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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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한없는 자책감으로 그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꿈속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도록 해준 정말로 고마운 사람들의 배려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먼저 모든 것을 이해해 주면서 가정을 지켜준 아내가 정말 고맙고, 서초보건소의 김형수 선생님, 강남성모병원 강문원 교수님, 헌신적인 사랑과 배려로 우리 가정이 파탄하지 않고 이렇게 나름대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94년 사업 실패로 그 동안 쌓았던 재물과 명성을 다 잃어버리고 한창 사춘기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경제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아픔을 안겨준 내가 또다시 98년도 결핵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 도중에 HIV 감염사실을 알았다. 사업실패로 남의 집 지하 사글세방을 전전하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시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나 때문에 감염된 아내…. 정말 우리 가정은 깊은 불행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정말 죽고만 싶은 유혹 그리고 자책감들….

더구나 병의 후유증 때문에 인사불성으로 지냈던 2개월과, 지하실 방에 비가 오면 침수를 당했던 그해 여름은 우리 가족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시련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부터 해결해야 하는지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에게 한줄기의 빛이 되어 주신 서초보건소의 김형수님. 당시 나는 거의 생을 포기했다.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방황할 때 김선생님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마침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파출부 일을 나간터라 집에 혼자 누워 있었다. 그때는 김선생님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 뭔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쾌감에 선뜩 맘을 열수가 없었다. 대화를 시도하기는 했지만 대답은 사무적인 것들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더 이상의 대화가 오가지 않는 긴 침묵…. 마침 점심시간도 되고 해서 빨리 가주기만을 기다리는 나에게 나가서 점심이나 하자고 여러 번 권유하여 못이긴 척하고 따라나섰다. 밥을 먹고 잠시 산책이나 하자하여 우면산 산책로를 걸었다. 싱그러운 녹음 속에서 배도 부르고 한결 마음이 상쾌했다. 한적한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든 김선생님이 말했다. “맘속에 응어리진 것 어떤 것이든 말해보십시오 혹시 제가 조그만 힘이라도 되어 드릴 일이….”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한 질병에 감염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살 수가 있는지 등에 관하여 궁금하던 터라 질문을 했다. 지금은 신약이 개발이 많이 되어서 이제는 급성질환에서 만성질환으로 바뀌고 있으며,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천수를 누릴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병에 걸리면 1년 안가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죽어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내 앞에서 위안을 주려고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이 되었다.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제가 준비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제 말을 믿고 의사선생님 지시를 잘 따르시고 약만 잘 복용을 하시면 분명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자식들과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될게 아닙니까?”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뭔가를 해야만 하는데 이 몸으로 뭘 할 수가 있겠는가? 정말 아무것도 할게 없다. 무엇보다 치료약값부터 신경을 써야 할 판인데….

한참의 침묵이 흐르면서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숨기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 울고 싶다면 더 소리 내어서 큰소리로 우십시오, 그러고 나면 한결 후련할 겁니다.” 그래그래 마냥 울어버리자. 한참을 소리 내어 실컷 울었다. 시간이 흐른 후 김선생님이 담배를 권했다. 모든 것이 한결 후련해지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김선생님이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믿음이 가고 내 처지에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드디어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형제들 그리고 친한 친구도 있지만 감염사실과 지금의 불행한 내 처지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행의 연속들을….

그날 저녁 무렵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너무나 고마웠다. 김선생님은 꺼져 가는 내 생명의 은인이었으며 우리가족을 불행의 나락으로부터 건져준 사람이다. 그날 이후 나는 김선생님에게 나의 치료와 가정사의 어려운 점을 얘기하면서 도움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사업 실패로 인한 가정사정의 어려운 점을 보건소장을 경유하여 구청장께 보고하여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되도록 해 생계지원은 물론 치료비를 전액 국가에서 보조하게 해주었다. 또한 아내가 파출부 일 나가는 것을 보고는 적극적인 취업알선은 물론 틈나는 대로 아이들 학용품은 물론 간식도 사주면서 공부 잘하라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 모르게 수차례 아내를 만나서 남편을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도록 설득도 하고 그리고 취업을 시켜주어 지금도 그 자리에서 아내는 근무를 하고 있다. 내 잘못으로 발생했던 우리가족의 불행에 이렇게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셨던 김형수선생님!

덕분에 감염당시 60이하의 면역수치가 지금은 400이상으로 건강이 호전이 되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지금은 지하실 신세는 아직 못 면했지만 전세로 살게 됐다. 아이들도 큰 애는 공부를 잘해서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갔고, 작은 애도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내가 나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없지는 않겠지만, 현실을 수긍하면서 내게 잘해 주고 있으며, 가정 역시도 화목하다.

내가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던 불행을 극복하게 된 그 이면에는 김형수선생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오늘 정말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그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강남성모병원의 강문원교수님! 항상 포근한 인상에 웃음을 띠우고 남들이 편견을 가지고 싫어하는 감염인을 위해서 열과 성의를 다하는 그분은 진정 존경의 대상으로 길이 기억될 수가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지난 5년간의 생활은 정말 힘이 들었다. 죽음의 공포와 사생활의 침범, 그리고 비밀유지 등. 다른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생활하자고 마음을 추스르지만 어느새 질병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복잡해졌었다. 그래도 따뜻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나의 지난 생활을 반성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또한 내가 도움을 줘야할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한 가지 언젠가 알아야할 내 자식들에게 어떻게 나의 감염사실과 이런 상황을 얘기해야 하는지 정말 두렵고 자신이 없다.
간절한 바람이라면 아이들이 알기 전에 치료제가 개발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날이….

/ 고 명 식 (가명)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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