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에 대한 세계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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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관우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사무총장  

1) 현재상황
에이즈는 현재 인류를 상대로 침략전쟁(侵略戰爭)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이사실을 간과,..하고 공격은커녕 방어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이전쟁은 인류멸망의 음모가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이다.

1981년 미국에서비로소포착되기 시작한 에이즈는 이미 그 이전부터 기습적인 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지금 이시간에도 국경,언어,인종등의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무차별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1995년 현재 세계 192개 국가에 침투,거점을 확보했고, 2.000만명 가량의 에이즈 군사,곧 감염된 포로를 확보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침투기회를 노리는 위험천만한 현상황속에서도, 인류는 그 비상사태를 깨닫지 못하고, 유효한 공격은커녕 철통방어도 못해 그 침투 경로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이미 450여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공포에 떨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몇 국가들은 이 에이즈공격에 국가존립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있고,심지어 국민의 30%가량이 포로가 된 나라도 있다. 태국같은 나라는 뒤늦게야 국가에이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이즈는 가히 핵무기보다 더 충격적인 폐해를 낳고 있다. 핵무기의 위력은 무엇이든 녹이는 고온의 열,치명적인 방사선,그리고모든 것을 휘감아 날려버리는 핵폭풍등이다. 에이즈도 발병하면 사망하게 되는 육체의 고통,영혼까지 황폐화시키는 정신적 충격,그리고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가정가지 파탄시키는 고통의 회오리 바람이 강타한다.

미국 상원재정위언회 에이즈 공청회에서 하버드 대학 윌리암,헤젤다인 교수는 2010년이 되면 10억 인구가 에이즈에 감염될수 있다고 증언한바았다. 이제 인류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차원에서 벗어나 인류의 생존과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가장 효과적인 對 에이즈 전략전술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계연합전선을 구축하고,총력전을 전개,대응함으로써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에이즈는 그 침투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복잡한 문화양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 대응전략도 신축성있게 적절히 운용해야 한다. 세계여러나라의 對 에이즈 전략을 대표적 사례중심으로 알아보고 효과적 대응을 모색해서 에이즈 예방교육과 성교육에 참고하고자 한다. 결과가 좋으면 전반적 과정이 긍정적으로 미화될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방향성 수립에 필요한 요점만 간추려 본다.





2)비효율적 대응사례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미국에서 세계최초의 에이즈환자가 나타났었다.미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진보된 의학기술과충실한 보건체제,풍부한 자금지원을받는 연구시설이 여러개 있었다. 따라서 강력한 정책적 의지만 있었다면 새로운 질병을 조사,연구하여 효과적인 예방대책을 세울 능력이있었다. 또한 그러한 기관과 연구자들이 공중보건을 위하여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언론기관이 살아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레이건 행정부는 이 『에이즈』라는 질병을『동성애자나 마약상용자 같은 소수집단의 특이한 괴질병』으로 경시,조사비 정도의 예산 밖에 지출하지 않고 강력히 정면대응을 하지 않으므로써 초기 예방의 호기를 놓지고 말았다.

에이즈에 침범당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계속 죽어가도, 담당자의 판단착오과 예산부족등으로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채 에이즈는 급속히 침투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죽어가도 관료들은 관계학자들의 요청을 무시하며,에이즈 연구에 충분한 자금을 내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에이즈 침공에 대처할 노력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동성애자를 괴롭히는 병따위를 연구해도 별로 명성을 얻을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국제적인 연구조사에 협력도 않고, 오히려 대립하는 자세까지도 취했다.

최초의 수년간,연방정부는 에이즈를 예산의 문제로도 보지 않았고, 지방공중위생당국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회피했다. 기업체를 비롯한 일반사회에서도 정부의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여 감영자를 차별,해고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더구나 이병으로 가장 많이 고통을 당하던 동성애자들은 견고한 정치조직을 갖고 있었으나 귀중한 생명보호 차원보다는 정치적 홍보문제로 대처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계속 죽어갔다.

