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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공포 -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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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2006-09-20

“큰어머니와 고모, 사촌형과 사촌누나가 병원에 왔다. 누워 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가족을 보면서 연락을 끊고 살았던 것이 미안해졌다. (중략) 하지만 다시 왔을 때의 가족들은 분명 좀 전과는 다른 표정과 분위기로 들어와서 건강하라는 말을 하고는 나갔다. 오기 전에 병원비를 당연히 지불하겠다고 친구에게 말을 했다는데 나가면서 병원비를 지불할 수 없다고 하며 갔다고 했다.” (HIV/AIDS감염인의 인권증언)

몸이 아프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그것은 물리적인 치료와 간병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저 ‘많이 힘들지?’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일 수도 있다. HIV/AIDS감염인은 최소한의 위로조차 꿈꾸기 힘들다.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가족과 친구들마저 차갑게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 HIV/AIDS감염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지난 17일 대학로 한얼소극장 무대에 HIV/AIDS감염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인권 현주소를 증언하기 위해 나섰다. ‘HIV/AIDS감염인들의 인권 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에서 준비한 이 자리는 감염인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서 에이즈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타난 지 19년 만의 일이다.


증언 자리에 선 세 명의 감염인들과 영상을 통해 증언을 전한 감염인들은 이 사회가 얼마나 HIV/AIDS에 대해 무지한 지, 감염인들을 어떻게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는지를 고발했다.


폐렴인 줄 알고 입원했던 C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HIV감염사실을 통보 받았다. 보호자에게 알려도 되냐고 묻는 의사에게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병원 측은 이미 본인에게 알려주기 이전에 보호자로 온 누나에게 감염사실을 통보한 상태였다.


양성판정을 알리던 레지던트는 누나에게 “평소에 동생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그런 병에 걸렸냐”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절망적이지는 않았다”는 C씨의 누나는, 그 때 받은 모욕에 치를 떨 정도였다.


직장에서의 차별, 경제적 곤란으로 이어져


HIV/AIDS감염인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직장에서의 차별이다. 감염사실이 회사에 알려질 경우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석주씨는 직장 내 건강검진을 통해 HIV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상사에게 알려지게 됐다. 직장 내 건강검진에 HIV테스트가 포함되어 있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직장에 통보되기 때문이다. 상사는 “직장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질적인 업무를 할 수 없는 한직으로 보직발령이 났다. ‘나가라’는 소리와 같았기에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





감염사실을 숨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치료를 위해 계속 약을 먹어야 하고 매달 한 번씩 평일에 진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 형석씨는 건강이 상해 하반신이 마비된 적이 있었고, 지금도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상태다. 보기에 ‘몸이 안 좋다’라고 인식되니까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보기에 건강한’ 다른 감염인들의 경우 지속적인 투약과 진료에 대해 주위에서 이상하게 여기고 의심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어서 감염인들 중에 치료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직장에서 차별 문제는 경제적 곤란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감염인으로 등록되지 않거나 확정판정을 받기 전의 의료비는 감염인 부담이고, 기회감염(2차감염, 면역성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 병원성이 약한 미생물에게 감염되어 생기는 질환)으로 인해 생긴 질환도 연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지원을 받기 어렵다.


감염인들 대부분 가족에게도 감염사실을 밝히지 못해 경제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고, 생활비 부담도 만만치 않지만 부양가족 등을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도 힘든 형편이다. 한 감염인은 “삼성생명이랑 교보에 들어놓은 보험이 있는데 진단서에 에이즈라고 적어서는 보험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며, “기껏 보험을 들었는데 아플 때 쓸 수도 없다”고 허탈해했다.


진료거부, 의료진도 편견에서 예외 아니야


HIV/AIDS감염인들에 대한 편견과 공포는 의료진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형석씨는 한 치과에 찾아가서 “HIV감염인인데 치과진료를 받고 싶다”고 하자, 의사가 접수처로 데리고 나가더니 “치료를 해줄 수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장갑 끼고 소독하고 치료하면 된다”고 했더니, “경험이 없으니 종합병원으로 가라”, “1회용 장갑이 없어서(?) 치료할 수 없다”면서 계속 거부했다.


영상 증언 속의 한 감염인은 병원의 진료거부에 대해 “칼만 안 들었지 ‘너 나가 죽어’ 라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구치소나 교도소에서의 진료행정은 더 심각하다. 원치 않게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15일간 구치소에 가게 되었던 요한씨는 감염인들만 격리 수용되는 병실에 이송이 되었는데, 수용된 다인실은 소독기조차 갖추고 있지 않고 개인의 식기도 구분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감염인이라고 해도 개인의 건강 상태와 보유질환이 달라서 서로에게 기회감염이 빈번할 수 있는데 이런 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 “정확한 정보를 주어야”




HIV/AIDS감염인들이 심각한 차별을 겪는 것은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공포는 외부의 차별을 가혹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감염인 스스로 치료할 기회를 방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감염 이후 HIV/AIDS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한 단체 상담을 하게 되었다는 석주씨는 “회원 상담을 하면서 질병에 대해 잘 모르는 감염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감염되면 죽을 날만 기다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살거나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감염인들은 이와 같은 상황이 정부의 잘못된 에이즈정책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감염인들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


증언자들은 “에이즈퇴치연맹 등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감염인이 아니라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포스터 등을 통해 마치 ‘콘돔’만 쓰면 에이즈 문제가 끝날 것” 같이 말하거나, “동성애자만 묶어놓으면 예방될 것처럼”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감염인의 인권을 위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관련 단체들 중 감염인들이 이사로 있지 않은 곳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감염인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석자들은 “정부와 언론이 감염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들에게 HIV/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줄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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