 척 하겠지

알지, 알지 나는 알지
어젯밤의 그 밀회를 나는 알지
봐,
온밤을 하얗게 세우며 하늘만 쳐다보잖아
봐,
남 모를 그리움에 그 곱던 모가지 똑 분질러지잖아

쯧쯧, 어쩌나
바람난 봄비
내년에나 올텐데.








비 내리듯 그렇게

겨우 몇 층 올라가서 죽으려는 인간은
수도 없이 하늘을 보며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하는가
얼마나 많은 말들을 짖이겨야만 하는가
봐라,
너무도 가볍게


톡!


떨어지는
비는,
잘잘잘 웃음소리 흘리며
상처도 고통도 없이
땅과의 부드러운 입맞춤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깨지고 깨지는 아픔이 없다.








차마,
몰랐던 이야기

추석을 지낸 생선가게가 문을 열었다
짧은 연휴동안 모두들 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나온 것일까
비릿하던 생선냄새가 오늘은 덜하다


고향을 찾아 떠난 주인이 가게문을 굳게 닫고 나간 후
냉동실에서는 며칠 동안 땡그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새하얗게 질려 놀란 생선의 눈, 눈, 눈


고향의 달을 보며 주인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냉동실 안의 생선도 고향이 그리웠을 테지
푸른 등에 얼음칼 날개를 꽂고 바다로, 바다로 날아가
첨벙 뛰어 들고 싶었겠지
사람의 소원은 달을 울릴 수 없지만
냉동실 안에 뜬 보름달에는 찬
눈물이 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추석이 지난 후
온몸에 서걱서걱 얼음 맺혀 나온 생선은
이미 바다를 잊었다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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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 · 生
-겨울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멀쩡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다
간밤에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가 길 한가운데
쓰다 버린 詩처럼 짖이겨져 있어도
살아날거라 믿었다
나의 다음 詩가


겨울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이제 막 손톱깎기로 잘라낸 듯한
날카로운 초생달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콕, 콕 찌른다
아퍼, 물컹 눈물이 난다
달빛이 비웃음을 타고 흐른다


이제 나는 시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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