언론에서도 에이즈에 관한 논술을 극구 회피했고 동성애자의 성행동과 관계기사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에이즈마귀 쫓아내자』식의 보도로 일관했다. 국가와 관계기관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할 때 마지막 국민의 수호자역할을 해야 할 언론마저 등을 돌리게 되어 결국 국민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에이즈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 국민들이 『에이즈』를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게 된 것은 1985년 10월 2일, 영화배우『록.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때까지는 대부분의국민들이 잘 몰랐고,알아도 『소수의 특이질병』으로 알았던 에이즈였다.그러나 유명한 영화배우의 죽음과그를 둘러싼 기사,에이즈로 직장에서 좇겨난 사람들의 이야기,심지어 살던 동네에서 조차 쫓겨난 처참한 모습,학교에서 등교거부당하는 모습등이 줄이어 나타나게 되자 사람들은 이 『에이즈』가 사회에 상당히 만연되어 있어서 혹시 자신에게 쳐들어오지 않을까하고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 병자체보다도 그 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처참하고도 절망적상황들을 생각하며 전율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이미 에이즈가 선전포고 없이 세계를 침략한지 10여년이 경과해있었고 특히 미국에서는 만연의 초기단계에 들어가있었다. 다음해인 1986년 통계를 보면, 이미 1만 수천명이 발병하여 그 대다수가 죽음에 직면해 있었고, 감염자는 수십만에 달해 있었다. 국민에게 전해지는 정보는 사망자 CFGUS과 감염자 확대라는 공포와 혼란을 초래하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공포감이 선행된 인식은 병자체보다는 감염자와 환자인 인간을 무서워하고 증오하는 잘못된 동기를 유발시켜 편견과 차별이 심화되고, 거부와 증오의 행동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에이즈는 예방이 최선의 대책이다. 그러나 이런상황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지나친 공포와 혐오,거부의식이 있기 때문에 예방정책이 효과를 얻을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염자가 나타나지 않고 더욱더 지하로 숨게된다.그리고 지하에서 감염폭발로 나타나게 된다.이때보다 몇 년전 에이즈환자 제1호 보고가 있었을 때라면 예방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모두 차선책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미국의 에이즈 초기대응의 패배원인은 레이건 정권의 의식수준,그 행정제도의 문제점,담당관료의 판단착오와 무대책,예산부족,동성애 지지자들의 독선적 행동,언론의 무관심등 이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개별적으로 에이즈 대응을 실패케한 것이 아니라 여러형태로 맞물려서 지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국민뿐만아니라 의료관계자,과학자,행정관료,언론인등 에이즈와의 전투에 있어서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그리고 감염자와 환자까지도 혼란스럽게되어 미혹되고 두려워하며,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해버렸던 것이다.

태국의 에이즈환자는 '84.9월 해외 성접촉으로 인한 감염자가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88년까지는 내국인간의 성접촉으로 인한 환자는 발견되지 않다가 '89년 이후 국내감염이 급속도로확산되고 있다. 초기에는 관광수익을 의식해서 에이즈 침투상황을 축소 은폐하기에급급했다.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가지 폐해가 클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85만명으로 감염자가 추산되고 , 2000년에는 400만명이상 감염될 것으로 예상되어 이제는 전 국가차원에서 대처하고 있다.

부유한 태국인들과 외국관광객들이 어린소녀들을 性의 도구로 삼기 때문에 점점더 매춘여성의 연령이 하향추세에 있다. 어린 청소년을 매춘행위로 알선하는 풍조와 생계유지를 위해 스스로 찾는 경향도 있는데,감염사실이 밝혀지면 다시 농어촌 지역으로 귀향하여, 지역주민에게 확산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부의 에이즈과 내 8개 분야별로 대처하고있으나,에이즈문제는 공무원의 관리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따라서 전 국가차원에서 모든 홍보기관,민간단체들이 적극참여하여 예방활동에 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특히 전 공무원에 대하여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태국에는 성풍속이 극도로 문란하여 에이즈가 급속히 만연하고 있다. 태국의 성문화는 미혼자는 무론이고 기혼자들도 매춘이나 혼외정사에대해 대단히 관용적이고 일반화되어 있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수입이 많아 감염위험이 많고, 생산력의 중추부가 침범당하고 있다.태국산업을 짊어진 청,장년기 기술노동자의 손실과 인재난으로 태국경제 손실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초기에 정부당국이 오직 100%콘돔사용을 적극권장했고 어느정도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비롯한 고위험군이 인식이 부족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등 문제가 많아 지금은 가정주부,중.고등학생,직장여성 등에 가지 만연하자 이제는 『家族愛』캠페인 ,즉 밖에서 성관계를 갖지 말고,집에가서 사랑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예방대책의 문제점으로는 예방지직과 상담등의전문성을 가진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고,홍보장비도 부족한 상태이며,위험군중 지역특성과 계층별특성에 적합한 홍보자료개발과 접근도가크게 부족한 점 등이다.

