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먹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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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인데도 오늘 날씨는 참 포근했다. 청량리 역에서 춘천 행 열차를 탄지 두 시간 남짓. 이내 열차내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5분 뒤엔 남춘천역에 도착하겠….”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소규모 강당 안에는 의대생 60여명이 분주히 커피, 홍차를 종이컵에 담아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선 순간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 오늘은 이곳 춘천의 대한에이즈예방협회지부에서 2002년을 맞아 에이즈에 대한 각종행사 및 예방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수고했던 강원대학교 의과학생들이 좀더 에이즈에 대해서 알고 싶고 에이즈 감염인들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내가 참석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남들이 기피하고 도외시하는 에이즈란 병을 몸속에 8년이나 담고 다니고 있는 HIV 감염인이다.

그러니까 16년 전. 지방의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송출선원(자국내 배가 아닌 외국인이 소유한 배)으로 뱃사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습항해사를 거치고 3항사, 2항사, 1등 항해사로 8년을 근무하면서 그동안 통장에 모여 있는 월급이 꽤나 쏠쏠했다. 그러나 뱃사람 생활이 싫어지기 시작했다.우선은 배를 계속 탄다면 34살을 넘긴 노총각에게 시집오겠단 여자가 흔치않을 거라는 주위사람들의 얘기가 심상찮게 들릴 때였다. 마침 나 자신도 가정을 가지고 싶었다. 이런 맘을 강하게 먹고 있을 때 1년 계약이 다 되었고 또, 당시 탔던 배의 선장이었던 일본인과 말다툼을 하게 된 바람에 귀국을 서두르게 됐다.

통장을 보았다. 그동안 쓰지 않고 통장에 넣어두었던 월급과 수당이 1억5천만 원이 넘었다. 원금과 이자 모두 합한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결혼도 해야 하니 우선 아파트를 하나 사놓고 나머지로 조그만 가게를 얻어서 장사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1993년 당시 주거지역인 인천의 33평형 아파트는 7,500만원정도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밑으로 세 동생의 장래도 생각해야 했다. 아버님이 살아 계셨지만, 그 분은 평생 처·자식을 돌보기보다는 바깥으로 돌아 다니셨던 분이었다. 어머님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7남매(6남 1녀)이었지만, 각기 엄마가 다른 형제가 3남매가 더 있었다. 아버지는 그러니까 첩을 셋이나 더 두고 사셨던 분이었다. 많은 형제들이 있어 나와 형님 또 위로 누님들은 많은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 누님들이 동생들과 집안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생활이었다. 나 역시 형님 누님들의 희생으로 이 만큼 되었으니 밑으로 세 동생을 맡아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군대에 가있는 두 동생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다니고 있는 막내의 장래까지도 생각해야 했다.

그래 장사를 하자! 우리 4형제가 모여서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행복했다. 4형제가 서로 모여서 보다나은 생활을 꿈꾸는 그런 생활에 대한 기대감은 나의 행동을 더욱 부채질하게 했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화재로 소실됐던 건물이 새로운 쇼핑 타운으로 오픈 하는 곳이 있었다. 금상첨화가 아닌가. 화재 났던 장소는 더욱 장사가 잘된다는 속설도 있는데…. 4·5평 기준으로 한 코너에 전세 2천만 원이었다. 우선 4코너를 계약했다. 8천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신발코너, 액세서리, 분식점 그리고 입구에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꽃가게. 한달쯤 지나자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인테리어 업자가 소송을 했다는 등 이상한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돌고 있었다. 어떻게 되는 것인지. 8년이나 외항선원 생활을 한 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는 도무지 무감각이었다. 각 점주들의 회의가 자주 소집되었다. 결론은 실패였다. 4형제가 모여 희망찬 미래를 꿈꾸려했던 희망의 장소는 절망의 장소로 변해 버렸다.

전문분양 사기단의 마수에 농락당한 것이었다. 법조인을 끼고 낡거나 망한 건물을 호화판으로 개조하고, 광고해서 분양한 다음 분양금을 챙기고 몇 번의 대표이사를 바꾸는 식으로 사기를 친 것이다. 세입자들은 법으로 해결하려 해도 소송 거는 당사자가 애매한데다 현재의 대표이사는 돈 한 푼 없는 알거지의 바지사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망했다. 그랬다. 그렇게 힘든 뱃놈 생활을, 짠돌이 소리 들어가면서, 고생고생해서 모은 돈 1억 5천만 원과 카드로 긁고 긁어서 4곳의 매장에 보기 좋게 진열해 놓았던 것 하나도 건지질 못했다. 남은 것은 카드 빛 4천여만 원뿐. 하늘이 깜깜했다. 절망이다. 술밖에 없었다. 그렇게 술로 한 달여를 보내는 동안 “법원에 가자, 서류를 무엇을 준비해라.”하는 소리는 모두가 귀찮아 졌다. 술에 취한 채 매장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일을 겪게 됐다. 액세서리 코너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미스 남이 손뼉을 치면서 액세서리를 팔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았다. 근데 저것은…. 금줄이 쳐져있어 건드릴 수 없었던 매장내의 내 물건이 아닌가! 쓴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네 월급을 챙겨라! 똑똑한 계집애. 하고 지나치려는데 미스 남이 물건을 팔다말고 내게 뛰어왔다. 내 앞에 내민 박카스 통 안에는 지폐와 동전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삼십오만 원이에요.”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며 지나쳤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는데 “야! 우사장” 큰소리로 악을 쓰는 미스 남의 소리에 취했던 술이 다 깨서 뒤돌아 본 순간 미스 남은 주저앉아 엉엉거리며 울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액세서리를 사려던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순간 창피함에 미스 남을 일으켜 세워 남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려 하니까 미스 남은 가만있어 보라며 내 손을 제지하더니 바닥에 떨어진 지폐며 동전을 모두 줍는 것이었다. 주변에 모여 섰던 액세서리를 사람들 중엔 얼굴을 아는 이도 있어 더러 미스 남이 돈 줍는 것을 거들고 있었다.

