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와 인권, 그리고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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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견과 낙인의 전염병 역사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한 생명의 가치를 지닌다. 또 인간은 그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고귀한 대접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못배웠다는 이유로, 빈곤하다는 이유로, 장애를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여기에 질병을 가진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에이즈와 같이 치명적이고 아직 치료약이나 예방백신이 없어 인간이 두려워하는 전염병은 더욱 그렇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해 편견과 핍박이 있어왔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한센병(나병) 환자에 대한 핍박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으며 20세기 들어서도 여전했다.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하거나 그들을 외진 곳에 가두어놓기도 했다. 나환자들은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살해당하거나 추방당했으며 두건을 쓰거나 뱃지를 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나환자임을 알리기 위해 방울을 울리고 다녀야 했다. 이런 낙인을 지우기 위해 학자들은 그 원인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사의 이름을 따 나병을 한센병으로 바꾸었다. 이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지금도 우리는 그 오래된 이름, 곧 나병과 그리고 거기에 함께 따르는 사악한 분위기를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편견과 인권탄압이 심각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소록도 집단수용소에서 벌어진 인권탄압 실태가 최근 한 신문의 특집보도로 자세히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우리들을 분노케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50년대와 60년대에도 우리 사회에서 우리들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문둥병’이라는 낙인을 찍어 이들이 “어린이의 간을 빼먹는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퍼트리며 이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하지 않았는가.
역사적으로 한센병 뿐만아니라 페스트, 두창, 결핵 등 치명적이고 감염 결과가 인체에 흉하고 무서운 증상을 가져오는 전염병 환자에 대한 낙인은 너무나 흔한 일어었다. 중세 암흑시대에 유럽 전역을 휩쓸어 당시 유럽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갔던 페스트 대역병 시기에 사람들은 이 전염병이 타락한 인간에 대한 신의 형벌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고통과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신에게 기도하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편타고행(鞭打苦行)이었다. 물론 신에게 기도한 사람들과 자신을 채직질한 사람 모두 결코 구원을 받지 못했다. 신이 내린 형벌이 아니라 병원균에 의한 단순한 전염병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나쁜 공기, 지진, 혜성, 고양이, 개, 집시, 특히 유태인들 때문에 페스트가 유행한다고 믿었다. 물론 그 당시는 미생물이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이다. 마인츠에서만 1만2천명의 유태인이 페스트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몰려 산채로 불타 죽었다.
중세 연금술사로 널리 이름을 떨쳤던 파라셀수스는 당시 유행에 악명을 떨쳤던 매독에 대해 “몇몇장소에서 인간을 공격한 이래 지금까지 사방 곳곳으로 퍼져 나간 이 역겨운 전염성 질병은 애초에 신이 곳곳에서 음탕한 짓을 벌이던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자 내린 천벌이다”라고 말했다. 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내려진 징벌이 매독이라는 생각은 사실상 음탕한 짓을 저지른 공동체에게 내려진 천벌이 매독이라는 생각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오늘날 현대산업국가에서는 에이즈가 바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 에이즈는 개인이 초래한 질병이라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암과는 대조적으로 개인은 물론이고 ‘위험집단’, 다시말해 동성애자나 마약사용자 등의 구성원이 초래한 질병이라는 前현대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얼핏 이는 중립적이고 타당한 면을 지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병이 타락한 공동체를 심판해왔다는 낡은 생각을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조선에서는 호열자로 불렀던 콜레라가 유행하자 영국 감리교 목사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걸리는 질병으로 낙인을 찍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사람도 콜레라에 많이 걸렸음에도 목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1866년 4월22일자) 는 “콜레라는 더러움, 무절제함, 타락을 향한 저주인 것이다.”라는 어느 작가의 글을 싣기도 했다.

