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청년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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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살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거울을 보기가 두렵습니다. 죽음만 보일 뿐 제 얼굴은 없어요]. 부스럼과 피부염에 깡마른 체구. 에이즈 감염자 박창수씨(가명·29)는 서울 모대학병원×51×호실에서 9개월간 입원치료중이다. 병실에는 경찰이 2명이 24시간 박씨를 감시하고 있다. 절도죄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이 계류중인 미결수이기 때문이다. 수감중 병세가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치료를 받는 중이라 앞으로 에이즈뿐 아니라 남은 법정형도 견뎌야 한다. 박씨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어제는 집채만한 트럭에 치이는 꿈을 꿨고 오늘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박씨는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휴일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종로 모극장을 찾았다가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옆자리의 30대 남자가 몸을 더듬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뿌리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상스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후 그 남자는 같이 얘기좀 나누자고 통사정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박씨는 그 남자를 따라 낙원동의 한 술집으로 갔다. 술잔은 자꾸 박씨에게 날아왔다. 박씨는 흠뻑 취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관방에 있었다. 그 남자는 동성연애자였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것이었다. 그 뒤로 그 남자를 몇번 더 만났다. 그걸 기억하기란 죽기보다 싫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94년 7월쯤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감기 증세가 있어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었으나 듣질 않았다. 오히려 증세가 심해지더니 체온이 40도 가까이 올랐다. 설사와 구토가 잦았다. 결국 혈액검사를 받았고, 국립의료원은『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왔다』며 감염사실을 통보했다. 모든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람중에 내게 이런 형벌이 내려지다니…. 자신과 밤을 보냈던 동성연애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씨는 자살을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죽고 말자. 그러나 죽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동성연애로 감염됐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차마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에이즈 감염 자체가 부끄러운 일일 뿐더러 더욱이 동성연애라는 것은…. 그래서 매춘부와의 한때 실수로 감염됐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어머니가 계신 울산으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꺼린 그는 서울에 올라와 치료를 받는 일 외에는 줄곧 집안에 숨어지냈다. 점점 기운이 떨어졌다. 한달에 한번 받는 통원치료도 힘이 들었다. 서울에 방 한칸을 얻어 혼자 생활하기로 했다. 파출부로 일하는 어머니의 가슴에 용서받지 못할 대못을 박았다. 형과 출가한 누나들도 늘 쪼들렸다. 하지만 가족들은 박씨에게 방을 얻어주고 매달 20만~30만원씩을 생활비로 보내줬다.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 서울에서 혼자 지내며 어머니와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번민에 휩싸인 그는 지난해 10월 [차라리 사회에서 격리되자]는 생각에 신촌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카메라를 훔쳤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넘겨진 박씨는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했다.에이즈 감염 사실을 밝히자 곧바로 독방에 갇혔다. 소원대로 세상에서 격리되었다. 1평 남짓될까. 햇빛도 안들고 먼지가 가득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막상 구치소에 들어와보니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특히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어머니와 형, 누나. 손가락으로 차가운 감옥벽에 가족들의 이름을 쓰고 또 썼다.

비위생적인 환경 탓인지 목에 종양이 생기기 시작했다. 목이 부어 물조차 먹기 힘들어졌다. [이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무나 붙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구치소측은 그의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고 병색이 완연하자 지난 2월중순 박씨를 지금의 병원으로 옮겼다. 어머니가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 아들의 에이즈 감염사실을 듣고는 그를 부둥켜안고 울기만하셨던 어머니. 당신은 [천금같은 막내]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이즈에 효험이 있다는 약은 죄다 구해 아들에게 먹였다. 한약에서부터 이름조차 생소한 풀까지 가리지 않았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가망없다고 했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였던 박씨는 점차 회복돼 이제는 죽을 먹을 정도가 됐다. 그전에는 물과 영양제 주사로 연명했다. 회복됐다고 해도 몸무게 42㎏. 건강할 당시 62㎏이었던 박씨는 한때 39.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박씨는 1심재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항소를 했다. 10개월을 버티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4개월의 수감생활이 지났다. 그러나 6개월이 남았다. 형량을 조금만 줄여준다면…. 다시 구치소로 가서 수감되면 죽을 것만 같다. 그동안 항소심은 계속 연기됐다. 담당의사가 박씨 체력으로는 법정에서 1시간도 못 버틴다는 소견서를 재판부에 보냈기 때문이다. 박씨는 얼마전 재판부에 재판을 빨리 열어 형을 확정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에이즈 치료약이 곧 개발되겠죠. 많은 사람들이 연구한다니까요. 그 때까지만 버틴다면 살 수 있겠죠.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요. 그 때까지만 버티게 해달라고요. 살고 싶어요. 종로 일대에 동성연애자들이 즐겨 찾는 술집들이 있어요. 더이상 피해자가 없도록 정부에서 단속을 해야 하지 않나요』 <경향신문.9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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