“엄마·아빠 모두 오셔서 우사장님을 보셨어요! 부모님 모두 괜찮은 사람 같다고 허락하셨는데….”

호프집 안이었다. 징징거리며 우는 미스 남을 달래 호프나 한 잔 하자며 데리고 들어온 후 자초지종을 묻는 상황이었다.평소 미스 남을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해주던 건물관리인 박씨가 전기안전 점검을 하려고 금줄이 쳐진 매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화장품을 코너에 두고 나왔다며 핑계를 대고 매장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화장품은 거들떠도 안보고 빈 상자에 액세서리를 쓸어 담고 나가는 것을 보고 관리인 박씨도 말리지 않더란다.오픈 하는 날 엄마·아빠께 내가 장래를 약속한 남자가 가게를 하는 데 오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허락을 받았고….

어리벙벙했다. “이봐! 미스 남 너하고 나하고 나이차가 몇인 줄 알아! 10년이야 10년! 널 조카뻘 정도로만 생각했고!”

“알아요! 그래도 사장님을 본 순간 ‘이 남자가 내 사람이다.’하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변함없고요.”

“야! 이 계집애야 어떻게 일방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냐! 너 지금 내 처지가 어떤 줄 알아?”

“잘 알아요. 술로 사는 것 까지…. 또 사장님이 성격상 의지가 깊은 분이라는 것도 난 알고요!”

“너, 나 알거지 된 거 몰라!”

“그것도 알아요! 엄마·아빠께도 모두 말씀 드렸어요!”

“그런데도 허락하시니?”

“예, 35살이면 남자 나이도 든든하고 제 성격상 나이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야 한다고 부모님이 항상 말씀하셨거든요!”

“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미스 남의 부모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모든 상황을 말씀드렸다.

“계집애 그럼 그렇지! 저렇게 잘나 보이는 남자가 우리 딸한테 맘을 두지 싶나했어요! 그래도 우리 딸이 부족하지 않다면 거둬 주세요.” 미스 남 어머니의 말씀이셨다.

그렇게 해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약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약혼 기념 여행을 가자고해 정동진으로 떠났다. 커피며 술을 마시고 젊은 연인들 틈에 끼어 바닷가도 거닐었다. 호텔을 잡았다.

“방 두개 주세요! 내 말에 호텔 종업원이 놀란 눈치였다. 얼른 말을 바꿨다.

“아니에요. 하나면 돼요”

“저기요, 오~빠”

사장님 소리가 오빠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건 우리 결혼하는 날 하기로 해요. 네!” “저 아직까지 처녀에요. 정 못 참으신다면 할 수 없지만….”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똑똑한 애를 내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그렇게 미스 남을 꼭 부둥켜안고 잤다. (욕심이야. 아직 내 몸도 젊은데.) 잠을 잔 것 같진 않았다 둘 다.

분양건은 모두 포기하기로 했다. 평생 모은 돈을 한 순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1년, 2년 소송생활이 길어질 것 같았고 또 돈도 적지 않게 소비되었다. 형님들과 누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조금씩 거두어 치킨집이라도 하나 해 보라고 했다. 내 생각엔 결혼 후 다시 배를 타려고 생각했지만, 형수님들과 누님들이 적극 반대했다.

결혼 날짜를 5월 1일로 결정했다. 미스 남과 혼수준비에 바빴다. 무심코 에이즈 검사를 받아보기로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너 잠깐 여기 있어!”

“왜? 오빠”

“잠깐이면 돼.”

보건소에서 에이즈 검사하러 왔다고 하니깐 인적사항 몇 가지 적고 검사를 했다. 그리고 미스 남과 월미도 구경도하고 회도 먹었다. 여관도 잡고, 샤워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몸을 보여주는 것까지만 이었지 더 이상은 “No”였다. Sex아닌 Sex였다. 미스 남의 다리사이에다 행위를 하고난 후 사정하는 식이었다.

“참 용하다 용해.” 내 스스로의 생각이었다. 대신 결혼 후 아기는 빨리 갖는 것으로 약속했다. 내 나이가 있으니까.

아침을 먹고 미스 남을 돌려보내고 나서 집으로 왔다. 어머님이 “보건소에서 널 자꾸 찾더라. 왜 그렇게 찾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않고.” 순간 이상한 예감이 강하게 스쳐왔다. “설마” 의혹이 있었지만 반지 맞추랴 가전제품 보러 다니랴 양복 맞추랴 며칠을 바쁘게 보냈다. 집에서 늦잠을 자는데 어머니가 바쁘게 깨우신다. 전화 좀 받아보라고.

“저 보건소인데요. 우XX님이시죠? 에이즈검사 의뢰하였었죠?”

그때서야 “아! 네, 검사의뢰 했었어요! 왜요?”

“저! 죄송하지만 보건소로 한 번 나오셨으면 해서요. 아니면 따로 만나 뵐 수도 있고요.”

순간 띵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1차검사는 양성으로 나왔어요. 1차에서 양성이라고 꼭 에이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2차가 아니면 어떻고 3차면 어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했었던 것뿐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힘든 것을 접고 다시 희망을 꿈꾸는 내게 어떻게 이런 일이….

결혼 날짜를 열흘 남겨둔 때였다.

/ 이재홍(가명)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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