2.에이즈와 편견 그리고 낙인

에이즈는 인간이 환자에게 낙인을 찍어 차별을 하는 전염병 계보를 확실하게 이어받은 대표적인 전염병이다. 에이즈는 지금까지 인간이 낙인을 찍어온 전염병의 거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치명성이 그렇고(최근에는 칵테일 치료법으로 에이즈도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병과 같은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접촉으로 주로 전파되며, 말기 환자의 모습이 앙상한 몰골과 피부에 시커먼 육종이 생겨 보기에 흉칙하다는 것 또한 이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전염병이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신이 내린 천벌’이나 동성연애자들이 걸리는 ‘게이병’이라는 전혀 사실과 다른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모두 격리시켜야 한다거나 모든 사람에 대해 수시로 감염여부를 알아보는 에이즈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에이즈가 인간에게 알려진 1980년대 초반뿐만 아니라 21세기 들어서도 그 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게이병’이란 낙인이 남긴 그림자도 여전히 에이즈 환자/감염인 인권에 드리우고 있다. 에이즈 또는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 그리고 인권침해를 인간의 마음에서 박멸하기 위해서는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교육하고 홍보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공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이 에이즈와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몰아내는 효과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에이즈와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해 편견과 낙인을 찍어온 것은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오해에서 비롯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매스미디어가 자리잡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에이즈 감염인 거리 활보’ ‘에이즈 환자를 왜 격리하지 않는가’ ‘동성애자 에이즈 잘 걸려’ ‘에이즈 감염인 잠적, 정부 당국 주소 파악도 못해’ 등의 제목으로 보도할 때 이를 접한 독자나 시청자들은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에이즈 감염인에게 범죄자의 낙인을 찍게 된다. 이런 낙인은 에이즈 감염인/환자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이들은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되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교류도 끊게 된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들 경우, 그리고 이들 중 극히 일부라도 무분별한 성행동을 하게 될 경우 우리 사회에는 더욱 많은 에이즈 감염인인 생기게 된다.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 다시말해 인권침해는 결국에는 에이즈 확산을 부추기는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역병’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과 공포를 뇌리에 떠올린다. 에이즈가 그렇고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도 그렇다. 조류독감이나 광우병도 마찬가지다. 역병은 사람들을 막연하게 두려움에 떨게 한다.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 찾아온 몇몇 게이에게서 희귀질환인 카포시 육종이 발견되면서 에이즈 대유행의 서막이 올랐다. 초기에는 게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면역결핍중후군에게 ‘게이면역질환’(gay related immune diseas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때때로 언론은 ‘게이 암’(gay cancer)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이어 이 질환은 혈우병 환자들과 마약중독자, 아이티인들에게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건요원들은 유쾌하지 못한 유머감각으로 에이즈 희생자들을 ‘4H 클럽 회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homosexual), 아이티인(Haitian), 마약중독자(heroine user), 혈우병환자(hemophiliac)가 그들이다. 이런 불랙유머도 에이즈가 이성애자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증오와 거부감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번져나갔다. 구급요원들이 응급상황에 놓인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이송을 거부하거나 꺼려하는 일도 생겼다. 에이즈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부모가 병실에서 멀리 떨어진채 얼굴도 마주하지 않은채 대회를 나누었다. 한국에서도 첫 에이즈 환자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간호사가 문고리를 붙들고 울고불고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아들이 아버지를 면회오지 않는 일도 있었다. 무서움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성행위나 마약과의 빈번한 관련은 희생자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복수심을 유발하였다. 그들은 종종 동정보다는 본노와 공포로 더해진다. 처음부터 그러한 공포는 이 병의 원인과 전파 방식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했다. 무지와 편견을 퍼트리는데 일등공신 구실을 한 것은 언론이다.

이 질병은 마약중독과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동성애와 매춘에 대한 신의 처벌이다.
핵실험으로 생긴 돌연변이가 무해한 바이러스를 살해자로 만들었다.
말라리아 연구를 하던 연구원이 우연히 다른 영장류로부터 어떤 바이러스에 걸려 그것을 퍼뜨렸다.
HIV(에이즈바이러스)는 미국 정부가 공산주의 국가들을 무너뜨리려고 제조한 것이다.
이 병은 제3세계 국가들을 위해 소아마비 백신을 만드는 데 쓰인 원숭이의 신장에 있는 바이러스들을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많은 미국 흑인들은 HIV가 자신들을 쓸어버리려는 정부의 발명품이고 에이즈 치료제인 AZT(아지도티미딘, 장기복용 때 부작용이 있음)도 자신들을 독살하려는 계획의 일부이며 콘돔 사용교육도 인종 제거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다.

