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백신 개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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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보다 예방이 훨씬 낫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이 말은 특히 아직 특효약이 없고 치명적인 전염병인 에이즈 환자에게 딱 들어맞는다.에이즈는 발견 당시부터 전세계인을 공포보다 더한 공황으로까지 몰아넣은 전세계적 전염병(pandemic)이다.

이 전염병의 발걸음이 언제 멈출지 아무도 모른다. 이미 3천만명이 넘는 인류가 에이즈에 감염됐고 이 순간에도 매일 1만6천명이 넘는 새로운 에이즈 감염인들이 지구상에서 생기고 있다. 그래서 인류를 괴롭히는 그 많은 전염병 가운데 에이즈 만큼 예방백신 개발에 목을 매고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에이즈 백신 개발은 과학자에게는 노벨상을 받게 하고 기업에게는 돈방석에 앉도록 만들 것이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것이 1981년(더 엄격하게 따지면 1979년이지만 당시는 의사가 어떤 질병인줄 몰랐고 81년에야 후천성면역결핍증임을 알았다)이고 불과 2년만인 1983년 병원체가 바이러스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렇게 빨리 에이즈의 정체를 밝혀냈으므로 백신 개발도 시간 문제라고 여겼다.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10년 안, 다시 말해 90년대 초반까지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탕탕 쳤다. 하지만 이는 빗나간 예측이었으며 뒤늦게 과학자들은 너무 자신만만했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들이 당시 큰 소리를 쳤던 배경에는 급속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생명공학 기술과 미국 등 선진국들이 백신개발에 투입한 엄청난 비용, 세계 각 유명 연구소와 제약업체,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의 치열한 개발경쟁 등이 있었다. 또 그동안 과학자들은 백신개발로 바이러스 전염병인 두창(천연두)을 1977년 굴복시켰으며 소아마비 바이러스로부터도 항복선언을 받기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즈 바이러스는 달랐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성질이 급한 에볼라 바이러스와 달리 자신이 감염시킨 숙주인 인간을 며칠 만에 죽도록 만들지 않는다. 수십만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정교한 면역체계를 서서히 무너뜨리며 10년이고 20년이고 공존하는 느림보 바이러스다. 그리고 이 숙주에서 저 숙주로 넘어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이런 능력은 독감바이러스(인플루엔자)보다도 뛰어나고 감기바이러스와도 쌍벽을 이룬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변신 능력은 어렸을 때 즐겨읽었던 탐정 소설 <괴도 루팡>에서 교묘한 변장술을 자랑하던 도둑 루팡을 연상케 한다. 텔레비전 만화영화로 방영돼 인기를 보았던 <로보트 태권브이>에서 주인공 변신로봇을 연상해도 좋을 듯하다. 루팡도 변신술 때문에 수사망을 교묘하게 빠져 나갔다. 로보트 태권브이도 그 변신술 덕분에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결국에는 물리쳐 무적로봇임을 자랑한다. 

1983년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할 당시만 해도 이런 놀라운 변신술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 바이러스는 성질이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지금은 HIV-1형과 HIV-2형으로 부르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학술적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Human Immunodeficiency Vius)라고 부르고 있다. 이 HIV-1은 그 혈청형에 따라 10여개의 아형(亞型)으로 나눈다. 이는 쉽게 말하면 인간도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種)이지만 흑인, 백인, 황인종 등으로 나뉘고 다시 각 인종별로 앵글로색슨족, 켈트족, 한족, 몽골족, 아이누족 등 많은 종족이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이처럼 변신의 귀재라고 할지라도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에이즈가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인명 손실과 경제적 손실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어떤 나라는 에이즈의 창궐로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가 국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고 부모 모두를 잃은 수많은 고아들이 비참한 생활 속에서 고통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8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에이즈 백신개발에 매달려 왔다. 미국도 클린턴 정부 당시인 1997년 2007년까지 효과적인 에이즈 백신 개발을 끝낸다는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런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에이즈 백신 개발 과정의 역사를 보면 희망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대니얼 재규리 박사는 1986년 자신이 만든 백신으로 자이르에서 감염인과 자신을 포함한 비감염인을 대상으로 면역접종 실험을 해 윤리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 뒤 새로운 종류의 백신이 많이 개발돼 침팬지 등 영장류와 인간을 대상으로 유효성과 안전성 테스트를 할 때마다 매스컴들이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아직 안전하고 유효성이 있는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현재 여러 형태의 에이즈 백신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각종 바이러스 및 세균 전염병에 적용해왔던 사(死)백신과 약독화생백신에서부터 유전공학을 이용한 외피단위백신, 벡터이용 백신, DNA백신, 바이러스성 입자백신, 펩티드백신 등을 꼽을 수 있다.

