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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점원이 되고 싶어요


이군은 고3 여름방학에 잠을 못자고 횡설수설한다고 해서 한달간 정신과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외래통원치료를 받느라고 그 해에는 입시 원서도 내보지 못하고 말았다. 전문학교에라도 가고는 싶었지만 그가 원하는 국문과가 없었기 때문에 그도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재수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는 잘 안됐지만 학원에 다니는 재미는 있었다. 물론 일주일의 한 번씩은 꼬박꼬박 병원에 와야했다. 약을 먹으면 졸리기도 하고 정신집중도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약을 끊은 적이 있었다. 사실 약 먹기도 싫었고 또 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기 싫은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공부하기가 싫어졌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들이 쇼크를 받을까봐 말을 못해서 그렇지 벌써 대학을 포기했었다고 한다. 목소리를 낮춰서 이군이 말하기를 "제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요, 책방에 취직하는 거예요. 책방 점원이 되고 싶어요." 부모님한테 말하지 말라는 부탁까지 했다. 아버지는 괜찮은데 어머니가 가만 있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군은 부모 모르게 과일도매상에서 일주일간 일을 해봤다.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군은 입시공부를 하려면 다른 책이 보고 싶어진다. 역사소설도 보고 싶고 시집이나 연애소설이 보고 싶다. 그런 책을 샀다고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어디 그런 친구가 이군뿐이겠는가. 하라는 입시공부는 잘 되지 않는다. 청개구리 같이 '공부 공부'하니까 공부가 하기 싫어지고, 대학 대학 하니까 대학에 가기 싫다. 싫기도 하지만 사실 대학에 갈 수 없는 실력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부모님이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 사회에서 '출세했다고 하는' 그런 일을 해야만 행복한 거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거기서 어떤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니겠느냐? 다만 용기가 없어서 이런 말을 외치지 못할 뿐이다. 실망한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 대할 수도 없고 다그칠 어머니에게 배겨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어물쩡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가정 형편이 곤란해서 일치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뚜렷이 선택해서 해내는 친구가 부럽다. 그들은 만나면 살아 있는 것 같다. 어느덧 의젓해졌고 자신만만해 보인다. 무슨 일을 하든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아주 당당하다.

어떤 때는 그가 부모를 위해 사는 건지 부모가 그를 위해 사는 건지 잘 알 수 없다. 분명히 부모는 그를 위해 애쓰는 것 같은데 그런 분명한 것조차 혼동될 때가 많다. 정말 그가 그 자신을 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군이 드디어 책방 점원이 되고 싶다는 말을 부모에게 했다. 아버지는 우선 이해해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늦잠꾸러기가 일찍 일어나 매일매일 출근한다는 일이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도에 그만 둘 건 뻔한 일인데 그동안 공부만 못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셨다. 아버지는 그가 평소 책을 좋아하고 또 원하는 일이라니까 해보고 싶으면 한 번 해보라는 거였다.

그들은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되자 의사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기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아오게 되었다. 진찰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들 셋은 의사 앞에서 또 한 차례 똑같은 토론을 반복했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군이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책방 점원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 보겠노라고 했다. 그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순간에 부모와 타협했던 것이다. 그는 얼마 있다가 기어코 자기 마음대로 한 번 시도해 봤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과일도매상의 점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계면쩍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안했지만 실은 이 일로 해서 귀중한 경험을 한 가지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못해본 그런 경험이었다. 자기자신을 자기 뜻에 따라 움직여본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이런 시도를 또 해볼 것이고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또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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