증거도 없고 비과학적인 이런 음모적 주장은 21세기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케냐의 여성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가 그해 10월 나이로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HIV는 서방과학자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몰살하기 위해 생화학전용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비과학적 음모설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이즈는 실체가 없는 질병이고 바이러스 전염병도아니며 엉터리 치료제를 팔아먹기 위한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허구의 전염병이라는 주장까지 종종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도 이런 내용을 크게 소개해 일부 동성애단체 관계자들이 동조를 하기도 했다.

3. 한국 언론의 에이즈 편견 보도와 인권 의식

에이즈 유행초기인 1980년대 국내에서도 언론들은 에이즈 겁주기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기가 에이즈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동양인은 안전하다’ ‘키스나 악수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 ‘공중목욕탕을 함께 이용하거나 변기를 통해서도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언론의 선정적 보도 등으로 에이즈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지니게 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부는 에이즈 감염인이 발견될 때마다 일일이 보도자료를 냈으며 그 보도자료에는 늘 “에이즈 감염자/환자를 특별관리하고 있다”고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보도를 본 국민들은 에이즈 감염인/환자는 24시간 감시해야 할 대상이며 주소를 옮기면 반드시 곧바로 주소지를 신고해야 할 위험인물로 보았다. 언론의 태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에이즈 감염인이나 아직 양성반응자로 확정되지 않은 1차양성반응자(이들중 거의 대부분은 실제 음성임)들의 주소지가 확인되지 않으면 ‘감염인 또는 감염의심자 00명 잠적’이라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국회의원들도 종종 에이즈 감염인의 주소지가 제때 확인되지 않으면 에이즈 환자 관리에 구멍이 났다며 방역당국을 나무랐다. 에이즈 감염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에이즈 감염자/환자를 특별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이런 소동의 최고 정점은 2년전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말기 에이즈 환자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을 이기지 못하고 말없이 병실을 나간 사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이 환자를 찾기 위해 각 파출소에 전언통신문을 보냈다. 그 내용을 보면 키가 얼마고 몸무게가 얼마며 인상착의 등이 들어있었다. 그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니고 병원을 벗어나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사람도 아닌데도 중범죄자 취급을 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경찰의 반인권적 태도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행위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병원을 ‘탈출한’ 에이즈 환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다루었다. 이런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에이즈 환자는 예측할 수 없는 부류의 집단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 환자는 병원을 나간 며칠 뒤 자살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이런 뿌리깊은 감염자에 대한 편견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편견 대상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다음은 경기도 지역에서 발행되는 한 지방신문 2004년 11월1일자에 ‘외국인 에이즈 환자 관리 ‘구멍’’이란 제목으로 실린 기사 내용이다.

