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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울리는 목소리

"학우들아 너희들은 죽더라도 꼭 대학에 가서 죽어라. 나는 너희들 보다 조금 먼저 죽음을 선택했을 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죽음을 선택한 고3의 목소리다. 그는 한때 지나치게 이기주의적인 친구들을 경멸했고 지금의 입시제도를 탓하기도 했다.선생님의 목소리도 지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기려는 의지가 나약한 자신을미워하게 되었다. 그러한 자신을 용납할 수도 없었다. 죽기 며칠전의 일기에서는 "막상 여기서 떠나려 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고고백하고 있다.

인간의 적개심은 그것을 누르려는 마음의 힘과 싸운다. 무슨 까닭으로 누르는 힘이 약해지든가 아니면 누르는 힘보다적개심이 더욱 강하면 그 적개심 때문에 불안하다. 그러한 적개심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처리되어야 한다. 처리방법으로는두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밖으로 내뿜는 길이고 또하나는 안으로 접어두는 길이다.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를미워하는 길로 들어서고 안으로 자신에게 향하면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극도로 자신이 미워서 최후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자신을 죽이는 자살이다. 그도 자신의 추한 모습이 미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죽을 사람은 몇가지 신호를 보낸다. 아마 주위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는 어떤 시그날일 것이다. 우리가 무뎌서 그 신호를알아채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을 뿐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죽음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까닭은 이런 신호가 전혀 없이어느날 갑자기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 죽음의 책임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우리 어른들에게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입시제도를 만들어 낸 것도 우리들이고 능력이상의 높은 목표를 설정하게 만든 것도 우리들의 과욕 탓이다.아이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의 세계 속으로 내몰아댄 것도 어른들이고 결국 적개심의 근본 동기를 이루는 것도부모들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출구를 다 막아 버리고 몰아대면 그 때의 유일한 도피 방법이란 죽음 뿐이다. 더구나 소리 없는아이드로서 죽음이 단 하나의 의사표시 수단일 것이다. 일단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죽음으로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해서어떠한 탈선행동도 어떠한 환각제도 그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부모나 학교 선생님께 착하고 공보 잘하고 얌전한 모범생으로 비쳤을 때 더욱 위험하다. 모범학생의 정신건강을 알아봤더니그들이 고독감이라든가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고 있어서 그와 같은 위험요소가 훨씬 더 강하더라는 것이다.

선생님조차 스스로 "몰이꾼"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나 같은 학생을 아끼는 선생님이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 전문기관의 역할로 바뀐지 오래라고 말한다. 오로지 대학입학이라는한가지 가치에 따라 학교와 선생님을 평가하게 되었다. 오히려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치를 길러 주는 학교와선생님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한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와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획일적인어떤 틀에 그들 자신을 맞춰 나가야 한다.

어느 똑똑하고 심히 '건방진' 고2가 주장한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 틀린 삶이라고는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자기가 원하고 또 보람을 느끼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부모들은 아직도 이 사회에서는 어떤 독창적인 삶이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자기자식들이 짊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 그러한 갈등 속에서 헤메다가 부모와 이 사회를 미워하는 적개심이 생기고 그러한적개심이 자기자신에게로 향하면 "내 못난 탓"으로 변하여 우울증이 된다. 우울증에서는 자신을 미워하고 결국엔자살을 꿈꾸게 된다. 왜냐하면 우울증의 종착역에선 살 맛을 몽땅 잃는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 모두 우울증이라고는말할 수 없다.

문교부가 '88년 한해 동안 집계한 128명의 중고생 자살자 가운데 성적 때문에 죽은 학생은 일곱 명에 불과하다. 오히려가정불화가 원인으로 밝혀진 학생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그 사람의 자살동기를 파악한다는일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짓일까. 정신의학에서도 자살에 대한 연구는 겨우 자살에 실패한 다행스런 사람을 대상으로할 수 있을 뿐이다.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몇 년전 어느 대학 정신과에서 중고생 일부를대상으로 조사했던 결과가 오히려 끔찍하고 걱정스럽다. 조사대상이 도ㅒㅆ던 학생들의 약 5분의 1인 21.5%가 일시적일 망정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고 대답했더라는 것이다. 이게 통계라서 실감이 덜 난다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지금 40대의 부모들은 그들의 형제자매가 대개 5남매는 된다. 이 5남매가 시집장가를 가서 각각 두 아이씩을 두었다고 하자.그러면 모두 열 명의 자녀들이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 두 아이가 자살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내아이 두 명과 여덟 명의 내 조카 가운데 두놈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해보라. 이 얼마나 끔직한 일인가. 더구나 스무 명의 중고생 가운데한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하다.

자살하려는 동기가 좀 어렵게 얘기해서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피학적인 것이든 자신의 죽음으로써 복수하려는 것이든아니면 죽은 후에 재결합을 원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고등학생의시험불안 정도가 미국이나 네델란드 또는 인도의 고등학생에 비해 훨씬 높더라는 사실이다.

더욱 우리를 괴롭히는 결과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에게서 시험불안의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때문에 이젠 고3병이 아니라 고병이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1때의 성적이 3년 동안 간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야 한다.더구나 삼년 내내 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 고1때 성적이 좋으려면 벌써 중3때 고1의 교과서를 마스터해야 한단다. 또그럴러면 중 1,2때 중학과정을 마스터해야 하겠지. 그래서 중3병이 아니라 이젠 중병이 돼버렸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생중 한번쯤 앓을만도 했던 중3병과 고3병은 향수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중병과 고병은 두렵기만 하다. 요즘은2년 터울로 자식을 둘 두었을 때 그 어머니는 둘째 아이가 효녀 효자라서 재수를 하지 않아도 꼭 8년간을 입시병과 싸우게된다. 농담으로 2년간의 입시병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자녀 갖기 운동을 해야겠다고 한다. 실감나는 이야기다.

시험이라는 또 입시라는 스트레스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거나 죽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란 태어나는 순간부터시작된다. 어머니의 좁은 질속을 통과해야 이 세상으로 나올 수가 있고 또 나오자 마자 어머니의 자궁 속과는 전혀 다른세계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적당한 스트레스는각자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다만 그러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충분하기만 하면 스트레스로 느껴지지않는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가장 훌륭한 처방은 부모의 사라이 가득한 집안의 분위기이다. 아무리 혹심한 경쟁사회라 해도도전해보다가 실패하면 가족과 집으로 돌아가 힘을 충전해서 다시 도전해볼 수 있다.

대학입시에 실패했어도 돌아가 안길 수 있는 부모와 가정이 있다면 죽지 않는다. 입시제도와 교육제도만 고쳐댄다고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제도란 누구에게나 만족될 수도 없고 더구나 완벽할 수도 없다. 제도만 고치라고 주장아는것은 어찌 보면 부모들이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한 가지 수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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