단위(Subunit)백신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데 바이러스 입자의 외피를 이루고 있는 당단백질(gp)을 포함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외피단백질은 gp160이라는 긴 하나의 단백질로 먼저 만들어지는데 바깥 부분인 gp120과 안쪽 부분인 gp41로 쪼개진다. 따라서 외피단위백신은 gp160 또는 gp120으로 돼있다. 현재 여러 외피단위백신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2000명이 넘는 자원자를 대상으로 일련의 임상시험중에 있다. 미국에서는 임상시험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 타이에서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이 백신이 만들어내는 항체는 실험실 조건에서 자란 바이러스와 백신에 사용한 균주와 유사한 에이즈 바이러스 균주와 결합해 중화(무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에서 새롭게 분리한 바이러스는 중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재 두가지 종류를 개발해놓고 있다. 하나는 실험실 균주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테스트할 집단에서 최근 분리한 균주로 만든 것이다.

재조합벡터백신은 벡터(운반체란 뜻으로 여기서는 자그마한 이동성 유전자를 말함)라고 하는, 바이러스나 세균의 특이한 유전자를 이용하는데 이 벡터는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자 1 ̄2개를 운반할 수 있다. 이 생백신의 라이프사이클은 벡터에 의해 결정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벡터는 면역반응만 일으키고 원래 모습, 즉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자가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임상시험에 사용된 에이즈 백신의 벡터로는 두창백신으로 사용된 백시니아나 조류발진바이러스를 이용한다. 이 백신은 항체형성을 증강시키기 위해 외피단위백신과 함께 사용하는데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고 외피백신을 먼저 접종한 뒤 1년 뒤에 접종하기도 한다. 단위백신은 항체를 잘 형성시키고 벡터백신은 항체 생성 능력은 크게 떨어지지만 T세포 반응 특히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몸 속의 세포를 죽이는 세포독성 림프구를 많이 만들어내게끔 유도한다. 백신이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3단계까지 거쳐야 하는데 현재 조류발진바이러스를 이용한 벡터백신의 임상 2상 연구가 끝났다. 이와 다른 벡터백신이 미국에서 임상시험 계획 단계에 있으며 우간다와 타이에서 외피단백질과 함께 조류발진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 연구가 임상 1단계가 진행중에 있다.

DNA백신은 핵산백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선택한 유전자를 직접 피부 또는 근육에 주입해 면역화시킬 사람의 몸속에서 면역반응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백신에는 몇몇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자가 섞여 있다. 여러 회사가 DNA 백신을 개발중에 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임상 1단계 연구에 들어갔다.

완전사백신은 완전불활성화백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소아마비, 인플루엔자, 공수병(광견병) 등 여러 다른 바이러스 전염병 예방백신이 여기에 속한다. 이 백신은 바이러스나 세균을 불활성화해 만든다. 현재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단계까지 이른 에이즈 완전사백신은 리뮨(Remune)이라는 상품명으로 알려진 것이 유일하며 이미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대상으로 면역치료제로 연구되고 있다.

약독화생백신은 홍역이나 소아마비 등 광범위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해온 방법이다. 이 백신은 주로 원숭이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SIV를 이용해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몇몇 어른 원숭이와 젊은 원숭이, 어린 원숭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 백신을 맞고 병에 걸리거나 숨졌다. 이 때문에 지난 1997년 미국에 본부를 둔 `에이즈 치료를 위한 국제 의사회'는 에이즈 생약독화백신을 가지고 연구를 할 때에는 작은 규모로, 조심스럽게 관찰하면서 할 것을 요구했다. 이밖에도 에이즈 바이러스와 유사한 비감염성입자로 이루어졌지만 유전물질이 전혀 없거나 대부분이 없는 바이러스성 입자 백신 개발과 에이즈 바이러스 단백질 가운데 특정 펩티드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에이즈 바이러스에 특이적인 면역을 자극하려는 펩티드 백신 개발 등이 시도되고 있으나 고무적인 연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성 입자 백신은 입자가 감염성이 전혀 없다는 이론적인 큰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 이런 백신을 만들어내기란 매우 어렵다.

에이즈 백신 개발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각종 전염병 백신 개발과 관련해 이루어졌거나 시도된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에이즈 만큼 인류가 많은 돈과 과학자들을 동원해 예방 백신개발에 힘써온 전염병은 일찌기 없었다. 백신 개발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10년 안에 백신 개발이 가능하다는 과학자들의 말에 희망을 걸고 싶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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