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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밖에 길이 없어


구양은 중3이다. 작년부터 간혹 머리가 아프고 잇몸이 아프고 목이 아팠지만 치과에서나 이비인후과에서는 괜찮다고 해서 그때마다 가까운 내과에 들러 도움을 받곤 했다. 평소에 편식하는 버릇이 있어 몸이 약하다고 보약도 많이 먹었다. 중3이 되면서 병원에 가는 횟수가 더 많아졌고 그때마다 조퇴할 수 밖에 없어 국어를 담당하시는 담임선생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구양도 걱정이었다. 이런 상태로 중3 한 해를 무사히 지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러웠다. 수업시간에도 불안했다. 언제 그런 고통이 난데 없이 찾아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걱정했던 일이 기어코 벌어지고 말았다. 5월 초였다. 4교시 국어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질문해가는 방법으로 수업하시곤 하셨다. 구양은 그 전날도 몸이 안 좋아 조퇴를 했고 병원에 가서 주사맞고 하느라 예습을 못했었다. 자기 차례가 될까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대답을 못하거나 틀린 대답을 하면 벌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서 있어야 했다. 구양은 그게 또 창피했다. 그날도 대답을 못했고 서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서 있는 동안에 증상이 생길까봐 조마조마했다. 그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께서 야단치고 계셨다. "그래가지고는 고등학교도 못 가겠다." 애들이 "그 애 공부 잘해요"하며 키득키득 거렸다. 구양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며칠 있으면 중간고사였다. 이번엔 성적이 나쁠 것 같았다. 공부를 못했으니까. 그래도 중 2까지는 10등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십등을 넘어서면 고등학교에는 가겠지만 대학은 포기해야 하는 그런 중요한 분기점이라고들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십등은 유지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구양한테 교무실로 오라고 하며 교무실을 나가셨다. 애들이 빨리 가보라고 재촉해서야 서둘러 교무실로 갔다. 이젠 또 늦게 왔다고 혼났다. 수업시간에 태도가 좋지 않다고 나무라셨다. 담임시간에도 그러면 다른 선생님 시간에는 얼마나 좋지 않았겠느냐며 변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마구 혼내셨다. 하긴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조퇴하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담임선생님께서 더 잘 아실테니까. 구양은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No Stress
[삶의 지혜][걱정 그만][국내주말여행][음식요리법]

수업시간이 다 끝나고 자율학습시간 직전이니까 오후 네 시쯤 되어서였다. 친구들과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었다. 숨도 쉬기 어려웠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친구들이 걱정하며 떠드는 얘기를 알아 들을 수는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말로 되어 나오질 않았다. 구양은 양호실로 옮겨졌고 어머니가 달려와 노상 다니던 내과 의원에 가게 되었다 안정은 되었지만 잠들기가 어려웠다. 간혹 숨쉬기도 곤란했다. 친척들이 모였는데 몇 개월 동안 정신치료를 받고 있던 외삼촌도 오셨다. 어머니와 의논하시면서 정신과 의사한테 진찰을 받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구양은 예쁜 여학생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진찰실로 들어왔다. 두통과 치통을 호소했고 가끔 목이 아프다고 했으며 심장이 뛰기도 하지만 "심장이 쓰린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구양은 웃었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숨을 못쉴 때라고 했다. 꼭 죽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특별히 때가 없이 그렇다는 거다. 잠잘 때도 그렇고 공부할 때도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어제가 처음이라고 했다. 평소 성격은 완벽하고 꼼꼼하며 깔끔하고 철저해서 나무랄 데가 없는 애라고 했다. 함께 온 외삼촌이 이렇게 어린데도 정신치료가 가능하겠느냐고 미리 의사를 앞질러 물었다. 우선 항불안 약물을 소량 처방해주고 월요일 정규수업이 3시에 끝난다고 하니까 그날 오후 3시 30분에 약속했다.

