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의 "만남"

신포교회 학생회 전복진 (성수여상 2학년)




    우리가 할아버지를 처음 뵙게 된 때는 작년 3월쯤이다.
    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었다. 학생회 예배가 끝나고 2월달 계획을 짜던 중 누군가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듣고보니 괜찮은 제안인 것 같아서 모두 찬성했다.
    그 후 몇 주가 지나고 선명회를 통해 할아버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탄리에 한 할아버지가 사시는데 결혼을 안 하셔서 가족도 없으시고, 얼마전에 영양실조로 쓰러지셨고, 이웃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선명회에 연락을 했단다." 듣고보니 이 할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이 되어 이 할아버지를 도와 드리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에 선명회에서 한 분이 차를 가지고 오셨다. 아마 우릴 안내하기 위한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차에 올라타고 드디어 출발했다.
    차에 탄 우리들은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함을 알 수 있었다. 뭐랄까? 자신들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놀라움과 처음 만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하는 기대감 같은 것이 섞여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들의 긴장이 채 풀리기도 전에 어느새 할아버지께서 사시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아주 크고 멋있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고, 그 옆에는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것을 본 우리들은 왠지 이 마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할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가 보니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업고 댁으로 모시고 가서 마루에 앉혀드리자 잔치가 있는데 자신은 다리가 불편해 못 간 것이 화가 나서 술을 드셨다고 하셨다. 우리는 정말 할아버지가 불쌍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청소를 시작했다. 빨랜며, 설겆이, 방청소 등등. 서로 일을 분담해서 청소를 했다. 방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치우다 보니 빨래, 설겆이 감도 점점 늘어났다. 설겆이 감 중에는 아주 예쁜 그릇이나 접시도 많았다. 그런데 한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우물이었다. 우물이 없어서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개울에 나가서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식수로는 집 옆에 있는 작은 샘물을 사용했다.
    두시간이나 지나서야 일이 거의 끝났다. 청소를 싹 해 놓으니까 보기가 좋았다. 또 무엇보다 좋았던건 할아버지의 웃음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다음 주에 또 올 것을 약속하며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우리 자신이 아주 자랑스럽세 느껴졌고, 앞으로 할아버지를 더욱 잘 보살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후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할아버지께 갔다. 우리가 가면 할아버지는 무척 반가워 하셨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었다. 매주 가서 일도 하고 드실 것도 가져가지만 할아버지와 얘기를 잘 안하는 편이다. 차라리 어린아이라면 서로 이야기도 할텐데,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려니까 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웃어가면서 이야기도 잘한다. 참 다행이다. 어떨 때에는 친할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씩 몸이 안 좋으셔서 못 일어나시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땐 그냥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할아버지가 빨리 낫게 해 달라고 말이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할아버지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를 도와 주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고, 슬펐던 일도 있었고 재미있던 일도 많았다.
    이런 날도 있었다. 비가 조금씩 오는 날이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니까 할아버지께서 아프신 것 같았다. 나오시지도 못하고, 방에서 대답만 하셨다. 우리는 '할아버지께서 많이 아프신가보다'라고 걱정을 하며 설겆이를 다하고 오니까 할아버지께서 화장실에 좀 데려다 달라하셔서 우리와 같이 가신 분이 할아버지를 업고 화장실 문 앞에까지 가 주셨다. 그리고 자신은 집에만 있어서 일요일에만 사람구경을 하신다는 말씀에 눈물이 나올뻔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사람을 그리워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가려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가는 것을 보고 들어가신다며 우리가 갈 때까지 비를 맞고 서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겠다도 다짐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께서 옥수수를 주신 적이 있었다. 언제인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설겆이를 다하고 오니까 할아버지와 같이 가신 분, 또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할아버지 댁 옆에 있는 옥수수밭을 보니까 세 분이 옥수수를 따고 계셨다. 언젠가 옥수수를 가져다 쪄 먹으라고 하신 할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옥수수를 가지고 교회로 와서 쪄 먹기로 했다. 그런데 결론은 옥수수를 먹지 못했다. 왜냐하면 옥수수가 너무 말라서 압력솥에 쪄야 하는데 그냥 냄비에 쪄서인지 안 익은 것이었다.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서 한 사람이 한 봉지씩 가져갔다. 할아버지께서 이 일을 아시면 반응이 어떠실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당황하신 적이 있었다. 이유는 미국 아저씨가 함께 갔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는 우리 교회 옆의 부대에 파견 나왔다가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서 따라 오시게 된 것이다. 그 미국 아저씨가 할아버지께 공손히 머리숙여 인사를 하니까 할아버지께서도 인사를 받아 주셨다.
    그 때의 할아버지 표정이 재미있었다. 뭐랄까? 갑자기 외국 사람이 와서 당황하는 눈빛이셨다. 그 눈빛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실례인줄 알면서도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몇가지만 꼽아 보았다.
    우리는 이런 많은 일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생각처럼 쉽게 도와주게 되지는 않는다. 이런 면에서 보람을 느끼고, 또 항상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말을 들으면 괜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미안한 것이다. 오히려 더 잘해 드려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앞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보다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보살피고 감싸안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 세상 사람들이 서로 아끼며 형제처럼 지낼 그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