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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연습


고등학교 평준화와 학군과 영동개발이라는 기발한 정책이 '8학군病'이란 새로운 병을 퍼뜨리고 말았다. 신종의 유행병은 처음부터 공포의 대상이다. AIDS와 마주치면서 새로운 유행병이 얼마나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두렵게 하는지 우리는 철저히 체험하고 있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데 묘미가 있다. 물론 피나는 노력을 해야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지방도시에 가보라.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공부께나 한다는 녀석들은 대부분 도청소재지로 나가 있다. 또 도청소재지의 아이들은 서울로 와 있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서울과 지방 거점도시는 자꾸 커지는데 소도시는 의구하다. 모교가 있는 고향에서의 동창회보다 도청소재지에서의 동창회가 조금 더 융성하고 서울에서의 동창회가 가장 번창하고 있다. 말은 제주도에 갈 수 없지만 사람은 아직도 서울로 서울로 모인다. 모처럼 시골로 간 부모도 아이들만큼은 서울로 보낸다.

서울에서 두세 시간 걸리는 지방도시의 공무원과 정부투자기관의 임직원과 대학교수들 중에는 홀아비가 많다. 토요일 오후 1시 서울행 기차와 고속버스는 빨래보따리를 든 안면있는 얼굴들로 꽉 찬다. 월요일 아침 7시 차표도 이들의 것이다. 아이들이 좀 커서 부부가 함께 내려가(?) 있는 경우라면 시외전화비가 꽤나 나올 것이다. 밤 8시쯤이면 서울집으로 확인전화를 해댄다. 큰딸로부터 막내딸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목소리를 확인한다. 만일 늦는 딸이라고 있으면 전화통 옆에 붙어있게 된다. 귀가하자마자 전화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하달해 놓았으니까. 딸은 "자는 딸도 다시 보자"라는 구호처럼 불안하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안전한 법이다.

학군이라는 제도가 없을 때에는 지방에 가있는 몇 년 동안 그 곳 국민학교와 중학교 정도는 마칠 수 있었다. 어떤 멋있는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국민학교는 시골에서, 중학교는 중소도시에서, 대학은 대도시에서"라고. 이젠 아니다. 강남의 여고에 진학하자면 적어도 중학교 1학년 1학기에는 8학군 지역으로 가족 전체가 이사와야 한다. 그래야 가능하다. 왜 하필 8학군이어야 하나? 그건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래야 한다. 지방근무는 서울로 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일시적인 정거장이다. 승진은 이동을 전제로 한다니까. 가족들이 사는 서울로 목을 길게 뽑아 향하고 있다. 언제든 서울로 갈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서울로 발령나면 '영전'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별을 시작한다. 탯줄이 갈리면서 어머니와 분리된다. 유치원을 마칠 때 친구들과 선생님과 작별한다. 그리고도 또 몇 번인가의 입학과 졸업을 반복한다. 사내들은 입대와 제대를 경험한다. 결혼도 이별의 하나다. 그래서 예전에는 신부가 울었다. 우리는 매년 연말이면 망년회를 한다. 送舊迎新이다. 추상적인 개념인 시간과도 이별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끝내는 사별(死別)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결국은 산 사람으로부터 내가 떠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매년 제사라는 형식으로 죽은 자와 만나고 헤어진다. 나의 죽음으로써 이별은 완성된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만한 생활상의 변화 중에서도 이러한 이별과 관련된 사건이 많다. 43개의 항목 가운데 12개나 된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든지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일은 20점짜리 스트레스다. 졸업은 26점이고, 자녀의 결혼이나 타지방으로의 유학이 29점, 가까운 친구의 죽음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37점이다. 퇴직이 45점, 결혼이 50점, 가족의 죽음이 63점, 이혼이 73점, 그리고 배우자의 죽음이 최고의 스트레스로서 백점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우리의 아이들한테 너무나 일찍 얹혀준다는데 문제가 있다.

자녀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그 지방의 소식은 별로 흥미가 없다. 중앙일간지에 보도되는 교육제도며 교통대책에 대해 더 잘 안다. 현재의 직책이야 별 사고 없이 때우면 된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크면서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그것 또한 섭섭하다. 가족과 이별한 쪽이 아버지기 쉽다. 아버지가 서울로 유학올 시절이야 가족은 모두 시골에 고향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톨이 신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요구가 지나치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등 따듯한데"라는 전제가 말머리마다 붙는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성장과정을 모를 뿐만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미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다. 방글라데시 이야기 쯤으로 안다. 아이들이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 그 당시 우리가 싸웠던 가난은 우리 세대로 끝막음하자. 그러한 추억과도 이별이다.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는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들의 팔자다. 그러한 팔자가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반복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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