경기도내에서 발생한 외국인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강제출국되지 않은채 행방을 감춘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잠적한 지 3~4년을  넘긴 외국인도 많아 이들과의 접촉에 의한 내국인들의 감염확산이 우려되는 등 에이즈 예방대책에 커다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도가 외국인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관리를 시작한 이래 에이즈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수는 12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관련법에 따라 실제로 고국으로 돌아간 에이즈 환자는 80명 안팎에 불과한 반면 40여명은 행방을 감추거나 정밀검사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략)
외국인 에이즈 환자들의 잠적 이유는 현행 출입국관리법상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의 에이즈 감염사실이 확인되면 강제로 출국토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성매매행위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늘고 있어 외국인 에이즈 환자에 대한 관리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사에서 감염자와 환자를 구별하지 못한 것은 그냥 제쳐두고라도 에이즈 감염인이 행방을 감춘 것 자체를 ‘충격’이라고 표현한 것은 국민들에게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주고 인식토록 해야 할 언론이 지닌 사명을 망각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표현과 보도는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어서 이들에게 일반인들이 낙인을 찍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
또 에이즈 감염인과 안전장치를 하지 않은채 성접촉을 할 경우 에이즈 감염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이들과 접촉한 사람은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도해 자칫 일상생활에서도 에이즈 감염인과의 접촉으로 에이즈 전파가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마치 이들 외국인 노동자 감염인이나 감염의심자들이 모두 내국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사람으로 단정해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외국인 에이즈 감염인 잠적’ 또는 ‘외국인 에이즈 감염자 관리 구멍’과 같은 내용의 보도는 최근 몇 년간 우리 언론의 단골 메뉴이다. 에이즈 감염인이나 감염의심자의 행방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것을 충격이라고 하거나 에이즈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고 보도하는 것은 언론인의 인권의식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에이즈 감염자나 감염의심자를 24시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이제 정부도 에이즈 감염자를 관리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언론도 더 이상 이런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10월19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는 정부의 에이즈 관리대책 마련과 감염인/환자들의 인권 증진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의료인, 인권단체 관계자, 에이즈 감염인/환자 단체 관계자 등은 정부의 에이즈 감염인 정책이 감시와 통제 위주로 돼있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감시와 통제는 더 이상 에이즈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낙인이 없는 사회야말로 에이즈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닐 것이다.
한국 언론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 가운데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는 어떻게 해서라도 감염인이나 환자들의 실제 이름을 알아내고 이들과 관련한 상세한 사생활을 알리려 한다는 것이다. 과거 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일부 언론인은 에이즈 감염인이나 환자의 정확한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고 이들과 접촉한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사생활이 노출돼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최초의 수혈감염자도 결국에는 실명이 드러나 고통을 겪기도 했다.
2003년에는 혈우병 환자들의 치료제를 생산하는 국내 한 제약회사를 상대로 에이즈 감염 관련 소송을 벌이는 한 변호사가 기자들과 간담회를 자청해 기자회견을 하면서 참고자료로 가져갔던 자료가 기자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감염인들의 신상이 노출되는 사건이 생겼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수혈받아 에이즈에 감염된 2명의 감염인과 그 가족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정형편,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 등이 자세하게 적힌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기록이 송두리째 기자들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이 자료는 대한적십자사 한 직원이 자료를 몰래 빼내 국내 한 보건의료운동시민단체에 넘긴 것으로 이 변호사가 이를 입수한 것이다. 이런 자료를 실명이 그대로인채 가지고 다닌 것과 이를 무심코 기자들에게 넘긴 변호사의 인권의식과 부주의도 문제이지만 이 서류를 마구 복사해 나눠 가진 기자들이 자세한 취재를 한다는 명분으로 수혈 에이즈 감염인과 그 가족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한 것은 감염자의 인권과 사생활을 무시한 행동이었다. 이런 일이 인권선진국에서 일어났더라면 변호사와 기자들의 인권 의식에 비난이 거세게 일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언론인 스스로가 관련돼 있었으므로 그 변호사는 큰 곤욕을 치를 뻔한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뒤늦게 파장이 엉뚱한 곳으로 번질 것으로 판단한 이 변호사는 감염인의 신상이 자세하게 적힌 자료를 파기해줄 것을 기자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까지도 에이즈 감염자는 힘없는 소수이며 설혹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더라도 언론이나 정부에 이를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에이즈 감염인단체나 에이즈퇴치운동단체 등 어느 누구도 이를 문제삼거나 이 자료의 유포와 관련된 사람들을 고발하지 않았다. 마침내 질병관리본부는 수혈 감염인의 신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자료를 몰래 빼내 유포시킨 대한적십자사 직원을 에이즈예방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법원은 아무런 죄를 묻지 않았다. 감염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인원위원회는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오히려 이 직원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요청하기도 했다. 법원이나 인권위원회 모두 감염인의 인권보다는 내부고발을 한 직원의 처지를 더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문제가 돼왔고 또 앞으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에이즈 관련 인권 문제로는 직장정기건강검진 때 본인의 동의없이 이루어지는 에이즈 감염 여부 검사가 있다. 이는 이런 요구를 한 회사도 문제겠지만 이를 알고도 검사를 해주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몇 년전 이 문제는 한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지만 큰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지지는 못했다. 정부와 인권단체 등은 일반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미리미리 체크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회사와 의료인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재발하는 것을 막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에이즈와 관련해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에이즈 감염인/환자들을 보호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들을 고발하는 것이다. 감염자 가운데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난 일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 억울하게 직장에서 차별받고 해고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아직 동성애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과 차별을 가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게이 에이즈 감염자는 이중의 인권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게이 에이즈 감염자는 자신의 감염 사실이 회사나 회사 동료들에게 알려질 경우 자신의 동성애 사실마저 노출될까봐 회사를 그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4.동성애 문제 다시 생각해보기

