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취락



초기의 취락은 경지개척이 유리한 저평한 농경지가 있고, 수리가 가능한 곳에 인구가 모여들면서 마을을 이루게 된다. 춘천 부근의 취락도 북한강과 소양강에 의해 형성된 넓은 범람원이 펼쳐져 있는 사우동, 우두둥, 신북면을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옥한석, 1994, 『향촌의 문화와 사회변동 - 관동의 역사지리에 대한 이해』, 한울아카데미, pp.39∼49).

인구가 증가되고, 교통로가 발달되고, 산업이 분화되고, 인구이동이 증대되면서 취락은 점차 확대되고 도시를 이루게 된다. 1895년 23부제 실시로 도호부가 폐지되고 춘천군이 된 춘천은 강원도의 행정중심지가 되면서 1917년 춘천군 춘천면이 춘천읍으로 승격 개칭되면서 점차 도시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38년 경춘철도가 개설되고, 춘천 - 서울, 춘천 - 원주, 춘천 - 화천간의 국도가 확충되면서 춘천읍은 1944년에 인구 37,542명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1949년 시로 승격한 춘천은 인구 규모가 54,539명으로 증가되었다. 1953년 강원도 도청이 수복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춘천시는 1955년에 67,808명 규모의 도시로 성장되었고, 그후 계속 인구가 증가되어 1990년에는 23개동에 인구가 174,224명으로 늘어났다.(표38참조)

1992년 춘천군으로 명칭을 바꾼 춘성군은 10개 면에 78개 리의 취락이 경지 주변의 배산임수 지역이나 계곡에 발달되어 있다. 동면(기내, 만천, 장학, 감정, 월곡, 품걸, 품안, 삼걸, 신이, 평촌), 동산면(조양, 봉명, 원창, 군자), 신동면(증정족, 의암, 형동, 팔미), 동내면(신촌, 거두, 고은, 학곡, 사암), 남면(독산, 한덕, 박암, 관천, 추곡, 후동, 가정), 남산면(창촌, 강촌, 광판, 통곡, 방곡, 수동, 서천, 백양, 방하, 행촌), 서면(금산, 서상, 신매, 월송, 현암, 방동, 덕두원, 안보, 당림, 오월), 사북면(신포, 지촌, 가일, 오탄, 원평, 고설, 고성, 송암, 지암, 인풍), 신북면(율문, 천전, 류포, 산천, 독산, 용선, 지내), 북산면(오행, 내평, 청평 부귀, 추곡, 대곡, 추천, 대동, 초교, 홀노)에 수십 개 가구의 산촌 마을에서 기백 개 가구의 가촌이나 괴촌형의 취락이 분포되어 있다.

춘천인의 인성



개인의 성품이나 인성도 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한 지역인의 인성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지역 사람도 한 사람 한 사람 살피면 다 개성이 있어 달라보여 종잡기가 어려우나 한 민족에 민족성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지역에도 지역성이 있을 수 있다. 이 지역성이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진 속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옛날에 조선 8도의 사람의 성품을 한자 4자로 표현한 강원도를 암하노불(巖下老佛), 충청도를 청풍명월(淸風明月), 경기도를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고 한 것들이 다 이 지역의 인성의 표현이다.

이렇게 보면 같은 강원도 안에서도 환경과 문화를 달리하고 있는 시군에도 지역성은 있을 수 있고 이 지역성이 그대로 그 고장의 인성일 수도 있다.

속설이기는 하지면 옛날의 조선 8도에는 그 나름대로 인성을 언급한 말이 남아 있으나 강원도 내의 각 고을의 사람들의 인성을 8도의 인성을 표현하듯이 밝힌 말이 남아 전하는 말은 없는 듯하다. 다만 추상적으로 어느 고을 사람이 어떻다는 얘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는 하나 그나마 그것도 아까의 조선 8도의 것과 같이 속설화 되지조차 못하고 있다.

혹 개화기 때에 강원도 각 고을의 지명을 따서 그곳의 특색을 언급한 것이 더러 있으나 이것은 그 특색을 인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만은 아니어서 이것으로 강원도 내 각 고을의 인성을 말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개인의 인성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 더욱이 한 고을의 총체적 인성을 언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지나 읍지에 인성을 언급한 것은 드물고, 거의가 인성을 포괄한 항목으로 풍속을 내세우고 있다. 오늘까지 발간된 거의 모든 지지나 읍지에 인성란이 따로 있는 것은 드물고 이 인성을 풍속란에 포괄시켜 놓고 있다. 그 예로 읍지의 풍속란에 보면 '인성순미(人性淳美)'라든가 『택리지』의 팔도총론 편에 강원도를 '다산소야 기민유근' 이라고 한 것이라든가 '인성다교(人性多巧)'라고 한 것 등은 다 인성에 관한 논급이 분명하나 이들은 다 인성란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풍속편에 들어 있어 인성이 인성 자체에서 찾아지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곳의 인성이 그곳의 풍속을 만들고 있으므로 한 고장의 인성은 그곳의 풍속을 통하여 찾는 방법이 하나 있다. 다른 하나는 인성은 생활환경과도 직결된다. 아름다운 자연을 생활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고장 사람의 인성은 순회되기 마련이고 거칠은 화경속에서 성장하면 그 인성이 거칠게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춘천사의 인성은 춘천의 자연환경과 춘천의 풍습을 배경으로 찾아야 한다는 귀결에 이른다.