국가 에이즈 예방퇴치위원회 의장은 수상이 직접 맡고 있으며, 정부발표수치도 이제는 축소은폐보다는 오히려 확대발표까지 하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일찍 성관계를 갖게 되어 고위험군으로 등장함에 따라 이제까지의 에이즈대책을 전면 수정,집중 대처하려고 한다.
인도에서는 정부공식 발표로 14,000명정도의 감염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민간기구인 인도보건기구(IHO)에서는 350만명 정도의 감염자가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에이즈 관리대책은 거의 무의미하게 보인다.철저한 신분제도에 의해 하층민의 인권과 생명이 보호받기 어려운 상태에서 에이즈는 그야말로 무방비상태로 침투하고 있다.

보건관리들의 예상으로는 2000년이 되면 인도 한나라에서 감염자가 3000만명에 육박할것이고, 하루에 에이즈 사망자가 1만명에 달 할것이라고 한다.가공할만한 충격이다.

중앙아프리카 지역은 현재 지구상에서 에이즈로 인해 가장 폐해가 큰곳이다.사하라 이남지역만 1000만명이 넘는 감염자가 있고, 특히 르완다,우간다 같은 나라는 인구의 30%가량이 감염되어,국가경에제 막대한 타격이 있다.주로 경제활동 인구인 젊은층이 많이 감염되어 사암함을 말미암아 노동인구가 모자라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된다.성활동이 왕성한 부모들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고아들만 생계를 꾸려가야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내전을 비롯한 기아,질병등 에이즈외의 D인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에이즈로 죽어가는지도 모르는경우도 많다. 일부 국가에서는 에이즈감염자에게 차별대우를 하게되어 검사를 기피하고,심지어 뇌물을 주고 감염사실을 속이는 경우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사?ㄱ 지위나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많은 여성들을 상대할수 있기때문에유능할수록 감염위험이 높은 경향이 많아 생산성의 현저한 저하와 함께 국가재정이 위축되고 있다.



3)효율적 대응사례

미국이 초기대응에 패배해 폭발적 감염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악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영국은 이것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 효과적으로 대처해 감염폭발을 럭제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 처음으로에이즈 사망자가 보고된 1982년 당시 대처수상이 집권하고 있었다. 영국의 에이즈 대책은 1986년 대전환을 이룩한다.그 이전은 에이즈 문제가 정치적인 충격효과를가진적은 없었다.동성애집단을 모체로 한 에이즈 환자 지원조직이나, 사적인 조직단체가 의료현장에서 나름대로 노력을 쌓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전통적인 도덕을유지하는 입장으로, 국내사회의 보수적 반발을 염두에 두어 직접 개입하는것에 주저했다.

영국의 정책은 밀실속에서 정해진 경향이 강하다. 여당의원은 당의 간부나정부수뇌에 이의를 외칠자가 적었다.야당에는 정부에 반대하는 의욕은 있어도,구회내의 투표에 이고 새로운 정책을 창출해낼만한 힘이 없었다.이런 정치풍토속에서 외부에서의 압력은 새로운 변화를 창출해 내기는 어렵다.새로운 정책은 정관계(政官界)내부의 욕구에 의해서만이 생겨나,여러가지 정치적 의지를 가진 집단에 의한 밀실역학중에서 좌우된다.영국의 에이즈 대책은 실로 이러한 정치의 구조를반영하면서 시행되어 왔다.

1986년 이전 영국 국회에서는 에이즈 감염은 『부도덕한 동서애 행위에 의한 것으로,감염된 것은 자업자득이나,아이에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유감이다.』는 의논이 있었다.그러나 1986년이 되자 이런 견해는 자취를 감추고 양식과 경험이 반영되었다. 이변화는 정치가나 고급관료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문기관과 그것을 지도한 도널스 아치슨경의 역할이 컸다.아치슨경은 대처정권의 최고의료심의관(Chief Medical Officer)이었다.

아치슨경은 2개의 자문위원회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였는데 3가지 방향의 전략적 전개를 시도하였다. 첫째 에이즈 감염양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역학적 촉구로서 초기예방의 초점을 동성애조직에 맞추어 철저한 예방행동을 취하도록 요청한것이다.둘째 일반대중에게도 이성간의 감염위험을 경고함과 동시에 감염경향을 지역사회의료보험제도를 통하여 정보수집하여 영국내의 에이즈상황을 시시각각 파악 하도록 했다.세째 "미국의 참상"을 상세히 연구분석하여 예방정책에 반영시키도록 정부에 적극적 행동을 촉구했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병이므로 개인이 알아서 해야한다.』는 사회통념에 지배되어 있었고,기껏해야 많이 걸리는 동성애 사회나 자원봉사자가관계하는 사회현상의 하나정도로 인식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에이즈가 중대한 사회문제임과 동시에 사람들의 생활을 뒤흔드는 정치문제가 된다하는 감각으로 인식ㅎㅆ다. 정치도 사업도 예술까지도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활용되어져야 한다고 확신하고, 『모든 것은 사는 것을 위해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이다.그리하여 영국에서의 에이즈문제는정치문제로 간주,정부주도의 예방정책으로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영국정부의 주도는 프랑스,독일,네덜란드,북유럽제국등에도 서로 영향을 주어 현재 EU의 공통정책으로 발전해 있다. 이 정치적 양상은 환경문제와 매우 흡사하다.