약을 복용하고부터 편안해졌다고 했다. 졸리지도 않고 공부도 잘 되더라고 했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구양도 선생님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선생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날 그 일만 없었다면 쓰러지는 병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국어시간에는 수업이 잘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그것도 선생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어과목이 중요한 과목인데 큰일 났구나. 성적이 떨어져서 나중에 대학가기 어렵게 되면 담임선생님께서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구양은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듣는 아이였다. 말은 안했지만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 병의 원인이 뭐예요?"
"나도 몰라. 그걸 한 번 찾아보려고 해."
"저도 모르겠어요. 외삼촌이 그러는데 꿈으로 알 수 있다면서요?"
"네가 그렇다고 믿으면 그럴 수도 있지"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저도 해볼 수 있어요?"
구양은 삼촌 책을 빌려 보기 싫다고 했다. 자기 책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꿈분석에 관한 안내책을 소개해 주었다. 구양은 만족한 듯이 일어섰다. 다음주 월요일에 가져온 첫번째 꿈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갔는데 변기와 세면대의 구멍이 모두 막혀서 더러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러웠다. 동생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니까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동생의 등을 보니까 구데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소리를 질렀다. 내 등에도 묻어 있을 것 같아 쳐다보지도 못하고 나는 마구 뛰며 어떻게 하냐고 소릴 질렀다. 욕조안에 물이 받아져 있길래 그 물속으로 들어가 벌레들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꿈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단계별로 순서에 따라가자면 꿈 속의 주인공의 행동을 명확히 하고, 그 다음 꿈내용 중에서 가장 엉뚱하고 말도 안되거나 재미있는 부분인 촛점을 찾는다. 간혹 이 촛점이 꿈이 중심이 되는 부분일 수가 있다. 구양은 동생의 등에 구데기가 묻어있는 것이 촛점이라고 했다. 이 부분만 분석해도 이 꿈이 꿈꾼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첫 시간이라서 꿈분석의 세번째 단계인 상징의 번역과 적절한 연상을 시켜봤다.



동생 : 나 다음으로 난 아이. 한 핏줄을 이어받은 가장 가까운 사이. 내 몸과 다름없는 아이.
등 : 몸의 뒤, 안보인다.
구데기 : 징그럽다. 보기 싫고 더럽다.
화장실 : 세수하고 대소변 보는 곳, 깨끗해지고 찌꺼기를 내버리는 곳.
욕조 : 목욕하는 곳, 깨끗해지려고.

꿈분석의 네번째 단계란 꿈속에 나온 각각의 상징들을 원래 의미하는 것으로 바꿔서 꿈의 줄거리를 다시 고쳐 써보는 과정이다.

깨끗하게 하고 찌꺼기를 내보낼 수 있는 곳이 고장나 있다. 내 몸과 다름이 없는, 나 같은 아이의 안보이는 곳에 징그러워 보기 싫고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 나의 안보이는 곳에도 묻어 있다. 그걸 깨끗이 씻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양 자신이 꾼 꿈인데 그 꿈이 구양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으냐고 묻자, 구양은 자기자신한테 깨끗이 씻어내야 할 것이라든지 더러운 찌꺼기 같은 것이 있으니까 치료를 받으라는 뜻인가 보다고 대꾸했다. 그럼 그렇게 해보자고 동의했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두 번째 꿈을 가져왔다.

낮에 집을 혼자 보고 있다. 초인종 소리가 났다."누구세요."하고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때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서 현관문에 뚫린 구멍으로 내다보니 어떤 남자가 서 있다. 도둑놈처럼 보였다. 무서워서 인터폰으로 경비 아저씨한테 여기 도둑이 들어왔으니 빨리 와달라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그 도둑이 자기를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도와줄 생각을 안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아저씨가 올라오겠다고 했다. 그 사이에 도둑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서 끊기고 생각이 안남)그 도둑이 집에 들어와 있고 경비 아저씨와 나는 현관 밖에서 문을 열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 꿈에서 구양은 쓰러져 있을 때의 그 묘한 느낌을 느꼈다고 했다. 굉장히 불안할 것처럼 생각됐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이 꿈은 전체가 이상한 꿈이라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도둑이 무섭다고 곧바로 올라오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서야 올라온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역시 도둑이 안에 있고 구양과 경비 아저씨가 잠긴 문 밖에서 문을 열라고 도둑한테 소릴 지르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도둑이란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무섭고 나쁜 사람이다. 경비 아저씨란 도둑이나 수상한 사람, 잡상인처럼 귀찮은 사람을 못 들어오게 지켜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무섭고 나쁜 것이 안에 있고 지키는 사람은 밖에 있다는 꿈이라고 요약했다. 위치가 바뀐 것이라고 해줬더니 구양은 "아하, 알겠어요. 밖에 있지 않고 내 속에 있구나!" 했다.

다음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구양은 꼭 와야 하느냐고 물었다. 올 필요가 있으면 오라고 했다. 하지만 바쁘다면 이 다음에라도 의사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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