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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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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  2006.07.25

김정훈/ 전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

케냐 서부 지역 호마베이의 에이즈 클리닉에서 일하던 때, 매주 우리는 항바이러스치료(ART)를 무상 공급하기 위해 인접한 오지에 이동 진료를 나갔다. 그중 한 마을에 늙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을 찾던 열두 살짜리 소녀가 있었다. 해진 신발과 누더기 옷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하던 얌전한 아이 로다. 부모님을 에이즈로 잃고 자신 역시 항바이러스제제를 투약 중이던 깡마른 소녀였다.

어느 정도 라포르(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갈 무렵, 로다가 한 달이 되어가도록 약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약제 내성을 방지하기 위해 항바이러스약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어야 한다. 따라서 하루라도 진료일을 어기는 것은 환자의 건강뿐 아니라 역학적 관점에서도 심각한 일이었다. 결국 사람을 보내 아이를 찾아오게 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로다는 할머니가 기력이 약해져 일을 못하게 되었고 병원에 올 교통비도 마련할 수 없었다고 했다. 로다가 사는 곳은 이동진료실을 차린 마을에서도 걸어서 4시간 이상 걸리는 외딴 곳. 동정심은 금물이라는 규칙을 깨는 수밖에 당장 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나는 로다에게 몇 실링을 쥐어주며 다음 진료일에 오는 교통비로 사용하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보다보다(대중교통 수단인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는 로다를 볼 수 있었고, 나는 매번 다음 진료일의 차비로 로다에게 몇 푼씩 쥐어줬다. CD4 수치는 올라가고 로다는 건강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로다는 또다시 진료 약속을 어겼다. 한 번 더 사람을 보내 아이를 데려오게 했다. 약간 주눅 든 표정으로 나타난 로다의 발에는 늘 신고 다니던 밑창이 닳은 슬리퍼가 아닌 빨간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예쁜 구두를 신었구나” 하고 말문을 연 뒤 왜 진료일에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로다는 대답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무안해진 나는 더 이상 진료를 진행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까, 이웃의 몹쓸 청년들에게 나쁜 짓을 당한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들었다. 현지인 상담원에게 로다의 상담을 맡겼다. 잠시 뒤 상담원은 로다가 운 것은 단순히 겁에 질렸기 때문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연인즉 로다는 약을 타러 오는 대신 장날 새 신발을 사는 데 돈을 써버렸다는 것이다.

열두 살.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나이. 가난하다고 해서,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해서 예쁘게 보이고 싶은 소녀의 욕망을 탓할 순 없다. 고민 끝에 이웃에 사는 다른 감염인에게 로다의 병원 방문을 맡기는 것으로 차마 웃지 못할 해프닝을 마무리했다.

최근 케냐 등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에이즈 증가율이 주춤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2년 전 생산 연령 인구의 3분의 1이 에이즈 감염인이었던 호마베이 지역에서 항바이러스 제제를 투약받는 사람은 필요한 이의 10%에 불과했고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항바이러스 제제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병원은 그 지역에서 딱 한 군데였는데, 그나마 인도 등지에서 생산되는 카피 약품을 싸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에서 주요 쟁점이었던 의약 부분은 미국 쪽의 공세로 끝났다고 들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통과시 국내 약값의 인상이 예상되는 이 사안을 바라보며 노파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몇 년 뒤 한국에서 또 다른 ‘빨간 구두 아가씨’를 만나게 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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