1985년 『그레고리.리챠드』라는 교계사가 에이즈로 사망한 것을 놓고 대중 언론지는 "이중의 생활","남성과 밀회"등을 다루고,의료기관의 치료거부,화장할 때 통상 5배의 시간에 걸쳐 재로 만든 모습등을 기사화해서 대중의 공포를 부추겼다.반면에 TV는 침착한 보도자세를 보였다.TV는 전례를 볼수 없을 정도의 캠페인을 전개하여 『에이즈는 무엇이며,누구에 의해 위험한가?』등을 정확히 알렸다.TV보도에 의해 일반사회에서 이성간의 성관계로 감염위험지식이 알려지자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세론이 들끓게 되었다.

에이즈는 전통적인 건전한 가정생활을 하는 보통사람들의 생활과 가치관을 위협한다고 인식되게 되어 에이즈대책의 적극적 추진을 주장하는 정당과 의원의 표에 연결되었다. 후생성도 문제의식을 강호,파우러 후생성대신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시찰하여 에이즈의 폐해를 직접보고 온것도 영향이 있었다.

또 이 해에는 에이즈 비용이 방대하게느것이라는 몇건의 예측발표가 국민과 특히기업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500건의 발병자 치료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와 의료비 부담은 2억 4000만달러나 되는 것을 나타났다.의료비만도 1990년까지 배로 늘어날것으로 추계되었다. 이에 의해 정책결정에 큰 힘을 가진 재무당국이 내각과 후생성에 유효한 대책을 세울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그때까지는 과감한 시책을 억제해왔던 권력장치가 거꾸로 적극ㅈㄱ인 에이즈 대책을 지원하고 독려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정부는 그때까지 후생성과 그밑의 의료기관에맡겨져 있던 에이즈 대책을 새롭게 내각내의 특별위원회에 일괄담당시켜 정부직할로 정책을 입안 실행해 가도록 해따.긴축재정속에서도이례적으로 전년도의 10배에 달하는 5000만달어의 예산이 세워졌다.

이 특별위원회에서는 ①HIV감염자의 억제②의학적연구 ③감염자 옹호 ④사회편견 불식을 위한 지식보급등에 역점을 두었다.

영국의 에이즈 대책에서 가장효과를 올린 것은 예방홍보 작전이었다."정치카드"의 일종이었지만 그방법의 독특함과 풍부한자금을 투입한 철저함이 미국같은 폭발적 감염을 막을수있었던 최대요인이었다.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교육만이 에이즈의 유일한 백신이다.』등 여러 가지 "명언"을 사용하고,『성 상대자는 한사람으로, 그렇지 못할때는 콘돔을 써서』등과 같은 문구를 써서 『안전한 성횅위』를 호소했다. 더구나 후생대신의 서명이있는 편지를 전국민에게 발송했다. 그 편지의 서두가 『몰라서 죽지마시오』(Don't die of ignorance)로 그이후 너무나 유명해진 문구이다. 이것을 모든 매스미디어를 통해 내보냈다. 이 대대적인 캠페인에 소요된 경비는 1700만 달러였다.

아치슨경은 TV나 신문,잡지,만호,포스터업계의 간부화 회합을 거듭,『에이즈에방운동』을 북돋우었다. 그 결과 1987년 1월에 행해진조사에 의하면 일한 광고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69%에 달하고, 에이즈를 예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람은 73%를 넘고 있다.

그외에고 연구치료제도는 대폭개선했고,혈액검사도 철저한 비밀보장과 함께 총합적인 통계를 취합정리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또한 마약 상용자에게 주사기를 교환해주는 제도도 점진적으로 실시했다.

일본은 감염폭발 억제에 성공한 영국의 수법을 모방하여 1993년도에 전년도의 약 5배로 예산을 증액하고 『에이즈 침투저지 작전』을 수립,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나타냈다. 이 전시 행정같은 대대적 작전의 골격은 바른 지식의 보급,검사/의료체제의 충실,국제협력 및 연구의 추진증 4대 중점사항이다. 특히 바른 지식의 보급을 위한 예방홍보교육은 전년도의 30배에 가깝게 증액하여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94년도에는 제 10회『국제 에이즈 회의』까지 유치해서 예방홍보에 적극 활용하는등 다방면의 노력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감염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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