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마찰이 아편전쟁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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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실은 동서고금을 역사에 수많이 존재한다. 잘 알려져있는 것은 일본 이전의 중국에 대한 권익을 넓히려고 했던 영국이다. 아편전쟁은 그 결과로서 일어난 것이다.

18세기에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은 인도산 아편을 독점하여 전매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 권익을 베경으로 하면서 실제의 아편무역 . 매매에 종사하던 것이, 이른바 영국이 국책회사 --- 만주의 예에 견주어 말한다면 정부 재무부의 하부기관 같은 것이다 --- 로서 설립한 동인도회사이다.

동인도회사는 인도 국내에서는 아편매매를 엄금했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해 말한다면, 수출품으로서의 아편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도 지극해 당연한 일이다.

현재 일본은 콤롬비아의 코카인 마피아로부터 미국과 유럽을 갈음하는 '수출 대상지'로서 잔뜩 놀림을 당하고 있다. 당시에 동인도회사의 표적이 된 것은 전인구의 약 10퍼센트가 아편을 흡연하고 있었다고 하는 중국이다.

그 이전, 동인도회사는 중국 무역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 중심적 무역물은 홍차를 좋아하는 영국인이니 만큼 중국산의 녹차였다. 영국으로부터는 본국과 인도산의 면제품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수출입의 결제는 은본위제인 중국에 맞춰서 은은로 결제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본토의 녹차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서 '무역마찰'이 일어나게 되었다. 영국의 은 준비고가 저하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어쨌든지 현대까지 이어지는 자본주의사회의 숙명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동인도회사는 인도산 아편의 증산을 도모하면서 은 대신에 아편을 수입대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이미 1800년에 아편의 수입 . 매매 . 흡연을 금지하고 있던 중국 청나라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1839년, 청나라 정부는 이른바 아편 범죄에 사형을 적용할 방침임을 발표했다. 참고적으로 덧붙인다면, 1989년 대륙의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마약단속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가, 마약사범에게는 최고 사형까지 처하겠다는 법령을 발표했다. 선진국에서는 별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엄벌주의 --- 일본에서도 명치유신 당시의 포고령을 보면 아편 흡연의 최고 벌칙은 사형이었다 --- 이다. 중국적인 전통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결국 청나라 정부는 동인도회사 소유의 아편을 불태워 버렸으며, 그 사건이 발단이 되어서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 후의 경위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같다.