먼저 춘천사람의 인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춘천의 자연환경이 문제가 되고 어느 고을이건 자연환경의 표상은 그곳으 자연지리적 여건이 골격이 된다. 논어 옹야편에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은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말을 바꾸면 산수가 사람의 성품을 좌우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는 말이다. 거주환경으로서의 자연이 얼마나 사람의 성품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시사하는 내용이라 할 때 춘천의 산수는 춘천사람의 인성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할 것이다.

춘천은 지금의 인공호수가 있기 이전에도 산수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거주환경으로서 '강거'라는 말이 있고 이 강거는 강을 끼고 형성된 취락에서 사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중환은 우리나라에서 강을 끼고 이루어진 취락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의 한 곳으로 춘천의 소양강변을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이중환의 개인의 주관적 판정이라고도 하겠지만 그 자신으로 보아서는 춘천에 특별한 연고가 있어 잘 보아주자는 선입견이 있어서 한 얘기는 아니다. 또 이 택리지의 얘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춘천은 산수의 고장이고 특히 춘천이 강변취락으로서 살기 좋다는 것은 그 물에 그만한 연유가 있다 할 것이다.

물이 이렇게 아름답다 보니 이 것을 생활배경으로 살고 있는 사람의 품성이 순화되어지리라는 것은 추론이 가능한 일이다.

춘천의 물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두 개의 명산에서 발원한 불이 합수한 물이다. 한 줄기는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평화의 댐을 거쳐 화천을 지나 흐르는 강이고, 다른 하나는 설악산에서 발원한 강이 인제를 지나 소양강이 되어 흐르는 강으로 이 두 명산에서 발원한 강이 춘천 우두벌을 사이에 두고 그 끝에서 합강하여 이곳 물의 종조(宗祖)를 이루고 있다. 두 강이 발원을 명산에서 했기에 그 나름대로 뜻이 있는 강으로 이 물들이 오랜 세월 춘천사람의 심성에 알게 모르게 영향하여 왔다. 춘천은 우리 나라에서도 가장 물맑은 고장에 위치하고 있는 고을이기에 이 물의 맑음이 사람의 인성도 맑에 하였다. 논어에 나오는 요산요수를 춘천 사람은 제 고장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자연환경에서 살아왔으니 이러한 산수 속에서 도야된 인성이 어질고 깨끗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는 일이다.

물이 이러하거늘 춘천의 산 또한 범상하지 않다. 우선 춘천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느낌을 주는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이 다른 고을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 산이다. 진산은 거의가 한 고을의 북족에 위치하고 있는 산인데 봉의산은 춘천의 중심에 진좌한 산이다. 이 산은 타고온 내백이 없이 하늘에서 그대로 내려앉은 듯한 형국의 산으로 산명인 봉의하는 이름도 이런데서 연유하였다. 춘천은 이 봉의산을 중심으로 삼악, 청평, 대룡 등 맑고 수려한 산들이 주위에 산재하여 있어 산자수명한 고을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 춘천을 일러 강변취락으로는 전국에서도 가장 좋은 곳의 하나라고 한 것도 공치사가 아니다. 이러한 자연환경이 춘천사람의 인성을 알게 모르게 길러왔고, 이 명미한 산수 속에서 길러진 인성은 산수의 속성을 따라 맑고 아름답고 착하게 길들여 졌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는 일이다.

맑은 강물 푸른 산을 매일 대하면서 탁하고 어두운 것이 연상될리 없고 깨끗한 산수의 풍정속에서 세속의 얼룩짐을 교관시킬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고 보면 산자수명한 춘천의 산수가 춘천사람의 인성에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밝고 맑은 면을 부각시켜왔다. 살기 위하여 진흙탕 속에서 판갈이 싸움이라도 하겠다는 적극성보다는 한걸음 물러나 맑고 밝은 것에 편안히 안주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면 이것은 춘천의 산수가 춘천사람의 심성에 가져다준 영향이라 할 것이다.

이러고 보면 춘천의 산수가 춘천사람의 인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것이 인성의 문제이기에 계수로 나타낸다거나 정확하게 검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고 다만 이러한 인성에도 긍부의 양면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춘천의 명미한 자연이 춘천사람의 심성에 끼친 긍정적인 면은 앞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은 맑고 곱고 어진 마음씨다. 이것은 자연의 명미성이 그대로 인성에 미친 결과이다. 이 심성의 맑고 착함은 역사적으로 이곳 사람으로 역리를 행하여 역사에 문제되었던 사건이 별로 없다. 고려시대 몽고의 난 때 춘천의 민관군이 봉의산성에서 외적과 죽기를 각오하고 감연히 싸워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것은 의를 지키기 위함이었지 그밖의 다른 뜻은 없고 구한국 말엽에 나라가 일제에 의하여 침탈당하자 다른 어느 곳보다도 의를 위하여 먼저 일어섰던 것도 이곳 사람들의 심성 밑바닥에 깔려있는 맑고 착한 인성이 정의와 직결되었던 데서 연유했다 할 것이다.