동성애자 문제는 에이즈 감염인/환자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는 아직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다. 어떤 이는 동성애를 혐오스런 짓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더욱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러나 한 여대생이 10년 전에 한 잡지에 쓴 글은 우리로 하여금 동성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동성애라는 비밀스런 말을 듣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동성연애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또는 ‘자녀가 동성연애자라면 어떻게 방응하겠느냐’라는 질문을 가끔 듣곤 한다
동성애를 정상적으로 보기에는 인간에게 너무나 커다란 아픔이 뒤따른다. 동성애의 위험성과 심각성은 에이즈와 함께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은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무관심은 옳지 않다고 본다. 기성세대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동성연애자들이 나누는 사랑도 인간이 나누는 사랑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한국 사람들은 동일화하는 것, 집단화하는 것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서 함께 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같다. 자신들의 집단이 아닌 다른 소집단에 대한 냉대와 함께 말이다. 사회는 에측불허로 변하고 있다. 하나의 시선으로 앞으로의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불성성이다. 남을 인정하는 자세부터 키워야 할 것같다. 자신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기 전에 나와는 다른 타인의 다른 모습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쓰인 당시와 지금 이 순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많이 다르다. 10년 전만해도 동성애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고등학교 문예지 수준의 소식지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했다. 이제는 동성애자단체만 해도 여럿 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집단행동도 한다. 동성애자들끼리 모여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거리퍼레이드도 벌이고 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동성애자들끼리 공개 결혼식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동성애자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권리와 인권을 외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즈라는 전지구적인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면서, 그리고 이 에이즈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집단이 동성애자가 되면서 이들은 다시 한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에이즈의 만연과 함께 동성애자들의 고통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5.편견으로 고통 겪는 에이즈 감염 동성애자들

