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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절공 신숭겸 묘역

도지정기념물 21호, 서면 방동 1리

[장절사], [전시관],[숙사]
[97년도 춘향제][98년도 춘향제][360도 파노라마 이미지]


재실, 봉분, 묘역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태조가 전쟁중 위태롭자 왕의 옷으로 변복하고 대신 목숨을 바친 장절공 신숭겸의 묘소로 평산 신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1기 3분의 특이한 봉분과 신도비, 기념관 등이 있다.




덕두원에서 의암댐 상류 쪽 2km정도 더 가면 장절공 신숭겸 묘역 입구에 다다른다. 의암호 건너편에서 봉의산과 춘천 시가지를 볼 수 있어 우리 고장이 물의 고장이며 '호반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호수의 여기저기에는 울긋불긋한 낚시꾼들의 좌대와 낙엽처럼 떠있는 재첩잡이 나룻배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다. 고인돌, 적석총 등 청동기 시대 문화유적의 보고인 중도를 바라보며 서면 사무소 조금 못 미처 왼쪽으로 가면 방동리 마을이 시작된다. 실개천을 따라 잠시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울창한 송림안에 신숭겸 묘역이 있다.


신숭겸





신숭겸(?~고려 태조 10년, 서기 927년)은 평산 시씨의 시조로 초명은 삼능산이고 호는 장절 공이다. 광해주(춘천) 출신의 장군으로서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과 협의하여 궁예를 폐하 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927년에 신라를 도와 후백제 견휜 군과 싸우게 되었는데 고려 태조는 신숭겸과 김낙을 대장으로 정예병 5천명을 이끌고 후백제 를 공격하게 되었다. 드디어 고려와 후백제군이 공산의 미리사 부근에서 부딪쳤다. 병력이 열 세했던 고구려군은 대패하였으며 태조와 장수들은 후백제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필사적으 로 싸웠으나 허사였다. 신숭겸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 태조만은 비슷해 갑옷을 바꿔 입고 태조를 탈출시킨 후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여 집중 공격 하여 집중 공격하였고, 힘을 다해 싸우다 신숭겸이 장렬히 전사하자 후백제군은 그의 목을 베어갔다. 그 후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공을 기려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후하게 장례를 지 냈고 금두상이 도굴될 것을 두려워하며 춘천, 구월산, 팔공산에 똑같은 묘를 만들게 하였다.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도 봉분이 세 개가 있는데, 어느 것이 공의 봉분인지 알 수가 없다. 신 숭겸 사후 신라는 고려에 투항하고 후백제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분 끝에 결국 고려에게 망하였다. 그리고 신숭겸의 절의는 고려 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충신의 표상으로 받들어 졌으며, 고려 16대 예종 임금은 신숭겸, 김낙 두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도이장가(棹二將歌)를 지었다(장절공유사에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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