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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도가 우리를 구해 줄 것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엔 두 가지 답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쪽은 제도라든가 법률이 인간의 행동을 규제해서 그에 알맞는 생각을 가져오리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에선 어떤 제도라는 것을 한 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긴 어떤 제도가 생겨난 것은 우연이거나 급작스럽게 만들어지는 일이 아니기 쉽다. 그러한 제도가 나타나게 된 상황을 잘 들여다 보면 그럴만한 어떤 이유가 있음직하다. 그럴듯한 이유가 없을 때에는 그 제도는 쉽게 폐기되든가 거듭된 수정작업을 거쳐야 한다. 억지스런 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어거지로 붙잡고 있으면 후유증만 커진다. 그렇다고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바꾸는 朝變夕改나, 간교한 꾀로 속인다는 朝三募四여서도 안된다. 그래서 어렵다. 그 중간쯤 간다면 좋을텐데. 더구나 어떤 제도가 나타났을 때 누구나 만족할 수 없다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누구에게나 만족을 줄 수 있고 후유증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그런 제도를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사실 그럴려고 무척 애쓴다. 행정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노력하고 있다. 목표도 뚜렷하다. 그것이 바로 전인교육(全人敎育)이다. 지식이나 기술 등에 치우침이 없이, 인간성을 전면적으로 조화적으로 발달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교과서마다 맨 앞에 실린 '국민교육헌장'도 전인교육을 통해 조국과 민족과 인류에 이바지하는 교육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에 치우치지 않고 인간성의 발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목적에 적당치 못한 구석이 있다면 그런 제도는 점차 손질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몇 가지 제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첫 번째가 학군과 평준화이다. 이 제도는 어린 아이들을 교통지옥과 중학입시 라는 첫번째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자라는 고향없는 아이들에게 어릴 적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친구가 된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중학입시라는 입시지옥으로부터 뛰쳐나와 '극히 한 때지만' 신나게 놀 수 있도록 해 준 셈이다. 하지만 간혹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과 또 그렇게 크는 후레자식도 생겼고 끼리끼리 노는 패거리도 생겼다. 어떤 지역의 아파트값도 뛰어 오르게 했다. 위장전입이라는 새로운 규칙위반도 만들어졌다. 지역간의 시기심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 반 아이들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격한 학력차이로 친구들간의 갈등과, 또 가르치기 어려운 선생님의 고민도 새로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틈새에서 새로운 명문고교가 탄생했고 옛 명문출신 선배들이 '뽑돌이'라는 이름으로 후배들을 무시하게 되었다. 소위 그들이 말하는'전통'이란 것이 무너져 내렸다. 고등학교만 따로 설립되다보니 학급수가 배로 커져 동기동창이란 유대관계가 희미해지고 그 대신 반상회를 닮은 반창회(斑窓會)란 새로운 모임이 유행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내신제도이다 현재의 내신성적 산출방법이 교과성적과 출석점수를 합산하는 방법으로 되어 있다. 그 근본취지는 입시 전문기관으로 변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을 전인교육의 틀 속으로 넣어 보자는 안타까운 시도였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 의도가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괄시 받던 과목의 담당선생님들께서도 기를 펴게 됐고 덕분에 아이들은 국어, 영어, 수학 이외에도 음악, 미술, 체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목을 충실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극성스런 부모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에게 미리부터 음악, 미술, 체육과 관련된 과외를 시키기 시작했다. 아니 유아원부터 입시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입시준비 기간이 14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물론 세상살이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앞으로 살아갈 요즘 아이들의 준비도 많은 분야에 걸쳐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이젠 컴퓨터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컴퓨터학원이 꼬마들로 만원이다. 과목이 추가될수록 아이들이 다녀야 할 학원도 그만큼 많아진다. 입시과목도 부모들 때보다 3배 이상 늘었다. 그렇게도 많은, 세계에서 최고로 많은 26가지나 되는 과목들을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팝송이나 새로운 춤, 새로운 전자 게임 외에는 부모세대에 비해서 '인간성이 전반적으로 조화로운 교육'이 더 잘 이뤄지는것 같지 않다.

이삼십년 전에도 대학입시 경쟁은 치열했다. 명문대학의 그럴듯한 과는 10대 1이 넘기도 했다. 지원자는 많고 입학정원이 한정되어 있는 한 경쟁은 있기 마련이다. 옛날에도 친구간에 경쟁심이 있었다. 선생님들께서도 그러한 경쟁심을 은근히 부추기셨다. 공부 잘하는 몇몇에게 "하룻밤 안 자면 그만큼 효과가 있는 법"이라고 은밀하게 말씀하셔서 자기한테만 그런 줄 알고 밤새워 공부하게끔 만들기도 하셨다. 새로운 문제집을 추천해 주시면 뒤질세라 밤새워 보고는 친구한테 가서 얼마만큼 봤는지 슬쩍 떠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친구의 성적이 떨어져야 내 성적이 올라가는 그런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다. "남의 성공이 나의 파멸의 근본"(고교교육헌장)은 아니었으며 "남의 실패를 모아 줄기찬 배타주의로 명문대에 입학하자"고는 하지 않았었다.

앞으로 행동발달상황과 특별활동상황까지 점수로 반영한다면 또다시 어떤 과외나 치맛바람이 휩쓸고 지나가게 될지 염려스럽다. 더구나 내신 반영 비율이 현재의 30%에서 40%로 높여질 때에는 그 경쟁양상이 더욱 치열해질 것 같아 정말 두렵다. 아무리 부모들한테 현재의 내신점수가 대학입시 총점의 3.7%에 불과하다고 설명해줘도 내신성적을 포기할 부모는 없다. 입시의 당락은 1점 이하로서도 결정나는 법이니까. 더구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을 10등급으로 철저히 나누고 자기자신도 어느 등급으로든가 분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게 싫을 땐 적당한 시기에 학교를 자퇴하면 그만이다. 검정고시에서 좋은 성적으로 더 나은 내신 등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교육여건이 좋고 경쟁이 치열한 고등학교에서 자퇴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사실 문교부나 교육에 대해 연구하고 염려하는 여러 연구기관과 단체들도 멋들어진 입시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다. 그럴바엔 차라리 가이드라인만 제시해놓고 대학에 맡겨두라고들 한다. 최근에는 입시부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젠 여러 목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큰소리들을 치고 있으니까 대학의 양심에 맡긴다 해도 크게 어긋날 것 같지는 않다. 정말 대학 나름대로 맡겨두라고 하고 싶다. 사립대학 설립자의 자손들이 그 대학을 못 들어가는 우스꽝스런 그런 일조차 경험했으면 됐다. 그만큼 공정하고 민주적인 풍토라는데 뭘 더 염려하는가. 크게 빗나가지만 않으면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한테 알맞는 그런 제도가 저절로 생겨날 거라고 믿는다. 한꺼번에 누구한테나 꼭 맞는 그런 제도를 일순간에 만들어낼 수가 없더라는 쓰디쓴 체험을,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어온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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