환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에이즈와 같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은 질병의 고통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까지 겪고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사회에서 동성애 에이즈 감염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수혈 에이즈 감염자나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우병치료제를 주사맞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과 동성애자 감염자는 확연히 다른 대접을 받았다. 전자는 동정의 대상이었고 후자는 모멸의 대상이었다. 똑같은 성접촉으로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이성애와 동성애는 서로 다른 대접을 받았다. 지금도 동성애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면서도 보건당국에 이를 얼버무리거나 엉터리로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은 의료기관, 그것도 대학병원에서 차별을 받기도 한다. 30대 초반의 한 남성동성애자는 2년전 첨규콘딜롬이라는 성병에 걸렸다. 이 성병은 항문 주위에 사마귀같은 것이 생겨 커지는 것으로 그는 마침내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그가 에이즈 감염자인 것을 안 대학병원 의사는 치료를 꺼렸다. 그가 콘딜롬에 걸렸다는 것은 상대방 남성과 안전한 장치, 곧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항문 성교를 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 이 의사는 그 사실에 화가 났을 지도 모른다. 안전한 장치 없이 상대방과 성교를 한다는 것은 자칫 그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의사는 일반인이 이 성병에 걸렸다면 수술을 했을직도 모른다. 2명의 의사를 거친 그는 결국 피부과로 보내졌다. 피부과에서는 바르는 약만 처방해줬다. 그러나 바르는 약만으로 치유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한 간부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청년과 비슷한 일을 당한 에이즈 감염인은 종종 있다. ‘우리 병원에서는 에이즈 감염인을 수술한 경험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수술을 기피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일도 있다. 이것이 문제가 돼 얼마전 언론에 크게 보도돼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아마 이는 당시 이 에이즈 감염인과 함께 갔던 동료가 이를 에이즈퇴치시민단체와 언론사에 연락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표면화됐고 문제가 해결된 경우지만 그냥 묻혀버린 사례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 기능과 역할에는 비판과 대안제시, 사실 전달, 여론형성 등 많은 것을 들 수 있지만 인권 침해를 감시하고 인권 신장을 꾀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언론의 에이즈 감염인/환자 인권지수는 얼마일까. 아직 이를 수치화하는 모델을 내놓거나 지수로 나타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기관이나 학자는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언론인 생활을 해왔고 에이즈 보도를 맡아왔으며 에이즈 관련 시민단체에서 자문이나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매긴 점수는 50점도 채 되지 못한다. 아직 부끄러운 단계다. 앞으로 이른 시일 안에 50점을 넘어 80점, 90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언론인 자신들이 각성해야 한다. 물론 에이즈 관련 시민단체나 에이즈 전문가 등도 우리 언론의 에이즈 보도 인권지수가 높아지도록 힘써야 한다.

6.에이즈 감염인 인권 의식-희망은 보인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한 김근태 장관은 지난해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에이즈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어느 한 대학병원의 병실을 찾아 그 환자의 투병 생활을 격려했다. 그동안 국내 정치지도자나 보건복지부 장관들이 김 장관과 같은 적극적인 에이즈 감염인 어루만지기 활동을 거의 벌이지 않았다. 그의 에이즈 환자 방문을 계기로 사회지도층의 에이즈 감염인/환자 보듬기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 쌓여 감염인/환자들에 대한 인권이 높아지게 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많은 정치 지도자나 유명 연예인들이 에이즈 모금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으며 고통을 겪고 있는 에이즈 감염인/환자들을 위해 적극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그들의 주변에 이런 감염인/환자들이 많고 같은 일을 하는 동료 가운데에서도 희생자가 많이 나온 탓도 있겠지만 역시 그들의 인권 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에서도 에이즈 감염인의 쉼터는 공개된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지금 서울과 부산 등 몇몇 대도시에서 에이즈 감염인을 위한 쉼터가 있지만 이곳은 외부인에게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있다. 에이즈 쉼터를 감염인이나 환자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고 이웃 주민들도 이런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 그리하여 이곳을 기자들이 언제든 오갈 수 있는 때가 와야만 비로소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지수가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중국에서는 에이즈 감염인이 유명인사와 함께 요리를 하는 모습을 담은 에이즈 예방 홍보 포스터가 중국 전역에 나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에이즈 감염인/환자에 대한 편견이 우리나라에서 더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즈 감염인은 범죄자가 아니다. 에이즈 감염인/환자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정말 위험하다.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감염된 사람과 함께 생활하거나 같이 일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은 인권의식결핍증후군(human rights deficiency syndrome, HRDS)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아닐까. 이제 에이즈는 제때 치료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2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만성질환과 같은 단계에 와있다. 우리가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를 대하듯이 에이즈 감염인을 대할 필요가 있다. 에이즈는 질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 때 에이즈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으로 복잡한 요소를 지닌 전염병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는 단순 만성질환 성격의 전염병으로 여기자. 그리하면 에이즈 감염인/환자와 더불어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언론과 언론인도 나아가야 할 것이다.


7.참고문헌

1.<에이즈 엑스화일> 안종주, 학민사, 1996
2.<전염병의 문화사> 아노 카렌, 사이언스북스, 2001
3.<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이후, 2002
4.<건강과 질병의료의 문화분석> 마사 루스토노 등, 한울아케데미, 2002
5. 보건복지부 방역과,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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