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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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8년 3월 에이즈 양성으로 확인되어 만 4년 9개월동안 감염인으로 살고 있다. 나는 1997년 IMF로 가정과 직장을 모두 잃어버리고 연일 술과 씨름하며 아주 힘든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알게 된 누나와의 관계로 나는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고 지금까지 HIV 감염인이라는 멍에 아래 음지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에이즈 감염인을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으로 취급을 하기에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울 뿐이다. IMF의 영향으로 몸과 마음이 아주 심한 고통을 받은 후, 앞날에 대한 희망도 목표도 없이 방황하며 오로지 하루 삶에만 이끌렸던 나의 지난 날의 모습이 아주 아득하게 느껴진다.

1998년 3월 헌혈 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감염 사실은 1999년 10월, 거의 1년 7개월 만에 알았다. 집을 떠나서 생활하는 동안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이다.
1999년 간단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합의에 필요한 주민등록을 마련하기 위해,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는 과정에서 관내 보건소 직원과의 통화로, 나는 HIV 양성이라는 아주 치명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척 당황하고 놀라움을 느꼈다. 관내 보건소에서 나를 계속 추적 중이었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 보건소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역학 조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가졌다. 1998년 여름부터 열심히 공공근로를 하고 담배도 끊어가면서 저금하며 살고 있었는데 날벼락 같은 선고! 에이즈 양성이라는 충격은 나에게 정신적 혼란을 주었다.

그 당시는 에이즈나 HIV 감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나는 바로 죽음이라는 문제에 당면해 있었고, 여성에 대한 분노로 억제 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병원에서의 CD4 수치, 바이러스 검사, 국립 보건원에서의 검사 등을 통해 나는 CD4 수치가 450이라 조금은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방황을 하였다. 심리적 공황감, 분노, 적개심 등이 나를 짓눌렀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시련과 아픔을 주었는지 하늘에 계신 신을 원망하며 살았다.그래도 인생을 떳떳하고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신은 나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셨고, 그때는 그 사실을 감당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술과 담배를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망가졌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평생을 감염인이라는 신분을 안은 채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좌절감, 괴리감 등이 나를 괴롭혔고, 술로써 위안을 받았다. 동네 단란주점, 과부촌 등을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어떤 날은 술 값도 없이 술 마신 후 주인한테 몰매를 맞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몇 개월 방황하다가 보건소 담당 직원과의 통화로 에이즈나 HIV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고 점점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여러 NGO 기구를 통해 결코 에이즈가 천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염 또한 결코 쉽지 않다는 아주 기본적인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보건소 담당 직원의 권유 및 소개로 쉼터로 입소하였다. 같은 감염인이 사는 아주 편안한 쉼터였다. 같은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 마음은 편하였고, 벽안의 수녀님이나 담당 선생님,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고 삶에 대한 목표 또한 설계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무척 큰 행운이었고, 기쁨, 행복이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마음과 지칠대로 지친 감염인에게 쉼터는 정말 천국 이상이었다.

쉼터 생활 후 근 1년간은 약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칵테일 요법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 맞추어서 약을 복용하는 것이 힘든 것이었다. 1999년 10월 감염사실을 확인 후 보건소 담당 직원과의 만남은 자주 이루어졌고 나의 어려움을 아는 담당 직원의 배려로 생보자로 책정되었다. 지금은 국민 기초 생활 수급자로 바뀌었지만 의료비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 준 보건소 직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하지만 계속 약을 먹어가며 생활하던 나에게도 시련이 왔다. CD4 수치가 450~480을 유지하다가 2001년 5월 CD4 수치가 250으로 갑자기 떨어지면서 기회 감염이 나에게 찾아왔다. 대상포진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아픔을 갖기도 했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누나의 간병으로 나는 완쾌 되었고, 다시 쉼터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약을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약을 잘 복용하여 CD4 수치도 예전 450~480을 되찾았고, 건강 또한 회복했다.

2002년 2월부터, 다니는 병원에서 임상실험 제의를 받았고(그만큼 건강이 좋아졌다는 얘기다), 3월부터 STI(구조적 치료 중단)라는 임상 실험에 참여 하였다. 그 결과 한때는 CD4 수치가 600을 넘어 가기도 했고, 마지막 수치가 506이라는 아주 놀라운 효과를 가져 왔다. 이 모든 것이 주치의 이하 의료진의 도움이라 생각하며, 한 인간으로서 내가 받은 큰 기쁨이라 생각한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밝게 살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HIV/AIDS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본다.
지나간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HIV 감염인이나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담당 주치의에게 정확히 자기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고 많은 대화를 통해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약을 선택하여 잘 복용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생각, 항상 긍정적이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갖고 (엔돌핀이 도는 생활) 생활하는 것이다.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도 신약이 계발되고 있고, 감염인이나 환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좌절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건강한 삶을 이루어 나가자고 우리 모두에게 호소한다. 따뜻한 마음으로 희망하나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 이 상 규 (가명)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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