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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沒


by 김재덕
이층의 술집 창가에 기대어 거리를 내다본다
사람들 삼삼오오 짝을 져 부표처럼 떠다닌다
혁명은 사라졌다
앉은뱅이 책상에 먼지가 쌓이는 동안
그 어두웠던 다락방에서
나는 좁은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와
이제는 술잔의 비어가는 속도와
다시 그만큼의 빈잔을 채워야 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있다
밤새 머리를 맞대고 펼쳤던
수 많은 토론의 언어들은
캐캐한 담배연기만을 남긴 채
끝내 간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고
검붉은 조명이 빈 열정의 자리를 메웠다
혁명은 사라졌고
접시에 올려진 꼬치구이 기름 낀 웃음을 짓는다
술잔 속에 얼굴 하나 흐느적 따라 웃는다
나의 세계는 모두 술잔 속에 수몰되었다
아련히 떠오르던 지나간 사랑과
언제나 주위를 맴돌던 고통과
뜨거웠던 외침과
치열하게 지켜왔던 이상이 뒤엉켜
단숨에 목구명을 타고 흐른다
내 속에 또아리를 튼 나를
내가 알리없다
꿈의 규칙이 허물어지는 이 시대를
우리가 알리없다
혁명은 사라졌고
우리의 세계는 술잔 속에서만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