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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에이즈감염자 쉼터 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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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2006-09-20

1994년 3월 어느 날. 40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전 목사님이 소외된 자들의 인권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전화했습니다. 저는 에이즈 감염자인데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역을 해주시면 안될까요?”

나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그 남자가 며칠 후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쉼터 외에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쉼터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고 이들과 함께 사역하다가 에이즈에 감염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도 앞섰다.

20년 경력의 요리사인 그는 술을 마신 뒤 몇 차례 사창가를 찾았는데 거기서 감염된 것 같다며 담당 부서 공무원이 자신을 찾아와 알려줄 때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고 고백했다. 아직은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만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이면 힘이 될까 해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그를 돌려보내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눈을 감고 기도하는 순간 주님이 바로 응답하셨다.

“가장 낮은 곳에서 진정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라. 내가 바로 네게 그 사명을 준 것을 잊었느냐?”

주님의 명령은 가장 빨리 실행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그해 6월 첫 주일에 대한민국 최초로 에이즈 감염자들의 쉼터를 개원하고 그 이름을 ‘희망 나눔터’로 정했다. 개원하는 데는 ‘에이즈 박사’란 별명까지 얻은 주혜란 박사의 관심과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안식과 자활,신앙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10여명이 모였는데 나중에 32명까지 인원이 늘어났다. 그리고 1년 뒤에는 ‘벼랑에 선 사람들’이란 책자도 내고 ‘에이즈와의 전쟁 선포식’도 가졌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에이즈 환자가 드나들면 동네 집값이 떨어지고 이미지가 나빠져 장사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병원에서도 에이즈 감염자를 보면 피하기 바빴으니 주민들이 항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주민들은 내게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무조건적인 폐쇄를 요구했다. 건달을 보내기도 하고 와서 기물을 부수기도 했다. 이번에는 아주 끈질겼고 양보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달리다 못한 나는 결국 숨어야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다. 서울 근교 기도원을 찾아다니며 기도에 몰입했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응답은 똑같았다.

“어차피 네 사역은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라.”

또 한번 ‘죽으면 죽으리라’는 깡이 살아났다. 나는 하나님이 보호해주지 않으셨다면 군대에서 사고로,공동체에서는 폭력배들에게 몇 번이나 맞아죽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지금까지 많은 열매를 맺어오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내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당당하게 맞섰다. 이제 누구와도 맞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강해지자 상대가 약해졌다.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의 결과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보살피심에 감사하며 사역에 더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역 보너스를 내게 하나 더 얹어주셨다. 에이즈 환자 쉼터를 만든 내게 이번에는 성적 소수자,즉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안드로지니 등 내가 몰랐던 이들까지 보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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