세리(世利)에 밝아 늘 공리적인 맑지 못한 인성의 사람들이 이를 앞세운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명미한 춘천의 산수가 춘천사람들을 맑고 착한 심성을 갖도록 했고 이 맑고 착한 심성은 의와 교관되어 마침내 춘천을 구한국말에 의병의 발상지로까지 연계시켰으니 이는 춘천사람의 인성의 긍정적인 면이다.

자연환경이 갖다준 춘천사람의 인성 가운데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산자수명하고 명미한 자연은 현실과 연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려한 자연의 품속에서는 현실의 악착하는 생각보다는 괴로운 현실을 잊으려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아름다운 자연에 취하여 있는 동안은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는 것이 사람의 심성이라 할 때 춘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춘천사람의 심성 속에 현실에 악착하려는 의지를 퇴색시킨 점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의를 위하여는 감연히 싸우면서 생활현실에는 늘 한 발자국 뒤쳐 있어 악착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이것은 춘천사람의 인성의 부정적인 면으로 그 원인의 한 가닥은 춘천의 자연환경에서 재래했다고 보여진다.

앞에서 인성의 형성요건의 또 하나는 풍속과 큰 관계가 있다고 했다. 말타기나 격렬한 경기를 풍속으로 가지고 있는 고장 사람의 인성은 일반적으로 거칠게 마련이고 조용한 놀이나 놀음에 탐닉하는 습속을 가지고 있는 고장 사람들의 심성은 무기력해지기 쉽다. 따라서 지지나 읍지를 통하여 그곳 사람들의 인성의 일부나마 이해하려고 할 때에는 그 읍지의 풍속조를 보는 것이 방법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춘천 풍속조항에 '풍순속미(風淳俗美)'라고 있다. 이 말은 풍습이 순박하고 습속이 아름답다는 말로 이 고장 풍속이 아름다웠음을 이르는 말로, 이것은 춘천사람의 인성이 맑고 아름다웠음을 이르는 말이다. 구체적인 기록이 되지 못하여 이곳 사람들의 인성을 이것만으로 자세히는 살필 수는 없으나 긍정적인 면에서는 춘천사람은 순박하고 어진 인성의 사람이었다는 기록으로 해석이 된다. 이것은 앞에서 산수 환경으로 인성을 얘기한 대목과도 일치가 된다.

1940년에 발간한 강원도지(한문본) 춘천 풍속조에는

"선비는 시서를 외우고 백성은 농사를 힘쓰며 남자는 친구들과 더불어 연회하기를 좋아 하며 여자는 무당들을 숭상한다. 세금을 내기 위하여 늘 준비를 하고 거역하지 않기를 늘경계한다. 분수를 지켜 안빈낙도 하는 기풍이 있고 부자라 할지라도 사치하는 습속 이 없다."

라고 있고,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수춘지(壽春誌) 필사본에도 상기한대로 이기(移記)하고 그 말미에 '의지가 誛고 교육에 힘쓰며 미신을 타파하고 부업에 힘쓴다.'라고 첨기하고 있다.

이 수춘지의 것은 이 수춘지를 편찬한 개인의 주관적 관찰로 별로 중시되지 않기는 하나 그 동안의 변화에 다소 참고는 될 것이기에 그대로 떬겨만 놓고 여기서는 논외로 치기로 하며, 도지에 실려있는 것을 중심으로 춘천사람의 인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선비들은 시서를 외우고 백성은 농사에 힘쓴다는 것이 자기의 직분을 지킬줄 아는 어질고 착한 심성을 말함이고 이것은 앞서의 산수환경에서 논한 것과 일치한다. 남자는 연회를 즐기고 여자는 무당을 숭상한다는 것 가운데 남자가 연회를 즐긴다는 대목도 춘천의 산자수명한 자연과 유관 부분이고 여자가 무당을 숭상했다는 것은 미개했던 무렵이면 어디서나 있는 일들이다.

세금을 내기 위하여 힘써 그 준비를 한다는 것은 순박한 성품을 그대로 나타낸 말로 이곳 사람들의 심성이 얼마나 선랭한가를 말해 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 인성의 선량성은 다음에 거역하지 아니할 것을 늘 경계한다 했으니 이것이 곧 앞서 말한 현실에 안주하는 비진취적인 성품을 말함이니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곳 사람의 성품의 부정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품은 가난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남의 탓으로 여기는 법이 없고 그 가난속에서 안빈낙도하는 선량성도 인정하지만은 부정적 체념성이 싹트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고 겉으로 나타내기를 즐기지 아니하는 소극성은 사치하는 습속도 없게 하였다.

이 글에서 보면 춘천사람의 인성은 선량하기 그지 없으나 반면 비진취적인 부정성도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